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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바그너 사태에도 구경만...반격 진행 어려워

러시아, 바그너 반란 이후 신속하게 우크라 전선 공백 메워
우크라도 반란 이용하려 했지만 외교 생각한 美가 저지
러시아가 반란 배후로 서방 비난하지 못하게 미리 차단
방어로 돌아선 러시아군, 1년 전과 달라져...우크라 반격 더뎌

우크라, 바그너 사태에도 구경만...반격 진행 어려워
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주 전선에서 우크라군 병사가 잠시 쉬고 있다.AP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지난달부터 반격에 나선 우크라이나군이 최근 바그너그룹의 반란 사건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러시아군을 밀어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압박으로 반란을 지켜보기만 했던 우크라는 러시아 정규군이 바그너그룹을 대체하는 상황에서 더욱 진격하기 어려워졌다.

바그너 빈틈에 정규군 투입
전 세계에서 직원을 고용 중인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은 지난 6월 24일(이하 현지시간)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반란 중단 이후 벨라루스로 망명하면서 우크라전에서 이탈했다. 바그너그룹은 지난 2일 텔레그램을 통해 당분간 우크라 전선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거점을 벨라루스로 옮기는 과정에서 1개월 동안 모병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우크라의 키릴로 부다노우 국방부 군사정보국장은 지난 6월 29일 인터뷰에서 바그너그룹이 더 이상 우크라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그너그룹은 지난해 개전 이후 우크라 전선에서 우수한 전공을 거뒀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우크라 전선에 투입된 바그너그룹 병사가 5만명이며 이 가운데 4만명은 죄수 출신이라고 분석했다. 우크라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1일 발표에서 우크라 동부에서만 "2만1000명의 바그너그룹 병사를 죽였다"고 밝혔다.

프리고진은 반란 당시 자신에게 2만5000명의 병력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서방 정보기관들은 실제로 반란에 참여한 병력이 5000~8000명 수준이었다고 평가했다. 바그너그룹 병력은 반란 이전에 동부 전선에 집중 배치되었으며, 현재 프리고진을 따라 벨라루스로 이동하거나 러시아 정규군에 합류한 숫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프리고진이 반란 당시 최우선 체포 대상으로 지목했던 러시아의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은 3일 회의에서 바그너그룹을 언급했다. 그는 "반란은 우크라 특별군사작전(전쟁)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같은날 세르히 체르바티 우크라 동부 사령부 대변인은 현지 방송에 출연해 러시아군이 우크라 동부에 "18만명 이상 (추가) 배치됐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한때 바그너그룹이 점령했던 거점과 요새 방어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면서 전황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우크라 동부에서 거듭 후퇴했던 러시아군은 바그너그룹의 반란 당일에도 동부 루한스크주 크레민나 인근에서 격렬한 공세를 벌였다. 우크라군에서 남부 전선을 책임지는 올렉산드르 타르나우스키 사령관은 2일 발표에서 "지난 24시간 동안 28번 이상의 전투가 벌어졌고, 이 기간에 러시아군 수백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 바그너 사태에도 구경만...반격 진행 어려워
지난 5월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바흐무트에서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병사들이 바그너그룹의 깃발(왼쪽)과 러시아 국기를 흔들며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AP연합뉴스

외교 생각한 美, 우크라 공작 막아
주요 외신들은 반란 직후 우크라가 이번 사건을 이용해 이익을 챙길 수 있다고 예측했다. 우크라는 사태를 주시한다고 밝혔지만 따로 눈에 띄는 공세나 배후 공작을 하지 않았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6월 30일 보도에서 우크라가 미국의 입김이 때문에 가만히 있었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미 정부는 반란 당시 우크라 정부에게 러시아 국경을 넘는 공격이나 비밀 파괴공작, 그 외 전쟁에서 이득을 챙길만한 어떠한 편법도 쓰지 말라고 경고했다. 미 정부 관계자는 우크라 정보부가 자신이 아는 한 경고를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 정부가 프리고진의 계획을 정확히 몰라 매우 조심스러운 상황이었다고 강조했다.

관계자는 러시아가 이번 반란을 미국이나 우크라가 배후에서 조작했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며 미국이 처음부터 이러한 구실을 주지 않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미 정부는 우크라가 러시아 내부에서 대규모 공작을 하더라도 프리고진의 목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오히려 러시아가 서방을 비난할 핑계만 준다고 판단했다.

미국의 계산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지난 6월 28일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 "미국은 반란 직후 우크라에 이번 사태를 이용하여 러시아 내부에서 파괴공작을 하거나 가까운 미래에 다른 도발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라브로프는 "해당 이야기를 100% 신뢰하지는 않지만 진실로 보이는 믿을만한 정보다"고 말하며 반란을 미국 탓으로 돌리지는 않았다.

NYT는 우크라가 개전 이후 러시아 영토에서 폭탄을 이용한 암살이나 각종 파괴 공작을 진행했으나 미국이 이를 반기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미 정부는 이러한 공작이 큰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외교 문제를 초래한다는 입장이다. 미 정부는 올해 우크라의 러시아인 의용대가 러시아 국경에서 총격전을 벌이자 미군 장비를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우크라, 바그너 사태에도 구경만...반격 진행 어려워
3일(현지시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공개한 영상 속에서 러시아 국적의 한 남자가 체포되고 있다. FSB는 해당 용의자가 우크라이나에 매수되어 세르게이 악쇼노프를 자동차 폭탄으로 암살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악쇼노프는 러시아가 지난 2014년 강제 병합한 우크라 크림반도에 세운 크림 자치공화국의 수반이다.타스연합뉴스

러시아군 달라져, 반격 어려워
우크라의 한나 말랴르 국방차관은 지난 6월 25일 발표에서 반격에 착수한 지 약 1개월 만에 130㎢의 영토를 되찾았다고 밝혔다. 그는 3일 발표에서도 지난주 우크라군이 동부에서 9㎢, 남부에서 28㎢를 탈환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우크라군은 지난해 9월 동부 하르키우에서 9일 만에 9000㎢ 탈환했고 같은해 11월에 남부 헤르손에서 5000㎢를 되찾았다.

젤렌스키는 3일 "지난주는 최전선에서 힘든 한 주였다"며 "하지만 우리는 진전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롭 바우어 군사위원장은 같은날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의 반격이 더디다는 지적에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고 채근하거나 그러지 않는 것에 실망스럽다고 해선 안 된다"며 "이런 종류의 작전은 정말 어려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의 군사전문가 미셸 고야는 AFP통신을 통해 "전선은 7개월 동안 사실상 변하지 않았다"면서 양쪽 모두 화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미 경제 매체 CNBC는 지난 5월 보도에서 러시아군이 전장에 익숙해졌으며 방어로 전환하면서 수많은 지뢰와 벙커를 이용해 전선을 요새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스토니아 국제안보방위센터(ICDS)의 이반 클리슈츠 연구원은 "우크라는 2022년과는 다른 러시아군과 마주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러시아군이 침공 초기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 후 일부 전술과 절차 등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우크라군이 러시아군의 요새와 방어 진지를 돌파하려면 미국이 중동의 여러 전쟁에서 뽐낸 것처럼 압도적인 공군력으로 제공권을 잡아야 한다. 젤렌스키가 서방 정상들에게 반복해서 F-16 전투기 지원을 호소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아울러 고야는 러시아 또한 포탄이 부족해 우크라의 공세를 적극적으로 차단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1년 전 하루 4만~6만발에서 현재는 최대 1만~2만발로 포탄 사용을 줄였다"고 설명했다.

한편 우크라에서는 벨라루스로 이동한 바그너그룹의 잔당을 경계하고 있다. 프리고진은 3일 바그너그룹과 제휴한 텔레그램 채널 ‘그레이존’에 음성 메시지를 올려 “가까운 미래에 전선에서 우리의 다음 승리를 보게 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바그너그룹이 러시아 정부에게 재산을 빼앗기는 상황에서 돈을 벌기 위해 다시 우크라에 복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같은날 그레이존에는 러시아의 바그너 모병소가 일시적으로 멈췄으나 “바그너그룹은 계속해서 인력을 모집한다”는 모병 공고가 올라왔다.

우크라, 바그너 사태에도 구경만...반격 진행 어려워
지난 5월 30일(현지시간) 위치가 알려지지 않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러시아 병사들이 박격포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타스연합뉴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