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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국으로 세력 확장 ‘브릭스’… ‘G7’ 패권에 도전장 [글로벌 리포트]

‘글로벌 사우스’ 가세하며 몸집 불려
세계인구의 46%, GDP 29% 규모로
최대 산유국 사우디·UAE 등 가입
주요 에너지 자원·광물 영향력 확대

11개국으로 세력 확장 ‘브릭스’… ‘G7’ 패권에 도전장 [글로벌 리포트]
【파이낸셜뉴스 베이징=정지우 특파원】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 경제 5개국이 뭉친 브릭스(BRICS)가 11개국으로 회원국을 늘리는 '세력 확장'에 성공하면서 글로벌 지정학적 구도는 주요 7개국(G7)과 양분하는 모양새가 됐다. 브릭스 국가들의 영향력이 아직 G7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랍에미리트(UAE), 이란와 함께 신규 회원국으로 등록했고 이집트와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주요국도 합류한 만큼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도국 통칭)까지 포함하는 거대한 세력을 형성했다는 평가 또한 나온다.

■'5+6'+α…몸집 불리는 브릭스

3일(이하 현지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브릭스 5개 회원국 정상들은 8월 24일 특별 기자회견을 열고 아르헨티나,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란, 사우디, UAE를 브릭스 협력 메커니즘에 참여하도록 초대했다고 발표했다. 이들 6개국은 2024년 1월 1일부터 브릭스 협력 체제의 정식 구성원이 된다.

이들 국가를 포함해 그간 23개국(팔레스타인)이 공식적으로 브릭스 가입을 요청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브릭스 외연은 더욱 확장될 여지가 남아 있다. 비공식적으로 관심을 표명한 국가까지 포함하면 40여개국에 달한다고 남아공 외교부는 설명했다.

6개국이 11개국으로 늘면서 아우르는 브릭스 몸집도 대폭 커졌다.

중국 매체는 세계은행이 발표한 2022년 경제통계를 인용, 확장판 브릭스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종전 25.77%에서 28.99%로 늘었다고 보도했다. 또 인구는 세계의 46%(36억명 이상), 국토 면적은 32%에 달한다고 전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8월 29일 유튜브 '대통령과 대화' 인터뷰에서 "1995년 글로벌 구매력 평가에서 G7은 세계 GDP의 44%를 차지했지만 브릭스 국가는 16%에 불과했다"면서 "그러나 오늘날 브릭스 국가는 37%, G7은 29%가 됐다. 다시 말해 상황이 바뀐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인민대학교 중앙금융연구원은 "브릭스 인구가 늘었다는 것은 광범위한 노동력 시장을 가질 뿐만 아니라, 젊은 인구 구조로 더욱 유망한 소비 시장을 보유하게 된다는 것"이라며 "이는 브릭스 국가가 세계 경제발전에서 시장이 크고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신흥 경제국 혹은 지역 영향력 큰 국가

주목할 점은 중요 신흥 경제국과 지역적 영향력을 가진 국가를 포괄했다는 점이다. 사우디, UAE, 이란은 중동 지역의 핵심 경제국으로 꼽힌다.

이 가운데 사우디와 UAE는 산유국이다. 또 사우디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의 힘이 작용하는 비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 OPEC플러스(+)는 국제 원유 생산량과 가격 변동을 흔들 수 있다. 아울러 중국은 석유 시장 최대 수입국이면서 대량의 광물 자원을 가지고 있다. 인도도 대량의 석유를 수입한다. 에티오피아, 아르헨티나, 이집트, 브라질 역시 천연자원 매장량이 풍부하다.

중국인민대학은 "자원 보유력의 관점에서 볼 때 브릭스의 확장은 에너지 자원과 광물 분야에서 브릭스 지위를 향상시켰다는 것"이라며 "브릭스 11개 회원국은 세계 석유 매장량에서 44.35%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규 회원국의 2022년 경제성장률은 평균 6% 수준이다. 선진국 성장률을 대폭 웃도는 수치다. 그중 사우디와 UAE는 같은 해 각각 8.7%, 7.4% 성장률을 각각 기록했다. 이로써 브릭스 국가의 총 상품 무역량은 세계 비중 18%에서 21%로 증가하게 됐다.

다른 신규 회원국인 이집트는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전통적으로 힘을 과시해왔다. 22개 회원국을 거느리고 있는 아랍연맹의 본부도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 있다.

아프리카 55개 회원국의 단결과 협력 증진을 위해 조직된 국제기구인 아프리카연합(AU)은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가 거점이다. AU는 매년 2월 에티오피아에서 열리는 회담을 포함해 연 1~2회 정상회담을 갖고 영토 보전과 정치·경제 통합, 인권 신장, 질병 퇴치 등 공동 관심사를 논의한다.

아르헨티나는 중남미에서 세 번째로 큰 경제국이다. 광물자원이 넉넉하고 세계적으로 중요한 곡물 및 쇠고기 수출국으로 꼽힌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탈 달러화'를 촉진하기 위해 남아메리카 공동 통화를 연구하고 있다. 브릭스 계획과 일치한다.

룰라 대통령과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올해 초 "공동 통화가 처음엔 두 나라 사이에 사용하다가 나중에 정착되면 '메르코수르' 경제공동체 회원국들도 참여해 사용 범위를 넓힐 수 있다"는 구상을 밝혔다. 메르코수르는 브라질·아르헨티나·우루과이·파라과이·베네수엘라 등 5개 나라가 참여하는 남미 지역의 관세 및 경제 협력체다.

■'파워' 상승하는 '글로벌 사우스'

신규 회원국들에 관심이 몰리는 또 다른 관점은 이들 국가들이 모두 '글로벌 사우스'에 해당된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과 러시아 한국 일본 등 선진국을 뜻하는 '글로벌 노스'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주로 남반구나 북반구의 저위도에 위치한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의 신흥국·개도국을 일컫는 용어로 통칭돼 왔다. 인도, 사우디, 브라질, 멕시코 등을 비롯한 120여개 국가들이 글로벌 사우스로 분류된다.

2014년 4월 홍콩에 등록된 비영리 국제기구인 남남협력금융센터는 글로벌 사우스를 '77개국과 중국'으로 정의한다고 중국매체 징바오망은 소개했다.

국제안보 정책에 관한 세계 최대 규모의 안보회의인 뮌헨 안보회의는 올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글로벌 사우스를 55차례 언급했고, G7 히로시마 정상회의에서도 글로벌 사우스 국가와의 관계 강화를 주요 의제로 삼았다. 국제질서가 혼탁한 상황에서 글로벌 사우스의 힘이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오르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펑파이신문은 "지난 20년 동안 신흥 경제국과 개도국의 세계 경제성장 기여율은 80%에 달했으며 지난 40년 동안 신흥 경제국과 개발도상국의 GDP가 전 세계적으로 차지하는 비중은 24%에서 40% 이상으로 증가했다"면서 "브릭스 확장은 글로벌 사우스의 '굴기'를 구현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탈달러 등 대응 시작한 브릭스

반미 연대를 놓고 기존 회원국 사이의 의견이 갈리긴 해도 전체적인 행보를 보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겠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엿보인다.

가장 앞장서는 국가는 중국과 러시아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브릭스 국가 비즈니스포럼 폐막식에 '단결·협력을 심화해 리스크 도전에 맞선 더 나은 세상 공동 건설'이라는 제목의 연설문을 공개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에 불만을 드러내며 브릭스 국가가 뭉쳐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연설문은 "어떤 특정국이 패권을 잃지 않기 위해 신흥국들과 개발도상국들을 탄압하고 있다"며 경제 협력체를 넘어 안보 공동체를 구축할 의향도 내비쳤다. 브릭스 외연 확대의 근본에 '미국과 서방 견제'가 들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러시아 역시 중국과 비슷한 입장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화상연설에서 러시아를 재정적으로 고립시키는 서방의 시도는 주권국가의 자산을 불법 동결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서방국가들에 대응할 외연 확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방의 투자 유치가 절실한 브라질은 브릭스가 G7의 대항마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으나, 후속 발언에선 다른 태도를 보였다.

룰라 대통령은 "다음(2024년) 브릭스 정상회의를 앞두고 회원국 재무장관들 간에 수출결제통화를 만드는 것에 관한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라며 "유럽인들은 유로화를 만들었고 우리도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달러로 거래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브릭스 회원국 정상들이 지난 24일 남아공에서 제15차 정상회의를 개최한 뒤 발표한 성명에도 "재무장관 또는 중앙은행 총재들에게 브릭스 통화 협력, 지불 수단 및 플랫폼을 연구하고 다음 정상회담 전에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지시했다"는 언급이 들어 있다.

미·중 사이에서 중립적 입장이던 남아공의 재무장관 역시 브릭스 재무장관 회의가 10월 모로코에서 개최돼 회원국들의 상호 무역에서 자국 통화 사용 확대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요 외신은 사우디와 UAE 입장에서는 이번 브릭스 가입으로 필요하면 달러 의존도를 자유롭게 낮출 수 있는 기회와 유동성을 갖게 됐다고 평가했다. 사우디와 UAE는 자국 통화와 달러화의 고정환율제를 실시하고 있어 유동성과 구매력 확보 측면에서 달러화와 경쟁하려면 다른 거래통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브릭스 신개발은행(NDB) 부행장을 지냈던 브라질 경제학자 파울로 노게이라 바티스타 주니어는 8월 21일 러시아 언론에 "최근 러시아 측이 브릭스 국가들의 통화는 앞에 알파벳 'R'이 붙기 때문에 새로운 공동 통화를 'R5'(R-five)로 명명하자고 제안했다"면서 "매우 흥미로우며 R5를 통합 계정으로 시작한 다음 후속 단계를 개발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른바 브릭스 은행으로 알려진 NDB가 역할을 늘려 세계은행(WB)이나 국제통화기금(IMF)을 대체·보완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는 점도 이목이 쏠린다.

유럽투자은행 베르너 호이어 총재는 "아프리카의 소규모 개발도상국들이 전통적 서구 강대국들의 투자은행이 아닌 중국과 다른 신흥국들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면서 "브릭스 확장은 개도국이 서방국가로부터 큰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며, 서방국가들이 더 노력하지 않으면 글로벌 사우스로부터 신뢰를 잃을 위험이 있다"고 풀이했다. NDB는 WB, IMF 등 미국 주도의 달러 금융질서에 맞서 추진한 브릭스의 독자적인 금융협력 체제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