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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옛 신문광고] 라디오 고쳐요 ‘기쁜소리사’

[기업과 옛 신문광고] 라디오 고쳐요 ‘기쁜소리사’
장노년층이 기억하는 '기쁜소리사'라는 상호를 지금도 드물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포털사이트를 검색하면 전국에 10여곳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주로 개인이 운영하는 전자제품 수리점이나 유통업체다. 사실 기쁜소리사는 수십년 전까지 서울에서 전자제품 유통을 주로 하고 수리도 해주던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으로 신문에 광고도 내던 규모가 큰 업체였다. 광고에 나오는 기쁜소리사의 위치는 서울 충무로입구로 돼 있는데 신세계백화점 맞은편 서울중앙우체국 근처다. 광고를 보면 기쁜소리사는 전축, 라디오, 진공관 앰프, 스피커, 확성기, 텔레비전, 냉장고 등 거의 모든 가전제품을 취급했다. 현금 또는 할부로 판매하고 수리도 해준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 중반까지는 국산 가전제품이 나오지 않을 때라 거의 다 외국산이었다. 조선일보 1959년 7월 4일자 광고(사진)에서 기쁜소리사의 업황을 짐작할 수 있다. 창업 10주년 기념광고이니 창업연도는 1949년임을 알 수 있다. 영국, 미국,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5개국으로부터 150여종의 전자제품을 수입해 판매했고 그동안 36만6000여명의 고객이 내방했다고 돼 있다. '제니스' '텔레풍켄' '사바' '필립스' 'RCA' 등 익숙한 브랜드가 눈에 띈다. 일제 '내셔널' TV를 수입해 판매한다는 광고도 있다.

라디오는 일제강점기부터 보급됐지만, TV나 전축 등 외국산 가전제품은 워낙 값이 비싸기도 해 부유한 가정에서나 소유하고 있었다. '전자'라는 말조차 생소할 때여서 수리공들이 기술을 전문적으로 공부를 했다기보다는 어깨너머로 익힌 경우가 많았다. 기업 규모의 기쁜소리사 말고도 전자제품을 판매하고 수리하는 전파사는 어지간한 동네마다 있었는데 기쁜소리사라는 이름을 차용해 내건 집이 많았다. 기쁜소리사와 상표 사용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 그냥 갖다 썼을 것이다. 그 이름들이 지금도 남아 있는 셈이다. 기쁜소리사는 탈세와 장물취득 등의 혐의로 여러 차례 경찰의 수사를 받았고, 사장과 임원이 구속되기도 했다. 도둑들이 그때만 해도 고가였던 전자제품을 훔쳐 기쁜소리사에 헐값에 넘긴 것이다. 금성사가 1958년 라디오에 이어 1966년 흑백TV를 생산하고 대기업들이 가전제품 대리점을 직접 운영하면서 기쁜소리사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기쁜소리사는 1980년대까지도 존속한 것으로 보인다. 1981년 어느 신문의 1면 광고에 김기덕 사장이라는 이름으로 기쁜소리사라는 광고가 실려 있다. 1984년에는 인터폰 제조업에도 손댄 것으로 여겨진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