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과 노선을 달리했다. 문 정부가 친중 행보를 보였다면, 윤 대통령은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 등과 관계를 강화하는 새로운 틀을 짜는 형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생존전략을 잡았던 그간의 '전략적 모호성'을 버리고, 미국으로 기울어진 외교를 구축해 나가는 셈이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이처럼 한국의 바뀐 외교노선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윤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즈음한 올해 4월 주요 외신과 인터뷰에서 "(대만해협에서의 긴장 고조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국제사회는 함께 이러한 변화(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상대로 중국은 "내정간섭"이라며 곧바로 반발했다.
한국 정부는 환구시보 등 관영매체와도 설전을 벌였다. 환구시보가 한국 정부 외교를 놓고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비판하자 "우리 정부의 외교정책을 매우 치우친 시각에서 객관적 근거도 없이 일방적으로 폄훼했다"고 맞섰다.
6월에는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는 것 같은데, 이는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라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외교부는 중국 당국에 싱하이밍 대사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으나 사실상 거절당했다. 윤 대통령까지 나서 "싱 대사의 태도를 보면 외교관으로서 상호존중이나 우호증진의 태도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직접 경고했다.
한국 정부의 외교방식은 지지도 받았으나, 상대적으로 우려도 많았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국방부문 선임연구원인 데릭 그로스먼은 일본 닛케이 기고문에서 "베이징과 서울 간의 설전이 격화되고, 한국 기업과 수출품에 대한 중국 보복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더 큰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근 들어선 최영삼 외교부 차관보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중국을 다녀가며 소통재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오는 13~14일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 등을 계기로 중국 외교수장과 양자회담을 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중 관계가 미·중 관계를 능가하는 극도의 대립으로 치닫기 전에 대화와 교류의 물꼬를 튼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다만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의 방중 직전에 한중 소통이 시작됐다는 점은 아쉽다. 표면적인 갈등과 달리 물밑에선 꾸준히 외교전을 펼쳤다고 해도, 미·중 화해 분위기에 부랴부랴 전략을 수정했다고 인식할 수 있을 만큼 시점이 공교롭다.
중국을 겁낼 이유는 없다.
상호주의에 맞춰 당연히 중국으로부터 존중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또 다른 강대국에 맞춰 살아갈 필요 역시 없다. 외교에선 영원한 적군도, 동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jjw@fnnews.com 정지우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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