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서 국가명 ‘바라트’ 표기
모디가 이끄는 집권여당 BJP
"인디아는 식민 지배의 잔재"
2016년 3월 인도 대법원은 국호를 모든 상황에서 '바라트(Bharat)' 통일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공익 소송을 기각했다. 당시 대법원은 인도의 영문 국호인 '인디아(India)'를 언급하며 "바라트로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누군가 인디아라고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둬야 한다"고 밝혔다.
약 7년이 지난 이달, 인도 정부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바라트라는 용어를 쓰면서 국호 교체를 향한 불씨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인도 안팎에서는 국호 교체가 단순한 명칭의 문제가 아니며, 갈수록 거세지는 민족주의로 인해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가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바라트 혹은 인디아
바라트라는 이름은 힌두교의 토대가 되는 인도의 고대 서사시 '마하바라타'에서 유래된 단어로 인간이 사는 대지를 의미한다. 반면 영문 이름은 인도 문명이 시작된 신두 강(江)에서 출발했다. 신두가 페르시아어로 옮겨지며 힌두로 바뀌었고 이후 그리스식으로 인도스로 바뀐 뒤 영어로는 인더스로 정착됐다. 1858년부터 1947년까지 인도를 식민 지배한 영국은 인디아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인도인들은 지금도 자신들의 국가를 바라트 혹은 힌두스탄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현재 인도의 집권 여당을 '인도인민당(BJP)'으로 표기하지만, 영문 표기는 바라티야자나타당(Bharatiya Janata Party)이다. 힌디어판 인도 헌법 제 1조는 '바라트, 즉 인디아는 연방 국가다'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영문판에는 인디아가 먼저 표기된다.
BJP를 비롯해 '힌두 민족주의'를 추구하는 인도 정치인들은 인디아 대신 뿌리부터 힌두교에서 비롯된 바라트라는 명칭을 유일한 국호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이끄는 BJP는 지속해서 인디아가 식민 지배의 잔재라고 주장했다. 현지 매체들은 모디 정부가 G20 회의 종료 이후 이달 18일부터 5일 동안 진행되는 의회 특별 회기에 국명을 바꾸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전했다.
BJP의 전신인 민족봉사단(RSS)의 모한 바그와트 대표는 이달 3일 연설에서 "영어를 쓰는 사람은 인디아라는 이름을 알아듣지만 우리는 그 명칭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바라트라는 국호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바라트로 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도는 힌두교도의 땅?
그러나 인도는 연방 공용어로 힌디어와 영어를 동시에 인정하고 있다. 수십 개의 민족이 수천 개의 방언을 사용하는 인도에서는 공용어를 인정하나 전 국민이 유일하게 사용하는 '국어'라는 개념이 없다.
마하트마 간디와 함께 1947년 인도 독립을 끌어낸 자와할랄 네루 초대 총리는 이처럼 모래알 같은 신생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 정치에서 민족과 종교를 배제하고 비동맹, 사회주의, 세속주의를 추구하며 추상적인 '인도 국가'로 다양한 국민을 묶으려 했다.
하지만 인도인들을 뭉치게 만든 것은 정치 구호가 아닌 종교였다.
2011년 기준으로 인도 인구의 79.8%는 힌두교를 믿으며 14.2%가 이슬람 신자(무슬림)이었다. 인도에서는 1920년대부터 힌두 문화의 일체성 및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힌두트바' 사상이 싹트기 시작했고 1925년에 RSS가 탄생했다. 1948년에 간디를 암살한 범인도 RSS 단원이었다.
힌두트바 운동은 네루 정부의 탄압에도 살아남았으며 1980년 BJP 창당 이후 본격적인 정치 세력으로 거듭났다. BJP는 1998년 처음으로 정권을 잡은 뒤 네루 계열 정당인 인도국민회의(INC)와 정권을 주고 받으며 대립했다. BJP는 2014년부터 모디를 총리로 세워 지금까지 9년 동안 집권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2024년에 4월에 총선이 열리며 모디는 3연임을 노리는 상황이다.
현재 제1야당인 INC는 지난 5월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둬 BJP를 위협했다. 이어 지난 7월에는 다른 지역 정당들과 함께 '인디아(INDIA)'라는 정치 연합을 구성했다. 이와 관련해 야권에서는 BJP가 야당 연합의 인기를 의식해 같은 이름의 국호를 바꾸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전체주의로 치닫는 힌두 민족주의
서방 매체들은 BJP가 내년 총선에서 다시 승리하면 민주주의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극렬 힌두 민족주의자들은 1992년 인도 북부 아요디아에서 힌두교 사원 자리에 세워진 이슬람 사원을 파괴했다. 이 과정에서 전국적으로 힌두교도와 무슬림이 충돌하면서 2000명이 넘게 숨졌다.
모디는 지난 2020년에 부서진 이슬람 사원터에 다시 힌두교 사원을 짓는 착공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지난 2017년에는 한 BJP 의원이 이슬람 예술의 정수로 불리는 타지마할을 두고 힌두교 사원 자리에 세운 유적이라고 비난해 논란을 빚었다.
또한 모디 정부는 출범 이후 공용어 대신 힌디어를 국어로 지정하려 노력 중이다. 이에 힌디어를 쓰지 않는 동남부 지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의 주총리는 지난 6월 모디 정부가 힌디어를 강요한다며 공개적으로 항의했다. 인도에서 태어날 때부터 힌디어를 쓰는 국민은 44%에 불과하다. 이외에도 BJP 인사들은 공개적으로 이슬람 및 타 종교를 비하하는 동시에 이들을 차별하는 법안을 내놓고 있다.
주요 언론들은 모디와 친한 재벌들이 장악했다. 인도는 국경없는기자회(RSF)가 올해 발표한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180개국 중 161위에 올랐다.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는 인도를 '선거 독재' 국가로 분류했다. 미 싱크탱크 프리덤하우스도 인도를 '부분적으로 자유로운 국가'로 선정했다.
영국 싱크탱크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는 인도의 민주주의 순위가 모디 집권기인 2014~2022년 사이 27위에서 46위로 떨어졌다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해 영국 일간 가디언은 6일 사설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국가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렸다고 비난했다. 미국 시사지 타임은 지난 6월 보도에서 미국이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인도를 포섭하려 하지만 인도의 민주주의 상황, 친러시아 성향 등을 지적하며 인도와 서방이 한배를 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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