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사망 후 1년간 신구 세력다툼
개각, 당 간부 인사 임박하면서 집단체제 합의
흔들리는 아베파, 2~4위 파벌 뭉치면 위험
아키에 여사가 7월 8일 도쿄에서 열린 아베 전 총리 추모 모임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도쿄=김경민 특파원】 일본 집권 자민당의 최대 파벌인 아베파(세이와정책연구회)가 복수의 간부 집단지도 체제를 도입하는 조정에 들어갔다. 아베 신조 전 총리 사망 이후 공석인 회장직은 당분간 두지 않기로 했다. 파벌을 통한 권력 유지, 이해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아베 없는 아베파'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력 '5인방' 중심 집단체제 가동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8일 아베파의 집단지도 체제는 100여명에 달하는 파벌이 흩어지지 않고 유지하기 위한 잠정적 성격이 짙다고 보도했다. 닛케이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9월 중순까지 인사를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며 "(아베파의 집단지도 체제는) 그 전에 체제를 정비하는 '고육지책'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베파는 이달 17일 파벌총회를 개최해 파벌 의사결정기구로, 새 상임간사회(가칭)를 두자고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파는 각료 경험이나 당선 횟수를 고려하면서 멤버와 인원 수 등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특히 파벌 내 유력 '5인방'으로 불리는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 니시무라 야스히로 경제산업상,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간사장, 다카기 쓰요시 국회대책위원장, 세코 히로시게 자민당 참의원 간사장 등도 집단지도 체제에 참여한다.
아베파는 아베 전 총리가 사망한 지 1년이 넘게 회장이 부재했다. 그 동안 아베의 빈 자리는 시오노야 류 회장 대리와 시모무라 하쿠분 전 정조회장 두 사람이 파벌 운영을 맡아왔다.
이들 간부들은 아베의 1주기를 기점으로 7월부터 새 체제로의 이행에 대해 주기적으로 협의해 왔다.
당초 5인방은 1주기를 앞두고 시오노야, 시모무라 2인을 제외한 5인 주도에 의한 집단지도 체제를 검토했다. 다카기 국회대책위원장은 지난달 간부 회의에서 "5인에 의한 그룹 리더십 시스템이 바람직하지 않느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시오노야, 시모무라 등 전직 각료 경험자들이 반발해 결론을 미뤘다. 이후 새 회장을 선출하지 않고 집단으로 계파를 운영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집단지도 체제는 신구 세력이 조직을 와해하지 않고 일단 권력을 나눠 갖기로 한 '타협의 산물'로 이해된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재임 중이던 지난 2020년5월25일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고 있다. 뉴시스
최대 파벌 이끌 톱 리더 탄생 기다린다
혼란이 계속되던 아베파가 신 체제 구축을 통한 수습 분위기로 전환된 것은 개각과 당 간부 인사가 임박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체 소속 의원을 대상으로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초에서 20~21일 연수를 앞둔 가운데 그에 앞서 계파 간부들은 인사 조율이 시급했다는 것이다.
계파는 각료 후보자뿐 아니라 부대신, 정무관 등까지 직책 인사를 조정해야 한다. 제 때 의견 수렴이 되지 않고, 아베파 주요 인사들이 내각과 당 내에서 핵심 요직을 맡지 못할 경우 아베파 구심력은 흔들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아베파가 집단지도 체제를 정식 채택한 이후 처음 맞는 이번 인사는 새 체제의 첫 시험대가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아베파는 과거에도 집단지도 구조를 취한 적이 있다. 2007년 파벌 회장이었던 마치무라 노부타카가 후쿠다 야스오 정권에서 관방장관에 오른 것을 계기로 마치무라, 나카가와 히데나오, 다니가와 히데요시 등 3명이 대표 간부가 돼 파벌을 꾸려 나갔다. 이후 2009년에 마치무라가 회장을 맡게 됐다.
아베파 내 한 간부는 "현재는 집단체제 속에서 조만간 모두가 동의하는 톱리더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면서 "개각 당직자 인사에서 100명 규모에 걸맞은 자리를 얻을 수 있을지가 새 체제의 첫번째 현안"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6월 8일 기준 자민당 내 파벌 분파. 뉴시스
아베 잃은 후 1년간 리더 공석, 이유는?
아베파 수장이 계속 공석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분열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수장을 1명으로 결정하면, 100명의 대규모 파벌에서 탈퇴자가 잇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뿌리 깊다.
1년 간 지지부진하던 새 수장 선출에 나선 배경에는 중견·젊은 의원들의 불만이 있다. 수장이 없어 정계에서 아베파 존재감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민당 총재이자 기시다파(고치카이)를 이끄는 기시다 총리는 아베파 수장이 없는 틈을 타 당내 지각변동을 꾀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정권 발족 당시만 해도 아베 전 총리와 자주 대화하며 정책 등을 논의했다. 그러나 아베 전 총리 사망 후 아소파(시코카이)를 이끄는 아소 다로 부총재, 모테기파(헤이세이연구회)를 이끄는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 등으로 당내 협력 축을 옮겼다.
당내 기반이 약한 당내 제4 파벌 기시다파가 제2 파벌인 아소파, 제3 파벌인 모테기파와 손을 잡는다면 약 150명의 세력이 된다. 2·3·4위 파벌이 100명인 최대 파벌 아베파를 누를 수 있는 구조가 가능하다.
2000년 이후 일본 정치에서 민주당 정권을 제외하면 7명 총리 가운데 4명이 아베파였다.
2024년 자민당 총재 선거까지는 약 1년이 남았다. 아베파가 총재 선거에서 후보를 내세울 수 있을지, 자민당 내 권력 구조에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일본에는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 문화가 있습니다.
혼네는 진짜 속마음이고, 다테마에는 밖으로 보여주는 겉마음입니다. 개인보다는 조직·사회적 관계를 중시하는 일본인들은 좀처럼 혼네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보는 일본은 다테마에의 파편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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