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회도서관에서 사형선고한 공주지법 1심 판결문 발견
구명운동 관계 문서, 동생 박하진 판결문 등 새롭게 확인돼
판사 임명 거부하고 전 재산 들여 독립운동 나서
무장독립투쟁 앞장... 김좌진, 김원봉, 쑨원 등과 일화 남겨
광복회 공주지방법원 1심 판결문 관련 자료. 박상진추모사업회 제공
【파이낸셜뉴스 울산=최수상 기자】 대한광복회 총사령을 지냈던 울산 출신 독립운동가 고헌 박상진 의사의 구명 운동 관련 자료가 일본에서 대규모로 발굴됐다. 이번에 발견된 자료가 박 의사의 서훈등급 상향조정 여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15일 고헌 박상진 의사 추모사업회에 따르면 지난 2021년부터 2년간 박상진 의사 관련 해외 자료를 발굴한 결과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등에서 박 의사 구명운동 관련 자료가 다수 발굴됐다.
최근 발굴한 자료 분량은 총 30건, 600여 쪽에 달한다.
발굴된 자료는 우쓰노미야 타로 관계문서 중 '박상진 사건 판결 변론서'(1920.2.19), '청원서'(1920) 원본 등 구명운동 관계 문서, 박상진 공주지방법원 1심 판결문(1919.2.28), 박상진 의사 동생인 박하진 판결문(1918.9.11) 등이 포함됐다.
국내에서 유실돼 확인할 길이 없었던 박상진 의사의 공주지법 1심 판결문도 있다.
박상진 의사의 공주지법 1심은 3·1 만세운동이 일어나기 하루 전인 1919년 2월28일 열린 재판이다. 박상진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한 이 재판의 판결문은 일본 국회도서관에서 찾았다.
특히 박하진 판결문에서는 박하진이 형인 박 의사 지시에 따라 일본인 간수를 포섭해 옥중에 있는 형에게 필기구를 전달, 형이 동지들과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한 사실이 처음 드러났다.
박하진은 이 사실이 탄로 나 공주지법에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박하진의 재판 판결문은 집안에서도 몰랐던 사실이라고 추모사업회는 전했다.
실경 뮤지컬 '고헌 박상진' 공연의 한 장면. 울사문화예술회관 제공
한편 정부는 박상진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3급)을 추서했으나, 시는 공적과 비교해 훈격이 낮다는 지적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울산시는 박 의사의 추가 서훈을 위한 공적조서와 서훈 등급 상향 염원을 담은 10만1400여명의 국민서명부를 국가보훈처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박 의사(1884~1921)는 울산 북구 송정에서 7000석의 부호 집안에서 태어났고 경주 최 부잣집 딸과 혼인했다. 1910년 판사 등용시험에 합격해 판사가 됐지만 나라를 빼앗기자 이를 그만둔다. 그리고 가산을 들여 전국의 비밀결사 단체를 통합한 광복회를 조직, 만주에 사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해 무장독립투쟁을 나섰다.
신민회 활동, 의병장 신돌석과의 친분을 비롯해 김좌진 장군과의 의형제, 쑨원과 회동 등 수많은 일화가 남아있다. 김원봉의 의열단 조직에도 영향을 주고 청산리 전투에 빛나는 광복회 부사령 김좌진 장군이 만주로 가게 된 것도 광복회 총사령이던 박상진 의사가 파견했기 때문이다.
박 의사는 군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1915년 경주 우편마차 습격, 1916년 대구 권총사건, 같은 해 10월 운산금광 현금수송마차 습격, 1917년 11월 경북 칠곡의 친일 부호 장승원 사살 등 을 주도하며 국내 활동도 펼쳤다.
그러다 모친의 장례식에서 일제에 체포돼 1919년 8월 11일 교수형으로 순국했다.
국가보훈처는 역사학계, 법조계, 언론계 등의 전문가들로 ‘독립운동 훈격 국민공감위원회’를 구성해 현재 박 의사의 서훈등급 상향조정 여부를 두고 재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올 연말 결정이 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ulsan@fnnews.com 최수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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