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와 중동·유럽을 잇는 철도·항만 연결 프로젝트 추진
- 글로벌 바이오연료 동맹도 출범, 베트남과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격상
악수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사진=AFP 연합뉴스
【베이징=정지우 특파원】미국이 인도와 중동·유럽을 잇는 철도·항만 연결 프로젝트를 추진키로 하는 등 중국의 일대일로(육·해상 신실크로드) 사업과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신흥 경제 5개국)에 대한 ‘맞불’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일대일로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핵심 대외 확장 정책이고, 올해 10주년을 맞아 대규모 사절단을 자국으로 불러들이는 ‘빅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는 점, 브릭스가 외연 확장에 성공한 점 등을 고려하면 일대일로·브릭스 견제와 효과의 반감을 노린 것으로 해석된다.
中에 맞서라.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 구상
10일 외신에 따르면 조 바이든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인도와 중동, 유럽의 항구와 철도를 연결해 에너지와 물자를 교역하는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 구상을 발표했다. 이 사업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이스라엘, 요르단, 유럽연합(EU) 등이 참여한다.
존 파이너 미국 국가안보부보조관은 “인도-중동 항구·철도 사업 참가국들이 에너지 유통과 디지털 소통을 늘림으로써 번영할 수 있다”면서 “중·저소득 국가들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인프라 부족 문제 해결과 중동의 '난기류와 불안감'을 줄이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업의 목적은 중국의 일대일로와 유사하다. 일대일로 역시 연선 국가들의 공동 번영과 화합, 저소득·개발도상국의 인프라 건설을 표방하고 있다.
중국이 항만, 철도 등 건설을 명분으로 저소득·개도국 국가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도 중동·유럽 국가들과 뭉치는 방식으로 그 역할을 대신 맡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렇게 되면 저소득·개도국은 굳이 중국이 아니라도 자국 인프라 건설과 물자 교역 등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생긴다.
주목할 대목은 중국의 일대일로 10주년 국제협력 정상포럼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바이든 대통령의 발표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중국은 오는 10월 17일 개최로 알려진 포럼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해 일대일로 참여국들을 대거 초청, 힘을 과시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보다 한 달 뒤인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열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은 ‘미국의 잔치’ 전에 세력 형성을 마무리하겠다는 속내가 깔렸다는 견해도 있다.
따라서 미국이 일대일로 대체가 가능한 대형 프로젝트를 저소득·개도국에게 제시할 경우 정작 일대일로 10주년 포럼 직전에 연선 국가들의 결집 동력은 약화될 수 있다. 공교롭게 일대일로의 성과가 미흡하다며 이탈리아는 탈퇴를 검토하는 등 분위기 역시 조성되는 상황이다.
일대일로 /사진=뉴스1
브릭스 새 회원국, 포섭 나선 美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에 인도, 사우디, UAE, 이스라엘 등이 포함됐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인도는 중국과 라이벌 관계이면서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안보 협의체) 참여국이기도 하다. 인도를 내세워 인도·태평양 전략상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지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사우디와 UAE는 지난달 말 브릭스의 새 회원국으로 초청받았다. △브릭스가 주요 7개국(G7) 대항마 성격을 가진 점 △사우디가 일대일로 참여국인 점 △사우디·UAE가 중동의 핵심 경제국이자 산유국이라는 점에서 이들 국가가 중국으로 기울면 미국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의 경우 이란과 긴장 관계이다. 이란도 브릭스 새 회원국에 이름을 올렸고, 일대일로 참여국 명단에 들어 있다.
이와 함께 바이든 대통령은 친환경 연료를 전 세계에 보급하는 글로벌 바이오연료 동맹도 출범시켰다. 동맹에는 인도, 브라질,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모리셔스, UAE 등이 참여했다. 방글라데시와 싱가포르는 옵서버 국가가 됐다.
이 중 아르헨티나는 UAE와 더불어 내년부터 브릭스 새 식구가 된다. 방글라데시와 싱가포르는 일대일로에 동참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를 마친 뒤 베트남을 방문해 양국 관계를 ‘포괄적 동반자’ 관계에서 최고 수준인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할 방침이다. 또 오는 11월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워싱턴DC로 초청해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하는 등 중국 주변국가와 협력을 심화한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또한 일대일로 연선에 포함돼 있다.
2023년 브릭스 정상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일찌감치 시작된 일대일로 견제
미국의 일대일로 견제는 일찌감치 진행돼 왔다. 미국은 2021년 6월 영국에서 열린 G7 정상회의를 통해 ‘더 나은 세계재건’(B3W) 출범을 주도했다. B3W는 지금까지 중국이 저소득국이나 개도국에 대한 인프라 지원으로 세력을 넓혀 온 만큼 이제부터라도 그 역할을 미국 중심의 동맹국이 맡겠다는 취지다.
일대일로는 자국 국유은행이나 기업을 통해 참여 국가에 도로,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을 구축해 주는 방식을 쓴다. 또 중국 기업이 사업을 맡아 자국 인력과 자재를 사용한다. 식자재까지 중국산이다. 참여국에겐 장기 대여금이나 차관 형태로 돈을 빌려준다.
대신 중국은 항만이나 토지 등 해당국 기반 시설에 대한 운영권을 얻는다. 참여국은 빚이 늘고, 이를 무기로 한 중국의 정치·경제적 장악력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미국은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우디와 UAE, 이스라엘을 철도로 연결하고, 해상 운송을 통해 인도와 유럽에 도달한다”며 “3000마일이 넘는 세계 최대 경제권 연결 목표”라고 평가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