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 외부 전경.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 다수의 지역 선관위 공무원이 소속 민간인 선관위원으로부터 골프·해외여행 경비를 제공받는 등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을 어긴 사실이 들통났다. 감사원은 2019년 2월 이후 4년 만에 선관위 업무 전반과 예산·회계를 들여다봤다.
감사원이 10일 공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49개 시군구 선관위 중 146개 선관위는 선관위원 회의 참석수당을 나눠주지 않고 부서비로 일괄 적립한 뒤 멋대로 사용했다. 선관위 공무원 20명은 해외·골프 여행경비를 지원받는 방식으로 금품을 수수했고 89명은 전별금을, 29명은 명절 떡값을 받아 챙겼다. 지역 선관위 직원은 모두 1925명인데 이 중 128명(6.6%)이 청탁금지법을 위반한 셈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지역 선관위원 대부분은 별도의 직업을 가진 비상임·명예직이다. 기관별로 9명씩 위촉되는데, 이 중 정당으로부터 추천받는 3명은 향후 출마를 염두에 둔 정치인이다. 각종 공직선거 등에 나서면 거꾸로 지도·단속 대상이 되기 때문에 '출마 대비용 보험'으로 선관위 공무원을 관리하고자 했다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노정희·노태악 대법관 등 전·현직 중앙선관위원장이 위법한 수당을 받은 사실도 밝혀냈다. 중앙선관위는 2013년부터 위원장에게 월 290만원, 위원 7명에겐 월 215만원의 수당을 지급했다. 비상임 위원들은 회당 10만원의 일비와 안건별 10만원의 검토수당을 따로 받았다고 하니 명백한 이중 지급이다. 이 밖에 2019∼2022년 실시한 23회의 경력직 채용 서류전형에서 응시자들의 경력에 점수를 잘못 부여한 경우도 57건이나 적발됐다.
이쯤 되면 선관위는 근무자에겐 '요지경'이요, 국민에겐 '복마전'이라 할 만하다. 공직사회에서 오래전 없어진 것으로 알려진 '전별금'이나 '명절 떡값'도 버젓이 살아 있었다. 선관위는 출마자와 선출직을 벌벌 떨게 하는 엄중한 선거법 집행기관이지만 정작 선관위 내부는 법에 관대하고 위반이 예사였던 셈이다.
'소쿠리 선거'나 '아빠 찬스 채용'을 남발해도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이유로 외부 견제나 감시에서 자유로웠던 결과이기도 하다. 이번 감사를 계기로 선관위 조직의 환부를 도려냄은 물론이요, 기관의 기강을 다시 세울 조직진단이 필요하다. 환골탈태 수준의 대수술을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함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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