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기자
검사 시절 고민 끝에 처리했던 강도치상 사건이 있다. 야간에 홀로 육교를 건너던 20대 여성의 핸드백을 빼앗고, 2주 상해를 입힌 사건이었다. 강도는 위험하다. 피해 여성이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더구나 다치기까지 했다(강도치상). 가해자는 구속되었다.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여 담당 검사였던 필자 앞에 왔다. 자백했고 혐의 명백했다 그러나 첫 조사 때 필자는 매우 황당했고, 2주 넘게 조사한 다음, 고민 끝에 석방하고 불기소했다. 왜 그랬을까? 오늘은 검사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떻게 사건을 처리하는지 말씀드릴까 한다.
대기업 '성실남'이 왜 20대 女 핸드뱃을 빼앗았나
강도는 엘리트였다.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유명 대기업의 해외지사에 근무 중이었다. 부모님께는 ‘순둥이’였고, 직장에서는 ‘성실남’이었다. 항상 군말 없이 주어진 일에 매진했다. 전도유망한 20대 청년이자, 일등 사윗감이었다. 그런데, 해외 근무 중 포상휴가로 일시 귀국했을 때, 강도치상 범죄를 저질렀다. 왜 그랬을까? 엘리트가 된 ‘어른아이(아이 같은 어른)’의 일탈이었다.
황당하게도, 엘리트 어른아이는 피해 여성의 핸드백 내용물이 궁금했다고 한다. 핸드백을 빼앗아 도망쳐 내용물을 확인한 후, 그대로 버리고 제 갈 길을 갔다. 피해 여성을 때리거나 흉기로 위협한 것은 없었다. 어깨에 멘 핸드백을 낚아채려다 실패하자, 피해 여성과 핸드백 줄다리기를 벌였다. 피해자는 뒤로 잡아당기며 버티다가, 핸드백을 놓치면서 엉덩방아를 찧었고 2주 정도 엉덩이·허리가 뻐근해지는 상해를 입었다. 어른아이의 아버지는 피해 여성을 찾아가 무릎 꿇고 통사정해서, 합의서와 선처 탄원서를 받았다.
"자식을 잘못 가르쳤다... 검사님, 무릎꿇고 사죄하겠습니다"
어른아이의 아버지는 검사실로 몇 번씩 전화해 “자식을 잘못 가르쳤다, 검사님을 찾아뵙고 싶다. 무릎 꿇고 사죄할 테니, 한번만 살려 달라”고 말했다. 감정은 복받쳤고, 목소리는 울먹였다. 정말로 무릎 꿇을 태세였다. 필자는 “아버님께서 검사에게 무릎 꿇으실 일이 아니다.”고 말하면서 말렸다. 그 대신 전화로 하소연을 들어주었다. “이제까지 저희 아이는 부모가 시키는 대로 공부하고, 취직하고... 한 번도 말썽피운 적이 없어요. 혼자서 힘들고 외롭게 해외 근무하면서, 너무 억눌려서 순간적으로 정신이 나갔었다고 합니다. 착한 아이였습니다. 피해자도 사정을 듣고 선처해달라고 합니다. 검사님!! 제발...”
최소 징역 3년 6개월, 기소해야 하나? 장고 끝 검사의 선택은...
엘리트 강도가 된 어른아이는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할까? 강도치상 사건은 검사가 기소하면, 법률상, 집행유예(=석방)가 불가능하고 최소 3년 6월의 실형을 받는다. 이 사건에서 어른아이를 3년 6개월 이상 감옥에 가둬두는 것이 맞을까? 필자는 고민스러웠다. 피해 여성의 진술을 들어보았다. △2주 진단을 받아 약 먹고 며칠 치료받았지만, 외상이나 후유증이 없고 △성범죄 위협, 생명·신체 위협은 전혀 없었으며 △엘리트 강도가 스스로 놀라고 당황하며 도망치던 모습이 황당했었고 △엘리트 강도의 아버지가 어른아이의 생활기록부, 명문대 졸업장, 대기업 사원증을 보여주며 무릎 꿇고 통사정을 해서 △한번은 기회를 주자고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어른아이 강도의 범행 동기, 재범 가능성, 성장 과정, 가족·학업·직장 생활 등 양형 사유를 조사했다. 어른아이는 △부모님께 순종하며 살아왔지만, 틀에 박혀 억눌렸던 측면도 있었는데 △해외에서 너무 외로웠고, 빡빡한 업무에 몸과 마음이 더욱 짓눌렸으며 △한국에 돌아왔을 때 해방감이 들면서 순간적 충동에 일탈을 했고 △진짜로 반성하고 절대 재범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조사할수록 고민은 깊어 졌다. 기소하면, 최소 징역 3년 6월이다. ‘어른아이’로 살다가 엘리트가 된 강도의 인생은 파괴될 것이다. 이 사안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 맞나? 지나치게 가혹하지는 않나? 선후배 검사들에게 많은 조언을 구했다.
'어른아이' 안 만들려면 몸과 마음 건강하게 키워야
결국, 필자는 기소유예(검사가 정상 참작하여 기소를 유예하는 것)하기로 결정했다. 대신에, 수사단계의 구속기간을 가득 채워서, 한달 가까이 감옥에 가둬두었다. 살다보면, 어른아이를 만나곤 한다. 부모님 말 잘 듣고, 한 눈 팔지 않고, 공부만 해서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 하지만, 아이 같다. 조금 힘들면, 견디지 못한다. 자기 뜻대로 안 되도, 견디지 못한다. 남 생각도 못한다. 그러다가 엉뚱하게 폭발한다. 공부 잘 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는다고 능사가 아닌 것이다. 어른아이는 안타깝다. 한편으로는 내가 어른아이가 아닌지 반성한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진짜 어른’을 꿈꾸며 글을 마친다.
[필자 소개]
김우석 변호사는 청와대 파견, 정부 합동 반부패단 총괄국장, 서울중앙지검, 지청장 등을 거친 매서운 검사였다. 항상 구속할 사람을 찾았단다.
지금은 항상 도와줄 사람을 찾는다. 세상은 변하니까. 최근에는 100만 유튜버(“김부장의 검사외전”)를 꿈꾼다. 꿈일지, 실현될지 궁금하다.
김우석 변호사(법무법인 명진 대표)
ksh@fnnews.com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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