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부, 서울현충원에 부부 합장묘 조성하기로
다음주 순국 추정지 흙 반입 및 부인 유해 봉환
[파이낸셜뉴스]
국가보훈부가 1일 최재형 선생의 순국장소로 추정되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의 흙과 70여년간 키르기스스탄 공동묘지에 묻혀 있던 부인 최 엘레나 여사의 유해를 모셔 와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합장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AI로 복원한 최재형 선생-최 엘레나 여사의 모습. 사진=국가보훈부 제공
국가보훈부는 1일 독립운동가 고(故) 최재형 선생과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 부부의 합장묘가 최 선생 순국 103년 만에 국립서울현충원에 조성한다고 전했다.
보훈부에 따르면 최재형기념사업회와 함께 최 선생 순국 장소로 추정되는 러시아 우수리스크 소재 '최재형 선생 기념관'(옛 최재형 선생 고택) 뒤편 언덕에서 채취한 흙을 오는 11일 국내로 반입할 계획이다.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공동묘지에 안장돼 있던 부인 최 여사의 유해 또한 이달 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봉환될 예정이다.
최 선생 부부의 현충원 합장식은 제78주년 광복절(8월 15일)을 하루 앞둔 이달 14일 '백년만의 해후, 꿈에 그리던 조국 대한민국'을 주제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이달 12~13일 이틀간은 서울현충원 현충관에 최 선생에 대한 국민추모공간이 마련된다.
최 선생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우리 동포 신문 '대동공보'(大東共報)가 재정난으로 폐간하자 이를 인수·재창간해 애국심을 고취하는 기사를 실었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재무총장으로도 활동하는 등 '시베리아 동포의 대은인(大恩人)'으로 추앙 받았다.
최 선생은 9세 때 부모를 따라 시베리아 연해주로 이주한 생전에 사업가로 자수성가해 축적한 부(富)를 조국 독립과 수십만 시베리아 이주 동포들을 위해 썼다. 최 선생은 1904~5년 러일전쟁 뒤엔 '동의회'(同義會)를 조직해 항일 의병투쟁을 폈고,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도 지원했다. 또 부인 최 여사는 1897년쯤 최 선생과 결혼한 이후 8명의 자녀를 두고 최 선생의 독립운동을 내조했다. 최 여사는 안 의사 순국 뒤엔 그의 남은 가족들을 보살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최 여사는 최 선생 순국 뒤엔 자녀들과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다 1952년 숨을 거뒀다. 정부는 최 선생의 공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했다.
남궁선 국가보훈부 보훈예우정책관이 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순국 100년 만에 독립유공자 최재형 선생이 순국한 장소로 추정되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의 흙과 70여 년간 키르기스스탄 공동묘지에 묻혀있던 부인 최엘레나 여사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 선생의 묘는 당초 1970년 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 자리에 조성됐었지만, 1990년 한러 수교 이후 최 선생 유족이 고국을 방문하면서 그전까지 최 선생 후손을 자처했던 이들이 유족연금을 노린 '가짜 후손'이었던 사실이 드러난 뒤 멸실돼 현재는 비어 있는 상태다.
이후 최 선생 유족 측은 멸실된 묘의 복원을 희망해 왔으나, 최 선생이 1920년 4월 우수리스크 현지에서 일본군에 붙잡혀 순국한 뒤 그 유해를 찾지 못해 유골·시신을 안장하도록 되어있던 당시 '국립묘지법' 규정에 따라 묘를 복원할 수 없었다.
보훈부는 유골·시신이 없는 순국선열의 위패와 배우자 유골을 묘에 합장할 수 있도록 '국립묘지법'을 추진했고, 개정 법률은 국회 본회의 및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지난달 18일 시행돼 최 선생 부부의 묘를 조성할 수 있게 됐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이번 최 선생 부부 합장묘 조성에 대해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유해마저 찾을 수 없었던 순국선열을 단 한 분도 소홀함 없이 예우하는 '일류보훈'을 실현하는 첫걸음으로 생각하고 앞으로도 순국선열을 예우하는 데 모든 정성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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