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산사태
밤새도록 대피 방송 나왔지만 주민들 폭우에 피할 엄두 못내
오송 지하차도 침수
미호강 임시 제방 모래로 쌓고 호우경보에도 차량통제 안해
16일 오전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마을이 산사태로 초토화된 채 복구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청주(충북)·예천(경북)=김원준 김장욱 기자】 "쓰나미처럼 불어난 물이 지하차도로 몰려 왔다."(충북 오송 지하차도 사고 목격자)
"창문 너머로 보니 앞집이 쓸려 내려가고 있었다. 나가면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경북 예천 산사태 생존자)
16일까지 나흘간 쏟아진 '극한호우'로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낸 '경북 예천 산사태'와 '충북 오송 차량침수' 사고로 지역사회가 망연자실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사전에 막을 수도 있었던 것 아니냐는 아쉬움마저 터져나오고 있다. 이날 두 지역을 합쳐 최소 20명 이상 사망자가 나올 것으로 우려된다.
경북 예천 산사태는 이미 경보가 밤새도록 울렸지만, 참사를 막지 못해 안타까움이 더했다. 주민에 따르면 밤새도록 예천군의 대피방송과 안내문자가 계속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유례없는 대형재난을 대부분 예상치 못했고, 기록적 호우 앞에서 많은 인명피해로 이어졌다.
이번 대형참사는 유례없는 폭우와 대형 산사태에 즉각 대응이 쉽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주민들은 대피방송을 계속해도 피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전했다. 지역 관계자는 "어르신들을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에 모셔다 놓으면 집이 걱정돼 어느새 또 집에 가 계셔서 경찰관을 대동해 설득해서 다시 모시고 온 경우도 있었다"며 안타까운 심경을 보였다.
■대피령에도 참사 피하지 못해
유례없는 산사태를 대부분 예상치 못하면서 대피하지 못한 주민들이 매몰됐다. 경북 예천 일대는 산사태 취약지역이라는 정부 지정과 대피소가 이미 마련돼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를 막지 못했다. 이번 집중호우로 예천에서는 이날 오후까지 사망 9명, 실종 8명의 인명피해가 났다. 산사태로 마을이 떠내려가며 6명이 사망하면서 가장 큰 피해가 난 효자면 백석리는 지도상 '산사태 취약지역' 4곳으로 둘러싸인 지형이다.
산사태 취약지점 4곳이 1.5㎞ 반경의 꼭짓점 4개로 수해가 난 마을을 감싸고 있다. 대피소를 각기 백석경로당, 예천곤충연구소, 고향경로당으로 정했지만 사고를 막지 못했다.
인근 감천면 진평리에서도 산사태로 주택이 매몰되고 4명이 실종됐다. 은풍면 은산리와 금곡리에서는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실종됐다. 두 사고지점 가운데에 낀 송월리 산림은 2014년 10월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됐다. 용문면 사부리에서도 산사태로 주택이 매몰돼 2명이 사망했다. 이곳은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된 지점과 산 하나를 사이에 낀 마을이다.
■범람에도 위험지역 교통통제 안해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 충북 오송 지하차도 침수사고를 두고도 차량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호우경보가 내려진 상황에서 차량통제를 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침수된 차량들은 미호강 제방 붕괴로 쓰나미처럼 지하차도로 밀려 들어온 강물을 피하지 못했다. 길이 430m의 지하차도 터널은 2∼3분 만에 6만t의 물로 가득 찼다. 지하차도에 배수펌프가 있지만 배전실마저 물에 잠기면서 작동하지 않았다. 미호강의 허술한 제방관리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미호강 철골가교 사이의 임시둑이 모래로 엉성하게 쌓여있어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터졌다는 것이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당초 차량 19대가 침수된 것으로 파악했으나 경찰이 CCTV를 분석한 결과 버스 1대, 트럭 2대, 승용차 12대 등 총 15대가 지하차도에 갇힌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들 차량의 정확한 탑승인원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고, 지하차도에는 '에어포켓' 등 피신할 공간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인명피해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금강홍수통제소는 지난 15일 오전 6시30분께 사고가 난 지하차도와 직선거리로 약 600m 떨어진 미호천교의 수위가 홍수경보 수준보다 높아지자 관할구청에 인근 도로의 교통통제 등이 필요하다고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행정당국의 교통통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충북도 관계자는 "호우경보가 내려도 도로상황 등을 파악해 차량을 통제하게 돼 있다"며 "이번 사고는 제방이 범람하면서 짧은 시간에 많은 물이 쏟아져 들어와 차량을 통제할 시간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오송지하차도 침수현장에서 시신이 대거 발견된 청주 747번 급행버스는 폭우로 노선을 우회했다가 변을 당했다. 이 버스는 위태로울 정도로 미호강 수위가 높아졌는데도 당국이 교통통제를 하지 않은 지하차도에 진입, 참사가 발생했다.
kwj5797@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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