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현학술원 ‘한·미·일·중 100년’ 컨퍼런스
5일 온라인으로 공개된 최종현학술원의 ‘한·미·일·중 100년’ 컨퍼런스 2부 행사에서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이 연설하고 있다. 사진=최종현학술원 캡쳐
[파이낸셜뉴스] 한반도 주변에서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을 둘러싼 신(新) 냉전 기류가 거세지는 가운데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돌아보는 컨퍼런스가 열렸다. 자리에 모인 석학들은 미국이 옛 소련과 중국 공산당에 대항하기 위해 한일 갈등을 덮는 등 지극히 실리적인 형태로 움직였다고 분석했다.
‘한·미·일·중 100년’ 컨퍼런스를 진행 중인 최종현학술원은 5일 온라인으로 공개한 2부 행사에서 '미소 냉전과 한미일중'을 주제로 1945~1960년대 현대사를 짚었다.
토론 패널로 참여한 한양대 홍용표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조미수호통상조약(1882년) 이후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지만 미국이 한반도에 두 발을 다 올려놓은 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필요에 따라 개입 정도를 조정했다며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발발까지 가능하면 한국에서 발을 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미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자 개입 의지를 보였고 이후 이승만 정부와 체결한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한반도에 묶이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은 그 이후 어느 정도 발은 담그고 있지만 여전히 한반도에 대해서 두 발을 올려놓고 뭔가 하려는 생각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모습은 미국과 일본이 맺은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게 석학들의 시각이다.
이화여대 정병준 사학과 교수는 지난 1951년 일본의 패전 이후 전후 정리를 위해 진행된 평화 회담에서 일본의 전쟁 책임과 배상에 대한 내용이 빠졌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해당 조약이 패전한 일본을 징벌하는 조약이 아니라 공산 세력의 확산에 맞서 미국의 동맹을 추가하는 조약"이라고 평가했다. 이러다 보니 한국을 포함해 일본에게 피해를 입은 국가들이 일본에게 배상을 요구할 국제법상 근거가 흔들리게 됐다는 것이다.
서울대 국제대학원의 박태균 교수는 지난 1961년 휴 팔리 주한미군원조사절단(USOM) 부단장이 작성한 ‘팔리 보고서’를 언급하며 한미 관계가 1960년대까지도 매우 좋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해당 보고서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대외원조가 실패했다고 묘사했으며 이는 한동안 미 정부가 한국을 부정적으로 보는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박 교수의 분석이다.
특히 미국은 주한미군 감축을 추진하며 한일 관계 정상화 문제로 한국과 갈등을 빚었다. 박 교수는 미국이 아시아에서 맡고 있는 부담을 일본에 넘기길 원했다며 그 과정에서 한일협정 체결을 지지했다고 분석했다.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1964년 한국의 베트남 파병 이후에나 나아지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대 남기정 일본연구소 교수는 일본이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의 동아시아 ‘기지 국가’ 역할을 맡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이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 분단을 상정하고 장기적인 외교 전략을 구상했다며 한반도 정전 협정이 일본의 외교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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