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고 상당수 '베이비박스'
상담 거친 경우만 무죄 받아.. 관련 법안 발의됐지만 폐기
오는 12일 2015∼2022년 전국 출생 미신고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 발표를 앞두고 각 지자체 조사 및 경찰 수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상당수의 출생미신고 아동이 베이비박스에 인계된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은 지난 9일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운영 중인 베이비박스 내부 공간의 모습. 연합뉴스
최근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아동 가운데 상당수가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것으로 밝혀지면서 베이비박스 합법화 방안을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베이비박스는 아이를 키울 여건이 되지 않는 부모가 아이를 안전하게 놓고 가도록 '주사랑공동체 교회'가 처음 운영했다. 하지만 수사기관에 의해 기소돼 재판이 진행된 사건 가운데 1건을 빼고는 모두 유죄판결이 나온 바 있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둘 경우 최소한 아이 생명은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합법화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합법화 할 경우 이를 악용해 아이를 버리는 부모가 더 많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미신고아동 절반 이상 베이비박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 7일 오후 5시까지 전국 시·도청에 '출생 미신고 영아' 사건 1069건이 접수돼 939건을 수사 중이라고 10일 밝혔다. 939건 중 사망은 11건, 소재 불명이 782건, 소재 확인은 146건이다.
'출생 미신고 영아' 사건이 상당수는 베이비박스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감사를 통해 파악한 미신고 아동 2236명(2015~2022년생)이다. 같은 기간 태어난 아이 1418명이 베이비박스를 통해 보호된 것으로 확인됐다.
베이비박스가 아이는 살릴 수 있지만 생부모가 기소될 경우 대부분 유죄를 받는다. 지난 2013년 1월부터 2023년 1월까지 10년간 '베이비박스 유기'와 관련해 확정판결을 받은 사례 16건 중 실형은 1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15건 중 무죄는 1건, 14건은 징영혁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베이비 박스에 아이를 놓고 갔지만 '상담'을 거친 경우에만 재판부로부터 무죄를 받았다. 아이를 위탁해 보육기관에 맡긴것과 다름 없다는 취지였다.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베이비박스 관리자와 상담 여부, 당시 유기 상황, 경제적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베이비박스 합법화 '찬반팽팽'
출생 미신고 아동중 절반 이상이 '베이비박스' 아동으로 분류되자 베이비박스를 합법화 하는 방안을 두고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베이비박스 합법화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영아 유기'는 막지 못하지만 생명은 살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와 반대로 베이비박스 합법화로 영아 유기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주사랑공동체의 양승원 사무국장은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간 부모 가운데 30%는 출생신고를 하고 자신이 아이를 돌보는 것을 선택했다"며 "아이를 버리기 위해 베이비박스를 찾는 게 아니라 아이를 살리기 위해 찾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와 같이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미혼모, 혼외 자식 등에 대한 좋지 못한 시각이 있다"며 "직접 키우지 못하는 아이에 대해 보호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주사랑공동체에 따르면 현재 독일 100여 곳, 체코 47 곳, 폴란드 45 곳, 일본 1곳 등 많은 나라들이 정부 또는 민간(여성병원 등)에서 베이비박스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베이비박스가 금지돼야 한다는 시각도 날을 세운다. 영아 유기를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가 크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지난 2019년 정부에 '익명으로 아동 유기를 허용한다'는 취지로 베이비박스 금지를 촉구한 바 있다.
박영의 세이브더칠드런 선임매니저는 "실제 베이비박스가 영아 살해를 막는다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며 "독일에서도 지난 2009년 윤리위원회 보고서를 통해 베이비박스가 생긴 뒤로도 유기나 살해된 신생아 수가 감소하지는 않았다고 발표한 바 있다"고 전했다.
한편 국회 차원에서도 베이비박스 합법화 관련 법안이 발의된 바 있다. 지난 2018년 오신환 전 바른정당 의원이 베이비박스 합법화 법안을 발의한 바 있으나 임기만료 폐기됐다. 당시 보건복지위원회의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제도화할 경우 아동이 출생 후 공적으로 등록되고 자신의 부모를 알 권리를 제한하고 영아 유기를 오히려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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