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부만 주문 가능한 메뉴도 있어
회관병, 주 68시간 격무 시달려
육군 "모든 복지회관 점검하겠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26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육군9사단 백마회관 갑질 및 부조리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에는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이 증거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속 소주병에는 회관병들이 지휘부와 관련된 문구를 넣어 제작한 라벨이 붙어 있다.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전임 요리사처럼 군 복지회관의 병사에게 특별 메뉴를 요구하는 등 호화 파티를 벌인 육군 제9사단 지휘부의 갑질 행위가 드러났다. 회관병들이 주 68시간 이상 격무에 시달린 정황도 밝혀졌다.
군인권센터는 26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육군9사단 복지회관인 '백마회관'에서 고위급 간부가 갑질을 했다고 발표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육군 제9사단장 이하 사단 지휘부는 백마회관에서 16첩 반상 한정식, 홍어삼합 등 메뉴판에 없는 특별요리를 주문하거나 사적 모임에 부당하게 이용하는 등 의혹을 받는다. 또 메뉴판에는 기재돼 있지만 지휘부만 주문할 수 있는 '양식 코스'도 있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일반인이 양식코스를 주문하면 조리 가능 인원이 없다고 둘러대고 주문을 받지 않았다. 양식코스는 에피타이저부터 파스타, 스테이크, 디저트가 포함된 구성으로 적자 수준인 3만8000원에 제공됐다. 회관병은 지휘부의 주문에 따라 디저트로 직접 수제 티라미수를 만들어 올리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18일부터 지난 15일까지 사단 지휘부가 사용하거나 예약한 모임 총 120회 가운데 12회에서 특별요리가 주문됐다. 수제 티라미수가 포함된 특별 후식을 제공받은 것은 45회, 수제 티라미수를 제외한 특별후식을 제공받은 모임이 21회에 달했다.
김진철 전 사단장은 자신이 참석하지도 않는 교회 장로 모임을 백마회관에 예약해준 적도 있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사단장이 몰랐고 부하들이 과잉충성한 것이라고 빠져나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든 게 계획 하에 이뤄지기 때문"이라며 회관병 측의 과잉의전 가능성엔 선을 그었다. 사적 모임이었다고 해도 사단장이 몇시에 도착하는지까지 수시로 전화해 확인하고 예약을 통해 메뉴 주문을 받기 때문에 사단장이 몰랐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오후 9시까지 백마회관을 운영하면서 회관병들에게는 뒷정리와 설거지 등으로 오후 11시까지 일하도록 하기도 했다. 회관병들은 주 68시간 상당의 과로를 했다. 코로나19 기간에는 민간인 고용도 없어지면서 군 복지 숙소인 에버나인회관 객실까지 회관병들이 청소했다. 회관병 가운데 2명은 슬개골연화증에 걸렸다. 군인권센터는 20대에게서 흔히 발생하지 않는 질병이라며 과로로 인한 것으로 판단했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마치 자기 집 종 부리듯이 할 수 있는 구조를 놔둬야 되나"라며 "이참에 회관을 다 민간 직영으로 바꿔야 되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병들의 복지 차원에서 싼 값에 제공하려다 보니까 사실 병사들을 데려다 쓰는 것이다.
인건비가 안 들잖나"라며 "국가 차원에서 장관들에게 복지를 제공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군 복지회관)은 예산을 들여서 민간에 위탁을 주고 가격을 낮춰야 한다"고 했다.
육군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육군은 해당 사안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해당 부대 복지회관 운영에 관련해 제기된 사안들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법과 규정에 의거 필요한 조치를 엄정하게 취할 것"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육군 내 모든 복지회관을 점검하고, 회관관리병들의 복무 여건과 근무환경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살펴볼 것"이라며 "이번 사안을 모든 복지회관들이 그 취지에 부합하게 운영되는지 점검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했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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