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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악마의 탄생

[기자수첩] 악마의 탄생
나중에 사회부 기자 생활을 돌이켜본다면 2023년은 '악마가 탄생한 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7월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을 시작으로 '서현역 흉기난동' '등산로 성폭행 살인' 사건까지 국민의 충격과 분노를 일으키는 강력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무언가 영향이라도 받은 듯 전국에서 유사한 범죄들이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앞서 '묻지마 범죄'의 범람을 겪은 일본은 이들을 '도리마'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길거리의 악마라는 뜻이다. 이제 악마는 우리의 일상으로 침투했다. 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호신용품을 구비하고, 호신술을 배우는 '일상의 비일상화'를 겪고 있다. 이 악마들을 엄벌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누군가는 사형제 부활을 외친다. 하지만 뿌리 깊은 엄벌만능주의는 새로운 악마의 탄생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악마들이 정말 형벌을 두려워할까. 이미 강력한 형벌은 범죄 예방과 상관관계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악마를 막지 못한 경찰에도 화살이 돌아간다. 등산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난 그때, 흉기난동 사건에 범람하는 예고글 때문에 신림역에는 2대의 순찰차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들은 지금의 형사법 체계로 예방할 수 없는 '예상 밖의 존재'들이었다. 신림동 흉기난동의 피의자 조선은 또래에 열등감을 느낀 것으로 분석됐고, 서현역 흉기난동의 최원종은 지독한 망상에 시달려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가장 최근 검찰에 넘겨진 최윤종은 부모와도 대화하지 않은 채 사회적 교류가 전혀 없었다. 모두 이 사회에서 낙오된 채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이 거리에 나오고서야 이들의 존재를 인지했다.

우선 이들을 '악마화'하는 것부터 경계해야 한다. 무자비한 악마에겐 사람을 죽이는 이유가 없다.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이 등장한 사회적 맥락을 무시한다면 예방할 방법 또한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흉악범죄에 걸맞은 형벌이 내려져야 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예방책이 필요하다. 지옥문을 닫아야 악마를 멈출 수 있다. 젊은 낙오자들을 길러낸 이 경쟁사회에 자리 잡은 '분노'를 진단하고, 만연한 갈등 속에서 양극으로 갈라선 우리의 모습을 마주해야 한다.

wongood@fnnews.com 주원규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