[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명나라때 이시진의 <본초강목>(왼쪽)과 청나라때 저술된 조학민의 <본초강목습유>(가운데), 범례에 인부(人部)를 삭제한 이유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 청나라 때 조학민(趙學敏)이라는 의원이 있었다. 조학민은 박학다식했고 모르는 것이 없었다. 약초 지식 또한 그 누구보다 풍부했다. 그는 약초를 공부할 때는 <본초강목>을 많이 참고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본초강목>에 실리지 않는 내용들이 많아서 의아해했다.
그래서 그는 <본초강목>에 실리지 않은 항목을 찾아 넣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착오가 있는 부분은 수정하고자 했다. 그러자 그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불세출의 명작을 손보겠다니 ‘그 사람이 누구일까?’라고 하면서 수군댔다.
<본초강목>은 1596년 명나라 때 이시진이 지은 본초서다. 총 1892종의 약물이 수록되어 있어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수록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을 저술하는 기간만도 수십년이 걸렸다. 전체 권수는 52권이고 62부류로 분류했다. 이러한 <본초강목>을 또다시 정리하겠다는 자가 있으니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느 날 한 객(客)이 조학민에게 물었다. “당신이 본초강목에서 빠진 내용을 보충하겠다는 자요?”라고 묻자, 조학민인 “그렇소.”라고 답했다.
그러자 객이 말하기를 “이시진은 여러 서적을 두루 수집함에 백대(百代)를 망라한 최고의 학자요. 각종 문헌을 고찰하고 연구하기를 이전의 여러 학자의 서적과 역사서에서부터 민간에서 전해져 오는 내용에 이르기까지 하여 모두 상세하게 채록해서 독자적인 내용을 이루었소. 심지어 페르시아나 몽골 등의 머나먼 외진 땅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다 수집하였고, 험준하고 산기슭에 피는 화초(花草) 한포기까지 찾아내었소.”라고 했다. 말하는 것이 마치 위인전을 전하는 듯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어찌 빠뜨린 것이 있다고 보충한다는 말이오. 지금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마치 손가락에 나란히 난 사마귀에 혹을 하나 덧붙이는 꼴이 아니요?”라고 물었다.
조학민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시진의 본초강목은 확실히 내용이 광범위하고 포괄적입니다. 그렇지만 만물이 생겨난 지가 이미 오래되었고, 이시진이 죽은 이후로 종류도 더욱 다양해졌습니다. 그러니 분명 보충할 것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주위 사람들은 본초강목에 보충할 것이 있다는 것에 대해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조학민만은 의지가 대단했다. 그는 제자들과 함께 토론하고 분류하면서 저술 작업을 시작했다. 그랬더니 정말 상당히 많은 자료들이 모였다. <본초강목>이 지어진 지 약 170년이 지났기 때문에 실제로 그동안 새로운 약초들이 생겨나고 기존의 약초에 대한 이름이나 효능들도 수정이 불가피한 것들도 많았던 것이다.
조학민은 효과가 없는 처방이나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처방은 과감히 지워버렸다. 일부러 삭제했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었지만 잘못된 것을 경솔하게 믿을 수는 없었다. 또한 한가지 약초에 대한 설이 많거나 중구난방인 것들은 감히 믿지 못했다. 그래서 직접 텃밭에 심어서 관찰한 결과를 실었다. 이름을 헷갈려서 중복으로 기록된 것도 하나로 묶었다.
문제는 인부(人部) 편이였다. <본초강목> 마지막에 편성된 52권 인부 편에는 사람에게서 얻어진 재료로 총 37종의 약재(?)가 실려 있다.
인부 편에는 난발(亂髮, 머리카락), 소아태시(小兒胎屎, 태속의 찌꺼기), 인뇨(人尿, 소변), 요백온(溺白垽, 인중백, 소변이 침전되어 굳어진 고형물), 추석(秋石, 인중백에서 얻은 결정체), 유즙(乳汁), 부인월수(婦人月水, 월경혈), 인혈(人血, 사람의 피), 인정(人精, 남자의 정액), 구진타(口津唾, 침), 인골(人骨, 사람의 뼈), 천령개(天靈蓋, 죽은 사람의 두개골), 인포(人胞, 태반), 포의수(胞衣水, 태반을 수년동안 보관해 두었을 때 생긴 액체), 초생제대(初生臍帶, 태아 배꼽에 붙어 있는 마른 탯줄), 인육(人肉)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조학민은 인부 편의 항목들을 심각한 내용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자신의 책에는 수록하지 않고 모두 삭제해 버렸다. 이렇게 해서 1765년에 드디어 책이 완성되었다. 책의 이름은 <본초강목습유(本草綱目拾遺)>라고 지었다.
뜻을 보면 ‘본초강목을 습유한다’라는 의미다. 습유(拾遺)란 단순하게는 빠진 것을 보충한다는 의미지만, 원래는 신하가 임금이 모르고 있는 과실(過失)을 들어 간하거나 임금을 보좌하여 그 결정을 바로 잡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런 것을 보면 참으로 당돌하면서도 용감한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어느 객이 물었다. “본초강목에서 인부 편은 통째로 삭제한 이유는 뭐요?”
그러자 조학민은 “이 책에서 본초강목의 인부 편에 빠진 것을 구하는 것은 틀림없이 기괴하고 잔혹한 것 중에서 찾아 수집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는 간악한 길을 여는 것이지요. 대개 다른 생명을 죽여서 사람을 구하는 것도 오히려 하늘의 분노를 사는데, 하물며 사람을 이용해서 사람을 치료함에 있어서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의 두개골이 귀신을 쫓고, 어린아이의 뇌(腦)가 정력을 좋게 할 수 있다고 한 것이나 교골(交骨)이 사람의 넋을 빼앗게 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바로 나찰(羅刹)이나 아수라도(阿修羅道)의 짓거리일 뿐입니다. 손사막(孫思邈)도 스스로 잘못되었다고 하는데, 노신선(老神仙)까지도 이러하거늘 제가 뭐라고 논쟁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덧붙였다.
나찰(羅刹)은 악귀의 이름으로 지옥에 있는 귀신을 뜻하고, 아수라도(阿修羅道)는 지옥의 하나다. 사람의 신체 일부로 병을 치료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손사막은 중국 당나라 때 의학자로 182년경에 <천금방>을 지었다. 손사막은 동물성 약재를 결코 사용하면 안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손사막은 자신의 책에서 “부득이한 경우라면 이미 죽은 동물성 약재들은 간혹 시장에서 사서 처방할 수는 있지만, 살아있는 동물을 직접 잡아서 약재로 사용하면 안된다. 그러니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는가?”라고 강조했다.
손사막이 자신의 책을 저술할 당시 나이가 거의 100세에 가까워서 조학민은 그를 노신선(老神仙)이라고 칭한 것이다. 이시진이 <본초강목>에 인부 편을 싣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극악무도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 또한 인부 편을 통해서 사람으로부터 얻은 약재에 대한 비판의 글을 남기고 있다.
그는 인골(人骨) 편에서 “방술사들은 마음에 이익과 욕심이 있어서 사람의 뼈를 모아 약으로 만들어 복용하였으니, 인술(仁術)이 참으로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개도 개의 뼈는 먹지 않는데 사람이 사람의 뼈를 먹는 게 올바르겠는가?”라고 했다.
또한 인육(人肉) 편에서는 “아아! 신체발부(身體髮膚)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할 수 없다. 부모가 병이 위독하더라도 어찌 좋다고 하면서 자식들의 사지와 팔다리를 잘라서 그 골육을 스스로 먹으려 하겠는가. 인육은 약이 될 수 없으면 효(孝) 또한 아니다. 어리석은 백성들은 잘 살펴야 한다.”
또한 “예나 지금이나 전쟁이 나서 병사들이 인육을 먹으면서 차마 사람고기를 먹었다고는 못하고 상육(想肉) 혹은 양각양(兩脚羊)을 먹었다고 한다. 이는 인성이 없는 도적들의 행위이니 주벌하기에도 부족하다.”라고 하면서 비판했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 약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기록했다기 보다는 <본초강목>은 당시까지 현존하는 자료를 깡그리 모아 정리해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부 편의 항목 중에 요즘도 약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태반(胎盤)이다. 요즘의 태반주사라고 하는 것은 태반 추출물을 주사제로 만든 것이다. 태반은 의약품으로 해서 인(人)태반 이외에도 돈(豚)태반, 양(羊)태반도 사용되고 있다.
인혈(人血)도 약으로 사용 중이다. 바로 조혈모세포다. 보통 조혈모세포는 제대혈이라고도 부르는 신생아의 탯줄에서 뽑아낸 혈액에서 얻어낸다. 탯줄 이외에도 골수, 태아의 태반에도 존재한다.
그리고 <본초강목>에 기록된 요백온(溺白垽)은 인중백(人中白)이라고도 하는데, 인중백에는 소변 변기 옆에 하얗게 달라붙어 있는 물질로 여기에는 혈전 용해제인 유로키나제가 포함되어 있다. 유로키나제는 요로인산화효소를 통해서 만들어지는데, 이 효소는 소변을 통해서 배출되기 때문에 과거에는 제약회사들이 실제로 성인의 소변을 받아 모아서 유로키나제를 얻었다.
1980년대 고속도로 휴게소의 남자 화장실에는 소변기로 큰 플라스틱 용기가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인중백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원료공급의 한계로 인해서 최근에는 신장세포를 대량으로 배양하여 유로키나제를 만들고 있다.
옛날 약이 부족한 시절,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온갖 것들을 모두 약으로 찾아 헤맸다. 사람의 일부까지 약으로 사용하고자 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화학성분들과 인공적인 합성물질들. 지금은 약이지만 알고 보니 나중에는 독으로 결론이 날 수도 있다. 약이 되는 것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 제목의 〇〇은 인부(人部)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본초강목습유> 客有問於予曰: “聞子有綱目拾遺之作乎?” 予曰: “然.” 客曰: “瀕湖博極群書, 囊括百代, 徵文考獻, 自子史迄裨乘, 悉詳採以成一家之言. 且其時不惜工費, 延天下醫流, 遍詢土俗. 遠窮僻壤之產, 險探仙麓之華. 중략. 觀子所爲, 不幾指之駢疣之贅歟?” 余曰: “唯唯否否, 夫瀕湖之書誠博矣! 然物生旣久, 則種類愈繁. 중략. 則予拾遺之作, 又何有續脛重跖之虞乎?” 客應曰: “可.” 卽命予弁斯言於首以爲敍. (어떤 손이 나에게 “그대가 본초강목습유를 지었소?”라고 묻기에, 내가 “그렇소.”라고 대답하였다. 손이 말하기를, “이시진은 여러 서적을 두루 수집함에 백대를 망라하였으며, 각종 문헌을 고찰하고 연구하기를 제자의 글과 역사책에서부터 민간에서 전해져 오는 내용에 이르기까지 하여 모두 상세하게 채록해서 독자적인 내용을 이루었고, 또한 그 당시에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아끼지 않고 천하의 의원들을 초빙하고 치료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두루 물었소. 그리하여 머나먼 외진 땅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다 수집하였고, 험하고 가파른 산기슭에 피는 화초까지 찾아내었소. 중략. 지금 그대가 한 일은, 손가락에 나란히 난 사마귀에 혹을 덧붙이는 꼴이 아닌가?”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아, 그렇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시진의 본초강목은 확실히 내용이 광범위하고 포괄적입니다. 그렇지만 만물이 생겨난 지가 이미 오래되어, 그 종류도 더욱 다양해졌습니다. 중략. 그러므로 내가 본초강목습유를 지은 것이 어찌 괜히 군더더기만 덧붙여 방해만 될 것이라는 우려를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손이 응답하기를, “그 말이 맞소.”하고는 곧바로 나에게 이러한 내용을 첫머리에 붙여 서문으로 삼도록 하였다.)
人部綱目收載不少, 如爪甲代刀, 天靈殺鬼, 言之詳矣. 玆求其遺, 必於隱怪殘賊中搜羅之, 非云濟世, 實以啓奸. 夫殺物救人, 尙干天怒, 況用人以療人乎! 故有謂童腦可以生勢, 交骨可以迷魂, 直羅刹修羅道耳! 噫! 孫思邈且自誤矣, 老神仙, 吾何取哉? 今特刪之, 而附其所刪之意於此. (인부는 본초강목에 수록된 것이 적지 않은데, 예를 들면, 손톱을 칼 대신 쓰거나 천령개가 귀신을 죽인다고 상세히 말하였다. 이 책에서 본초강목의 인부에 빠진 것을 구하는 것은 틀림없이 기괴하고 잔혹한 것 중에서 찾아 수집하는 일이 될 것이니, 세상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는 간악한 길을 여는 것이다. 대개 다른 것을 죽여서 사람을 구하는 것도 오히려 하늘의 분노를 사는데, 하물며 사람을 이용해서 사람을 치료함에 있어서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어린아이의 뇌가 정력을 좋게 할 수 있다고 한 것이나 교골이 사람의 넋을 빼앗게 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바로 나찰이나 아수라도이다. 아! 손사막도 스스로 잘못되었다고 하니 노신선도 그런 것을 나라고 어찌 취하겠는가? 지금 특별히 삭제하면서 삭제한 의의를 여기에 붙여 둔다.)
<본초강목> 人肉. 嗚呼! 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父母雖病篤, 豈肯欲子孫殘傷其支體, 而自食其骨肉乎? 此愚民之見也. 중략. 輟耕錄載 ‘古今亂兵食人肉, 謂之想肉, 或謂之兩脚羊. 此乃盜賊之無人性者, 不足誅矣.’ (인육. 아아! 신체발부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할 수 없다. 부모가 병이 위독하더라도 어찌 좋아라 하면서 자손들의 사지와 팔다리를 잘라서 그 골육을 스스로 먹으려 하겠는가. 이는 어리석은 백성들의 본보기이다. 중략. 철경록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전쟁이 나서 병사들이 인육을 먹으면서 상육 혹은 양각양이라 한다. 이는 인성이 없는 도적들의 행위이니 주벌하기에도 부족하다’라고 하였다.
)
<의부전록> 千金方. 自古名賢治病, 多用生命以濟危急, 雖曰賤畜貴人, 至於愛命, 人畜一也. 損彼益己, 物情同患, 况於人乎? 夫殺生求生, 去生更遠. 吾今此方, 所以不用生命爲藥者, 良由此也. (천금방. 예로부터 이름난 현인들이 병을 치료할 때 생명 있는 것을 사용하여 위급함을 구제한 경우가 많았는데, 비록 짐승은 천하고 사람은 귀하다고 하나, 목숨을 아끼는 데 있어서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마찬가지이다. 남의 것을 덜어 자기에게 보태는 것은 만물의 심정이 똑같이 싫어하거늘, 하물며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떻겠는가? 대개 산 것을 죽여서 산 것을 살리려 하면 살리는 도리에서 더욱 멀어진다. 내가 지금 이 방서에서 생명 있는 것을 약으로 쓰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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