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 ‘테마주 열풍’
연초 2차전지 급등세에 투자자 관심 집중... 초전도체·맥신·스마트그리드로 이어져
반짝 주목 많은 시장서 ‘정치’는 꾸준한 테마... 4대강 등 대선 공약 따라 정책테마주 급등
위험 감수할만큼 높은 수익 매력적이지만 루머 편승하는 매매·폭탄 돌리기 경계 필요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높은 잠재 수익을 제공할 수 있다. 동시에 높은 리스크를 내포하므로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관심이 높아지면서 주가가 급등하는 경향이 있다.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러나 주가가 급등락하는 경우가 많아 매매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한다." 최근 많은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인 오픈AI의 챗GPT와 구글 바드에 '테마주'에 대해 묻자 내놓은 답변이다. 테마주가 투자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도 위험도가 높으니 유의하라는 것이다.
올해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한마디로 '테마주' 장세로 정리될 수 있다. 연초부터 급등세를 연출하며 투자자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2차전지에 이어 하반기에는 짧기는 했지만 초전도체, 양자컴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뚜렷한 주도주가 없이 주식시장이 횡보하자 종목장세가 연출되며 테마주 열풍이 푼 것이다.
테마주에 대한 우리나라 투자자들의 애정은 남다르다. 다른 주요 선진국에서 테마주와 관련된 뉴스를 듣지 못한 것을 보면 어쩌면 우리나라 주식시장만의 특징일 수도 있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에서 밈 주식이라는 것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테마주와는 다르다"면서 "아마 주요 선진국 증시에서 우리나라만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100년 역사, 뉴턴과 헨델의 희비
위키백과에 따르면 테마주는 주식 시장에 상장된 주식으로 하나의 주제를 가진 사건에 의해 같은 방향으로 주가가 움직이는 종목군을 말한다. 처음에는 같은 사건에 비슷한 주가 움직임을 보이는 종목군, 산업군 등을 분류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학연, 지연, 같은 성씨 등 개연성이 없는 주식들이 테마군으로 묶이며 부작용이 발생했고 최근에는 주가 조작 세력이 새로운 테마주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테마주라는 용어에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자 증권사들은 테마주라는 말대신 섹터주로 분류해서 투자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증권사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제공하는 HTS에 250개 가량의 섹터주가 있다. 중복되는 섹터가 있다는 것을 고려해도 상당한 수준의 테마주도 있는 셈이다.
테마주가 처음 인식된 것은 1920년대 영국의 남해회사(South Sea) 사건이 처음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금난에 처한 남해회사가 금광 발견 등의 거짓 소문을 퍼뜨려 주가를 10배 이상 급등시킨 사례로 '남해거품(South Sea Bubble) 사건'으로 불리고 있다. 남해회사 사건은 금광, 원유 등 자원 발견에 관한 테마주로 분류되고 있다.
이 사건이 유명해진 것은 두 명의 유명인이 여기에 투자했다 희비가 엇갈렸기 때문이다. 한명은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 다른 한명은 작곡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이다.
뉴턴은 여기에 투자해 전재산을 잃었다고 한다.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었지만, 인간의 광기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는 게 뉴턴의 씁쓸한 고백이다. 반면 작곡가 헨델은 남해회사 투자로 큰 돈을 벌어 왕립음악아카데미(Royal Academy of Music)를 설립할 수 있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1987년 '만리장성 테마주' 처음으로 등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중국 정부가 만리장성에 바람막이를 설치하기로 한 계획이 알려지며 우리나라 관련주들이 테마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2007년 대선에서는 4대강 사업 테마주가 큰 폭으로 상승했고 이후에는 황사관련주, 여름관련주, 조류독감(AI) 관련주, 매년 선거철이 되면 나오는 정치 관련주가 테마주를 형성하고 있다.
■2차전지→초전도체→맥신→로봇
2023년은 연초부터 테마주 열풍이 거센 해로 평가된다.
우선 연초부터 2차전지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최근에는 열기가 다소 식기는 했지만 연초 대비 결과 상승폭은 상당한 수준이다. 이어 8월에는 초전도체 광풍이 불었다. 특히 초전도체에 대한 관심은 우리나라를 넘어 전세계적으로 관심을 끌면서 국내외 연구기관들의 평가에 주가가 등락을 반복했다. 초전도체에 이어서는 맥신 관련주들이 초 강세를 보이며 투자자들을 설레게 했고 이어서는 로봇 관련주들이 연초에 이어 다시 강세를 기록했다.
삼성증권이 제공하는 섹터주를 기준으로 올해 들어 가장 상승폭이 큰 센터는 스마트그리드(지능형전력망) 관련주다.
지난 8일 종가를 기준으로 22개 종목으로 구성된 이 섹터주는 평균 35.20%나 상승했다. 15개 종목의 주가가 올랐고 떨어진 것은 6개에 불과했다. 이어 황사/미세먼지 섹터주가 23.88%나 올랐고 로봇 관련주가 22.93%, 온실가스 20.52%, 전자파 19.61% 등의 순이었다. 구성 종목이 많은 영향으로 2차전지(장비) 섹터 주가 상승폭은 11.18%였고 초전도체 주가 승승폭은 16.29%에 달했다. 한 때 기대를 모았던 맥신 주가는 연초대비 1.89% 하락한 상태다.
물론 종목별로는 주가 움직임에 차이가 있다. 지난 연말 10만3000원 하던 에코프로 주가는 현재 102만1000원까지 올랐고 2만3900원이던 금양 주가는 13만6200원까지 상승한 수준이다.
■지분 가장 큰 테마는 정치
한 해에도 여러개의 테마주가 나왔다 사라지고 있지만 꾸준한 생명력을 갖고 있는 테마주는 정치 테마주다.
건전한 정치 테마주는 대선 후보들의 정책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다. 대선 후보들이 대통령이 되면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는 공약과 관련된 주식들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017년 5월 대선을 앞두고 일자리 창출, 4차 산업혁명, 출산 장려, 4대강 복원 등의 정책테마주가 형성됐다. 이들 정책테마주 주가는 그해 1월부터 3월23일까지 평균 16.7% 상승, 시장지수 평균 3.3%를 5배 이상 웃돌았다.
미국 증시에서 테마주를 찾기는 쉽지 않지만 정책 관련해서는 나타나기도 한다. 버락 오바마의 의로보험 개혁 관련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친환경관련주 등은 정책 관련주로 구분될 수 있다.
그러나 허무맹랑한 정치테마주도 많다. 대선 공약 등과 연관이 없는 것은 물론 대선 주자와의 연관성도 없는 사례가 많다. 대선주자와 종친이라던가 선배가 운영하는 회사, 대학 동문, 고등학교 동창, 같은 교회 또는 성당을 다닌다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테마들이 많이 등장했다. 그럼에도 이들 주가는 강한 상승세를 보여 투자자들의 관심을 끈 바 있다.
이는 금융감독원의 자료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금감원은 지난 2009년 이후 20건의 테마주 모티터링 강화 및 유의해야 한다는 보도자료를 내놨는데 그중 10건이 정치 테마주와 관련이 있었다. 이어서 코로나, 메르스, 신종 플루 등 전 세계를 휩쓴 질병과 관련된 테마주가 많았다.
■테마주 인기 원인은 '주가 급등'
테마주가 위험하다는 사실은 사실상 모든 투자자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테마주에 대한 관심이 높것은 역시 높은 수익성 때문이다. 위험을 감수할만큼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기대가 투자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1년 목표수익률이 20%인 사람은 사실 찾아보기 힘들다. 30%, 50%, 두배 이상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 상당수다. '대박'을 노리는 사람들이 테마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포모(FOMO) 증후군'도 테마주 인기의 한 이유로 보인다. FOMO는 'Fear Of Missing Out'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들은 자산 가격 급등을 통해 이익을 얻는데 자신만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는 증상을 말한다.
그러나 일부 투자자들은 이해를 할 수 없는 매수도 진행한다. 테마로 분류된 후 주가가 상승했을 때 해당 기업이 '사실 무근', '관계 없다'고 공식 부인을 하는 경우에도 매수세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폭탄 돌리기'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 전문가는 "'나만 아니면 된다'라는 심리로 폭탄 돌리기를 하는 것"이라며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심리를 가질 것이라는 판단으로 매수세에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웃기는 것은 이런 폭탄 돌리기가 효과를 보는 경우도 발생한다는 것"이라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 사회심리학자이자 사상가인 귀스타브 르봉은 '군중심리학'이라는 책에서 "개별 개개인은 현명하다. 그러나 현명한 개인이 모여있는 군중은 비이성적인 존재가 된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테마주도 투자 기법, 투자는 본인 책임
테마주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그리 부정적이지 않다. 하나의 투자기법으로 관심을 가질만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주식시장이 살아있는 생물인만큼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종목에 대한 관심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상할 수 있듯이 당연히 실체가 있는 종목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남길만 선임연구위원은 "테마주는 기업의 본질과 관련이 있는 테마주와 본질과는 연관성이 없는 테마주로 구분된다"면서 "투자자들은 펀더멘탈이라는 기본에 입각해서 투자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때마다 관심을 모으는 정치 테마주의 경우 실체가 있다면 결과가 나온 후에도 상승을 해야 하는데 빠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기업의 실체를 파악하고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투자시에는 '노이즈 트레이더'가 되기보다는 선구자가 되라는 조언을 하고 있다. 노이즈 트레이더란 '뇌동매매'하는 투자자를 일컫는 말로 시장 전체의 인기나 다른 투자자의 움직임에 편승하는 매매를 말한다. 기업에 대한 정확한 정보나 분석 없이 다른 사람들의 투자를 따라하거나 루머를 쫓아 투자를 하는 것을 말한다. 공부를 하고 먼저 투자해야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대표적인 2차전지 테마주인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의 경우 최근 주가 급락으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꽤 된다. 에코프로 주가 고점 153만9000원에 매수한 투자자라면 32%의 손실을 보고 있는 셈이다. 지난 연말에 투자한 사람은 10배의 수익을 냈지만 지난달 투자한 사람은 절반 수준으로 급락한 것이다. 이른바 '상투'를 잡은 것이다. 그러나 2차전지 산업이 유망한 것을 고려할 때 또 주가는 어떻게 움직일 지 모른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사실 테마주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발생한 사건, 또는 특정 상황에 따라 개별 종목들이 종목군으로 묶이는 현상으로 보고 있다"면서 "이런 테마주를 금융당국이 관리를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특정 목적을 위해 있지도 않은 것을 갖고 불공정거래에 이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불공정거래가 발생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집중적으로 관리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kkski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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