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64조원 투자 전년比 16%↓
설비투자 감소폭 10년래 최대
IT 경기 부진·칩 가격도 하락
AI·EV發 중장기적 수요는 견고
대만 TSMC 반도체 생산라인. 뉴시스
【파이낸셜뉴스 도쿄=김경민 특파원】 세계 반도체 10대 기업의 시설투자가 4년 만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칩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 폭락으로 기업들이 투자 규모를 줄인 것이다. 특히 올해 투자 감소 폭은 최근 10년새 가장 큰 수준이다.
■그 귀하던 칩, 애물단지로
21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미국·유럽·한국·대만·일본 등 세계 주요 10개 반도체 기업의 2023년도 투자액은 1220억달러(약 164조원) 규모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에 비해 16%나 급감한 수준이다. 이들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 규모가 줄어든 것은 지난 2019년 이후 4년만이다. 조사 대상 기업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인텔, TSMC, UMC, 글로벌파운드리, 마이크론테크놀로지, 인피니언테크놀로지,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키옥시아·웨스턴디지털 등이다.
코로나19 당시 쇼티지(공급부족)로 전 세계 산업 공급망이 마비되면서 반도체는 안보 물자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미·중 기술 패권 다툼이 심화했고, 주요국들은 자국 내 공장 유치와 칩 생산에 주력했다. 그 결과 불과 몇해 만에 반도체는 공급과잉으로 전환했다. 설상가상 최대 칩 소비 시장인 중국의 경기 둔화가 겹치면서 기업들은 투자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올해 반도체 설비투자 감소 폭은 과거 10년간 최대 수준이다. 스마트폰에 주로 쓰이는 메모리반도체 투자가 지난해보다 44% 급감했고, PC나 데이터센터의 두뇌로 쓰이는 연산용 시스템반도체 투자도 14%가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10개사의 투자 총액이 1461억달러(약 196조원)로 사상 최고를 기록한 것도 올해 상당한 기저효과로 작용했다.
■감산하고 투자 줄이고…내년까지 몸 사린다
공급과잉은 재고 증가로 이어졌다. 지난 6월 말 기준 공개된 9사의 재고 합계는 전년 동기대비 10% 증가한 889억달러(약 120조원)로 집계됐다. 이는 2020년에 비해 70% 늘어난 것이다. 칩 재고는 넘쳤고 이 여파로 수익성이 악화된 업체들은 대응에 나섰다. 미국 마이크론은 칩 생산을 30% 감산하고 설비 투자도 40% 줄이기로 했다. SK하이닉스도 5~10% 감산하고, 규자 규모를 50% 이상 감축하기로 했다. 인텔의 올해 투자액 역시 3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특수가 이어지던 메모리는 지난해 여름부터 공급과잉으로 돌아선 후 가격 하락세가 계속됐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의 8월 가격은 지난해보다 40% 넘게 떨어졌다.
일본종합연구소의 타테이시 소이치로는 "아직 감산 폭이 충분하지 않고 칩 가격에 하방 압력이 작용하고 있다"며 "반도체 가격이 본격적으로 상승하는 시점은 내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반도체 수요는 여전히 견조하다. 맥킨지앤컴퍼니에 따르면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21년 6000억달러에서 2030년 1조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미래 반도체 시장의 견인차는 전기자동차(EV)와 인공지능(AI)용 반도체 수요 증가다.
세계 반도체 수요 가운데 차량 반도체는 10% 안팎에 불과하지만, EV 보급으로 차량 기능을 제어하는 반도체와 파워 반도체의 사용량이 급증할 것으로 관측된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25년 830억달러로 2022년 대비 50% 늘어날 전망이다. AI 반도체 수요도 2025년에는 2022년의 3배가 되고 2030년에는 13배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k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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