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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칼럼] 물관리는 이념 아닌 과학으로

[구본영 칼럼] 물관리는 이념 아닌 과학으로
올여름 유례없는 기상이변이 한반도를 덮쳤다. 이달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는 폭염과 태풍 카눈으로 시종 파행했다. 지난달 장맛비로 인한 피해도 극심했다. 기상청이 '극한호우'란 낯선 용어까지 선보였다. 물난리도, 그 피해 규모도 미리 가늠하기조차 어려워졌다는 '불편한 진실'을 실토한 격이다.

극한호우 재난문자 발송기준은 시간당 50㎜에 3시간 누적 강수량 90㎜다. 왜 '극한'이란 접두어를 붙였겠나. '갈 데까지 갔다'는 뉘앙스에서 감지되듯 이런 규모의 '물 폭탄'을 감당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법하다. 수십명의 귀한 생명을 앗아간 경북 예천의 산사태와 충남 오송의 궁평2지하도 침수에서 보듯이.

이는 불가항력적 재해의 성격을 띠지만 장·단기적 대비에 소홀했다는 점에선 인재였다. 오송 참사의 경우 침수 조짐이 보였는데 제때에 교통통제를 안 했다. 그러고도 충북도와 청주시, 행복청 그리고 경찰은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오송 참사는 근본적으론 금강의 지류인 미호강이 넘친 데서 비롯됐다. 교량공사로 허문 제방을 제대로 복구하지 않은 건 일차적 요인이었다. 상류에서 휩쓸려온 토사 등 강바닥의 퇴적물을 긁어내는 준설을 안 한 게 결정타였다. '준설=생태계 파괴'라는 '환경 탈레반'의 입김에 휘둘려 수년간 이를 게을리해 화를 부른 셈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확실한 홍수대비책은 준설이었다. 산악 지형으로 경사가 급해 토사 퇴적이 급속히 진행되는 우리나라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치수 전문가들이라면 다 아는 이런 상식을 보통 국민들도 이번에 확인했다. 미호강 물이 무너지지도 않은, 정상적 제방의 턱밑까지 차오르는 걸 보면서다. 강을 준설하고 보를 설치하는 게 이명박 정부 4대강 개발의 본뜻이었다. 즉 물그릇을 키워 홍수를 막고 가뭄에도 대비하자는. 하지만 이후 박근혜 정부조차 이에 소극적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아예 임기 초부터 4대강 반대 인사들로만 조사·평가위를 구성, '4대강 적폐몰이'를 시작했다. 얼마 전 감사원이 공개한 이 위원회 회의록을 보라. 엉뚱한 수치를 끌어대 수질 판단의 기준으로 삼으면서 "보 설치 이전의 수치를 쓰는 게 그냥 아무 생각 없는 국민들이 들었을 때 '그게 말이 되네'라고 할 것"이라고 했단다. 이처럼 국민을 무뇌아 취급하면서 2021년 4대강 보 해체와 개방이란 결론을 내렸다.

애초 문 정권의 '강의 재(再)자연화'란 개념부터 정치공학의 산물이었다. "태초에 창조된 대로 두라"는 구호 자체가 과학과 동떨어졌다는 얘기다. 예컨대 퇴적의 산물인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도 태초엔 없었다. 가만히 내버려 둬도 침식과 범람으로 물길은 바뀌게 된다는 과학을 무시한 대가가 미호강변의 참사일 듯싶다.

지난 2020년 4대강 사업에서 제외된 섬진강에서 큰 물난리를 겪었다. 올 들어 호남의 극심한 봄가물에다 지난달 극한호우가 충청권과 경북을 강타했다.
그렇다면 다른 건 몰라도 치수에 관한 한 이명박이 맞고 문재인이 틀렸다. 얼마 전 국가물관리위원회가 금강과 영산강의 보 해체 결정을 취소했다니 다행이다. 이제부터라도 지천까지 준설해 갈수록 심해질 기상이변에 대비해야 한다.

kby777@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