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가 추진하는 청년 미팅
결혼·출산 포기하는 미혼 늘자 성남·달서·장흥 등 '소개팅' 주선
예산 낭비 아니냐는 의견 지배적.. "고용·저임금 문제부터 해결해야"
긍정적으로 활용하자는 의견도.. "성비 불균형 지역에는 좋은 기회" "결혼 성사되면 지원금까지 주자"
지난 9일 경기도 성남시 그래비티 호텔 서울 판교에서 성남시가 기획한 청춘남녀 단체 미팅 행사 '솔로몬(SOLOMON)의 선택'이 진행되고 있다. 성남시는 이날까지 올해 총 2차례 행사를 열어 모두 39명의 커플을 탄생시켰다. 성남시 제공
최근 지자체들이 청춘남녀의 만남을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청년만남, 서울팅(Seoul meeTing)'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관련 예산 8000만원을 올해 추가경정예산안에 편성했다. 다만 서울시의회가 추경안에서 서울팅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사업은 무산됐다.
서울은 무산됐지만 다른 지자체의 경우 수년전부터 예산으로 관련 행사를 열고 있다. 행사로 탄생한 커플도 있다.
경기도 성남시는 올해 단체 미팅프로그램 '솔로몬(SOLOMON)의 선택'을 기획했다. 행사에서는 모두 39쌍의 커플이 탄생했다. 대구 달서구는 지난 2016년 7월 전국 최초로 청춘 남녀의 맞선 주선 업무를 중점적으로 하는 결혼장려팀을 신설했다. 전남 장흥군은 지난 2020년부터 20~49세 미혼남녀들을 대상으로 '솔로엔딩 연애컨설팅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전남 광양시에서도 미혼남녀 20명씩을 상대로 만남을 주선하는 '광양 솔로엔딩'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청춘남녀의 만남에 지자체들이 나선 이유는 미혼 인구 증가와 저출생 문제 때문이다. 서울만 봐도 합계출산율(0.59명)이 전국 최저를 기록했고 출생아 수의 선행지표인 혼인 건수도 서울의 경우 지난 10년간 50% 감소했다.
그렇지만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청년세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이른바 '관제 미팅'이 미혼 인구 증가와 저출생이 문제의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다. 연애할 시간이나 여유를 만들어 주고 결혼과 출산을 할 인프라를 조성하는 역할을 할 지자체가 '소개팅 주선자'로 나설 필요는 없다는 것.
반면 반기는 입장에서는 최근 사회적 분위기를 언급했다. 만남 과정에서 직업 등에 대해 거짓말을 하거나 범죄자를 만날 수도 있는데 지자체가 나선다면 최소한 신원이 보증된다는 점에서다.
■"근본 해결아냐...혼인율↑ 없을 것"
11일 기자를 만난 20~30대 청년세대들은 지자체의 소개팅 주선에 대해 예산낭비가 아니냐는 인식을 표출했다.
직장인 김모씨(29)는 "학교나 회사에서 일종의 이벤트로 했으면 재미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지자체가 한다니 예산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다고 혼인율이 높아지지도 않을 것"이라며 "지자체들의 재정이 적자라는 이야기가 많은데 성과도 내기 어려운 곳에 예산을 쓰는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취업준비생 장모씨(27)는 "핵심을 잘못 짚었다. 만날 기회가 부족한 건 삶의 기반을 구축하기에 바쁘기 때문"이라며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은 일자리가 부족하고 일자리가 있어도 연봉이 낮거나 시간이 부족해 결혼과 출산이 어렵기에 생긴 일"이라고 강조했다.
성공할 수 없는 정책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직장인 손모씨(36)는 "사람들은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자체의 소개팅 주선은)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다"며 "지자체의 소개팅에 참석하는 순간 이성을 만나지 못하는 '루저(loser)'라는 취급을 당할 것이다. 진짜 필요한 사람도 지자체가 진행하는 소개팅에는 참석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른 직장인 구모씨(31)도 "저출산 대응으로 지자체가 나서서 소개팅을 주선한다는 것이 뭔가 어색하다"며 "저출산은 이성을 만날 기회가 없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삶이 팍팍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구씨는 "예를 들어 중소기업에 다니거나 취업을 못 한 사람이라면 좌절감 때문에 이성을 만나지 않으려고 한다"며 "조금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이나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지자체라면 (안전하게 사람을 만나고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책 도입 취지 자체에 동의가 어렵다는 인식도 있었다.
성북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씨(29)는 "저출생 대응 차원에서 만남을 주선한다는 의도 자체가 기분이 나쁘다. 전형적인 탁상행정이고 세금낭비 같다"며 "(예컨대) 재직증명서로 신원을 보증한다고 하는데 직업이 없으면 범죄를 저지르고 있으면 범죄를 안 저지른다는 말인가"라고 토로했다.
또 류혜정씨(34)는 "결혼, 출산이 쉽지 않은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증 요법으로 접근하는 것 같아 아쉽다"며 "결혼, 출산, 육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만남을 주선하는 등 쉬운 방법으로만 접근하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봤다.
■ "지자체가 신원 보증...신뢰 생겨"
반대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청년세대 중에서는 만남의 기회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필요성이 있다는 목소리도 존재했다. 특히 최근 데이트 폭력이나 스토킹 등의 범죄가 늘어나면서 누구를 만난다는 것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반겼다.
직장인 전모씨(30)는 "재직증명서나 혼인증명서 등으로 어느 정도는 신원이 보증된 사람끼리 만난다고 하니 신뢰도가 생긴다"며 "프로그램만 재밌게 짠다면 시도 자체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유병준씨(37)는 "결혼정보회사는 결혼이라는 무거운 목적이 있는 데 비해 공공기관에서 최소한의 신분을 확인해 만남을 주선하면 신뢰도가 있어 만남이 용이할 수 있다"며 "어플로 동네 친구를 만나는 시대에 청년들 만남을 주선하는 이벤트를 지자체가 할 수 있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지역적으로 필요성에 있는 지자체도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변경진씨(34)는 "신선한 발상이다. 화성이나 울산 같은 지역은 남녀 성비가 너무 안 맞는다. 이런 지자체에서 다른 지자체와 만남을 통해 소개팅 등을 한다면 매우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며 "단순 소개팅이 아니고 이를 통해 결혼 등 성사한다면 지원금을 주는 등 하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청년들도 저출산 대책은 될 수 없으며 홍보가 이뤄진다는 점에서는 부정적이었다. 직장인 강모씨(26)는 "취지는 좋다. 재미로 해볼 수는 있다는 생각도 든다"면서도 "저출산이란 말 대신 청년 복지라는 명분으로 했으면 비판 여론이 적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강명연 김동규 노유정 주원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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