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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비구니 스님의 〇〇〇이 침치료 14일만에 완쾌되었다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한동하의 본초여담] 비구니 스님의 〇〇〇이 침치료 14일만에 완쾌되었다
<의종금감>에 그려진 귀 주위의 경혈도인 ‘측두면항견혈총도(側頭面項肩穴總圖, 왼쪽)와 ‘측액협늑혈총도(側腋脇肋穴總圖)’를 보면 거의 모든 경락이 귀 주위를 감싸고 있다.

옛날 한 의원이 절을 찾았다. 그 의원은 난치병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매년 봄이면 환자들과 함께 절에 머무르면서 치료를 해왔다. 그 해에도 거동이 불편한 환자 7~8명과 절에 머물면서 치료를 하게 된 것이다. 그 의원은 특히 침을 잘 놓는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인근 암자의 비구니 스님이 의원을 찾았다.

비구니는 의원에게 “제 귀가 갑자기 들리지 않습니다. 요즘 암자를 다시 고쳐 만드느라 날마다 산속의 돌을 옮겨 쌓으면서 피곤함이 심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갑자기 오른쪽 귀에 소리가 들리지 않기 시작하더니 종과 북이 시끄럽게 울려도 먹먹하면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라고 하소연을 했다.

의원은 왼쪽 귀는 괜찮냐고 물었다. 그러자 “왼쪽 귀는 어릴 적 열병으로 인해서 먹어서 오른쪽 귀만 들렸는데, 이제는 오른쪽 귀도 들리지 않게 돼서 무섭습니다.”라고 했다.

의원이 진맥을 해 보니 촌구(寸口) 맥은 침세(沈細)하면서 척맥(尺脈)은 잘 잡히지 않았다. 맥이 침세하다는 것은 허(虛)하다는 증거였고, 척맥이 안 잡힌다는 것은 신장(腎臟)이 약한 것을 의미했다. 맥상을 보니 귀먹음 증상과 관련이 있어 보였다.

의원이 “식사는 잘하십니까?” 하고 묻자, 비구니 스님은 식사는 하루에 아침 한 끼 정도 작년에 수확해 놓은 고구마와 함께 강냉이죽을 쒀 먹는다고 했다.

반찬은 고작해야 산나물이었다. 혼자서 돌을 나르고 일하는 것이 힘들고 바빠서 제대로 밥을 먹을 수 없었고, 기운이 없으니 식욕도 없어 저녁이 되면 그냥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고 했다. 설상가상 스님이라 육고기는 입에 대지도 못하는데, 하물며 끼니까지도 건너뛰니 기운이 회복될 리 만무했다.

스님은 자신을 빨리 치료해 달라고 애걸복걸했다. 의원은 가지고 있는 약재가 없어서 침으로만 치료를 해 보자고 했다. 대신 식사는 하루 세끼를 잘 챙겨 먹으면서 특히 검은콩을 볶아서 배가 고플 때마다 수시로 한주먹씩 먹으라고 했다. 그리고 아침마다 들기름을 한 숟가락씩 먹으라고 했다.

검은콩은 예로부터 이명과 난청에 민간요법으로 많이 활용되었는데, 영양분도 풍부하고 특히 콩팥의 기운을 보충해 주면서 기운이 나게 한다. 들기름은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노폐물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모두 이명과 난청에 도움이 되는 식품들이다. 호두나 잣 등 견과류들도 좋다.

의원은 먼저 허리에 있는 신수혈에 뜸을 떴다. 그리고 정수리의 백회혈, 귀 뒤의 예풍혈에 침을 놓고 침 끝에 3장씩 뜸을 뭉쳐서 불을 붙였다. 쑥뜸에 불이 붙어 그 열기가 침에 전달되어 겨우 살에 닿을 때 쯤에 바로 쑥뜸 뭉치를 털어버렸다. 너무 뜨거우면 자극이 강해서 미리 풍기(風氣)를 없앤 것이다. 이것은 옛날의 소침미법(燒針尾法)으로 바로 침의 꼬리를 달구는 침법이다.

또한 매일 아침마다 발목 주위에 있는 태계혈과 신맥혈, 발등에 있는 임읍혈, 손등의 합곡혈과 중저혈, 후계혈에 침을 놓았다. 태계혈은 족소음신경에 있는 혈자리고, 신맥혈은 방광경, 임읍혈은 담경, 합곡혈은 대장경, 중저혈은 삼초경, 후계혈은 소장경에 있는 혈자리다. 이들 혈자리는 오장육부의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서 선택된 혈자리들로 모두 오수혈(五腧穴)에 속해 기운이 강했다.

비구니 스님은 날마다 새벽이면 절에 도착해서 침을 맞고 절에서 아침 공양(식사)을 같이 했다. 그렇게 10일 정도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11일째 아침, 아침 공양을 드릴 때가 되어서도 비구니 스님은 오지 않았다.

비구니 스님이 도착하지 않아 의원은 어쩔 수 없이 혼자서 공양을 드렸다. 이미 절의 스님들은 공양을 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 말이 많고 끼어들기를 좋아하던 한 스님이 “의원님, 오늘은 왜 혼자이십니까? 비구니 스님은 식사도 안 하고 가신 건가요?”하고 물었다.

의원은 시무룩해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공양을 드렸다.

그러자 그 스님은 눈치를 채고서는 큰소리로 “내 이럴 줄 알았소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사정사정해서 자신을 치료해 달라고 빌더니, 침이 효과가 없다고 해서 그 동안이라도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안 나타나다니. 이롱(耳聾, 귀먹음)이 그렇게 쉽게 낫는 병이 아닐텐데, 의원님은 어쩌자고 그런 무례한 스님을 치료해 준다고 해서 이렇게 애를 태우는 것입니까? 예의도 모르는 못된 중 같은 이라고. 나무아미타불”라고 했다.

워낙 소리가 커서 공양 중인 스님들이 모두 들을 정도였다. 의원은 말없이 발우(鉢盂)를 설거지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비구니 스님이 들어오면서 “스님께서 욕이 지나치십니다. 예를 모르고 못된 중이라니요?”라고 화를 냈다.

스님들은 깜짝 놀랐다. 특히나 비구니 스님의 흉을 봤던 스님이 “아니, 들립니까? 제 말을 들었습니까?”하며 거듭 물었다.

욕하는 것을 들켜서 놀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을 들었는지가 궁금했다. 비구니 스님은 양쪽 귀가 모두 먹은 상태가 아니었던가.

그러자 비구니 스님은 “지난 밤 자고 난 후에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서 헛것을 들었나 했습니다. 그런데 방문을 열어 보니 고양이가 울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기쁨을 감출 수 없어 의원님께 드리려고 밥과 나물을 구해 오느라 이렇게 늦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의원은 놀랐다. 의원은 놀람을 진정시키고 나서, 당연히 오른쪽 귀가 들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비구니 스님의 오른쪽 귀에 대고 “이 정도로 소곤소곤 말을 해도 잘 들립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비구니 스님은 “지금 들리는 귀는 어릴 때 먹었던 왼쪽 귀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최근에 먹은 오른쪽 귀는 아직 들리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어릴 때 먹었던 왼쪽 귀가 들린다는 말에 의원과 스님들은 한 번 더 놀랐다. 의원은 다행스럽게 생각하면서 그 이후로 3일 동안 계속 침을 놓았다. 그랬더니 이제는 오른쪽 귀까지 들리게 되었다. 비구니 스님의 이롱(耳聾)이 14일간 침을 맞고 양쪽 귀가 모두 들리게 된 것이다.

의원은 그때서야 “내가 스님께서 치료를 재촉하시는 바람에 첫날 진찰 후 제대로 된 설명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지금이라도 편한 마음으로 설명을 드리게 됨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귀와 눈은 양기(陽氣)를 받아야 밝아집니다. 달이 반드시 햇빛을 받아야 비로소 빛나듯이 사람의 귀와 눈은 반드시 양기를 받아야 비로소 밝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귀와 눈의 음혈이 허하면 양기를 받을 수가 없어서 귀와 눈이 밝지 않게 되고, 귀와 눈의 양기가 허하면 음혈(陰血)이 스스로 작용하지 못해서 역시 밝지 않게 됩니다. 음혈은 음식을 통해서 공급이 되어야 하는데, 일을 하느라고 원기(元氣)를 모두 소모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음식도 제대로 못 드셨으니 음혈이 부족해지고 양기가 떠오르지 않으니 귀가 어두워지는 것은 당연했겠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청력을 기르려면 배고프지 않도록 골고루 잘 드셔야 합니다.”라고 했다.

또한 “게다가 귀는 신장의 기운이 통하는 구멍입니다. 그래서 정기(精氣)가 조화로우면 신장이 강성하여 귀가 오음(五音)을 들을 수 있으나, 일을 많이 하여 기혈을 손상시키고 아울러 풍사(風邪)를 받아 신장이 상하여 정이 몹시 부족하면 귀가 먹어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명이나 귀먹음을 치료하는 처방도 풍열(風熱)이나 허열(虛熱), 담화(痰火) 등 허실한열(虛實寒熱)의 원인에 따라서 달리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휴식을 충분히 취해서 기혈을 조리하고 비바람이 부는 날에는 실내에 기거하면서 외부 환경에 혹사됨을 피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비구니 스님은 “제가 암자에 혼자 있고 힘을 써서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라고 걱정을 했다. 이 말을 듣고 있는 절의 남자 스님들이 앞으로 암자를 일구는 일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의원은 자신의 귓불과 귓바퀴를 문지르거나 잡아당기면서 “나이가 들어도 귀가 먹게 하지 않는 수양법이 있습니다. 횟수에 상관없이 손으로 귓바퀴를 문지르고 잡아당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옛말에 ‘성곽(城郭)을 닦는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치아를 가볍게 마주치게 하고 혀를 입안에 굴려 침을 만든 후에 생겨난 침을 3번에 나눠서 천천히 삼킵니다. 그다음에 오른손을 머리 위로 넘겨 왼쪽 귀를 14번 당기고 다시 왼손을 머리 위로 넘겨 오른쪽 귀를 14번 당깁니다. 이렇게 하면 신기(腎氣)를 보해주고 다시 귀가 먹는 것을 막아 줄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비구니 스님과 절의 스님들은 모두 자신의 귓불과 귓바퀴를 잡아당기는 동작을 하면서 서로를 보고서는 모양이 우스웠던지 “껄껄껄” 웃었다.

** 제목의 〇〇〇는 ‘귀먹음’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명의경험록(名醫經驗錄)> 醫案. 耳聾. 乙巳四月, 與病友七八, 會留于佛甲寺矣. 文殊菴一尼來見曰, 小尼左耳則自兒時已聾塞, 右耳則今重創菴子, 而勞役築砌, 忽然聾塞, 鍾鼓喧到, 漠無聽聞, 遽作一病人, 乞垂治方. 余惕其病狀, 先灸腎兪, 針百會ㆍ翳風穴, 卽灸三壯, 而火纔至肉, 旋卽掃却, 以去風氣, 此是古燒針尾之法也. 太溪ㆍ申脈ㆍ臨泣ㆍ合谷ㆍ中渚ㆍ後溪等穴, 逐日行燒尾. 尼曰必凌晨來到矣, 第十一日, 已當食時而不來房, 有一僧本是多辯好謔者, 大辱尼者尙可不來云云, 飯器已輟, 其尼奄入曰, 師主何辱人過度云, 諸僧大驚曰, 能聽能聽, 仍問則曰, 夜間一眠後, 能聽兒啼, 不勝喜幸, 求得飯菜而來, 故以是晩也. 然兒時聾者明, 而今聾姑不明. 其後連針三日, 其耳亦明. 受針十四日, 而左右俱明. (의안. 이롱. 을사년 4월 환자들 7~8명과 불갑사에 머물렀다. 문수암의 한 비구니가 찾아와 말하길 “제 왼쪽 귀는 어릴 때부터 이미 먹었고, 오른쪽 귀는 요즘 암자를 중창하면서 돌을 쌓느라 피곤했는데 갑자기 들리지 않아 종과 북이 시끄럽게 울려도 막막히 아무 것도 들리지 않습니다.”라고 하며 갑자기 환자가 되어 치료법을 알려달라고 애걸하였다. 나는 그 증상이 가련하여 먼저 신수에 뜸을 뜬 후 백회, 예풍에 침을 놓고 침 끝에 3장씩 뜸을 떴는데 열기가 겨우 살에 닿을 쯤에 바로 털어버려서 풍기를 없앴다. 이것은 옛날의 소침미법이다. 태계, 신맥, 임읍, 합곡, 중저, 후계혈에 날마다 소침미법을 행하였다. 그 비구니는 언제나 새벽에 왔었는데 11일째에는 이미 아침밥을 먹을 때가 되어서도 오지 않았다. 어떤 말 많고 농담을 좋아하는 스님이 그 비구니가 아직도 오지 않았느냐고 크게 욕을 하였다. 밥상을 물리자 그 비구니가 슬며시 들어와서는 “스님께서 욕이 지나치십니다.” 하니 스님들이 깜짝 놀라서 “들립니까? 들립니까?” 하며 거듭 물었다. 그 비구니가 “지난 밤 자고난 후에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서 기쁨을 감출 수 없어 밥과 나물을 구해 오느라 이렇게 늦었습니다. 그러나 어릴 때 먹었던 왼쪽 귀는 들리는데 최근에 먹은 오른쪽 귀는 아직 들리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 후에 3일 동안 계속 침을 놓았더니 오른쪽 귀까지 들리게 되었다. 14일간 침을 맞고 양쪽 귀가 모두 들리게 된 것이다.)
<동의보감> 耳目受陽氣以聰明. 人之耳目, 猶月之質, 必受日光所加, 始能明, 耳目亦必須陽氣所加, 始能聰明. 是故耳目之陰血虛, 則陽氣之加無以受之, 而視聽之聰明失, 耳目之陽氣虛, 則陰血不能自施, 而聰明亦失. 然則耳目之聰明, 必須血氣相須, 始能視聽也. (귀와 눈은 양기를 받아야 밝아진다. 달이 반드시 햇빛을 받아야 비로소 빛나듯이 사람의 귀와 눈은 반드시 양기를 받아야 비로소 밝아진다. 그래서 귀와 눈의 음혈이 허하면 양기를 받을 수가 없어서 귀와 눈이 밝지 않게 되고, 귀와 눈의 양기가 허하면 음혈이 스스로 작용하지 못해서 역시 밝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귀와 눈은 반드시 혈과 기가 서로 의지해야 비로소 밝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修養法. 以手摩耳輪, 不拘遍數, 所謂修其城郭, 以補腎氣, 以防聾聵也. (수양법. 횟수에 상관없이 손으로 귓바퀴를 문지른다.
이것을 ‘성곽을 닦는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신기를 보해주고 귀가 먹는 것을 막아 준다. 청력을 기르려면 늘 배불리 먹어야 한다.)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