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리스크 회피용 의심
검찰 재소환요구 응할듯
野 체포동의안 부결태세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야당 지도자의 단식은 역사의 흐름을 바꿨다. 비폭력 저항의 상징이자 최후의 보루로 인식됐다. 엄혹하던 시절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1983년 정치범 석방과 정치 복원을 내걸고 23일간 죽음을 무릅쓴 단식투쟁을 벌여 정치활로를 열었다.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도 1990년 13일간 단식농성을 벌여 결국 지방자치제를 쟁취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일로 12일째 단식농성 중이다. 그는 성남시장 시절인 2016년 지방재정개혁의 부당함을 알리겠다며 서울 광화문광장에 천막을 치고 11일간 단식농성을 한 이력이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성공적 중앙무대 데뷔작으로 평가됐다.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바 아니다. 168석의 압도적 의석수로 국회를 지배하고 있는 제1 야당 당수의 무기한 단식농성이다.
지난 9일 검찰에 출두해 8시간 동안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던 그의 얼굴은 초췌했지만 기색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열이틀 굶은 당뇨환자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꼿꼿했다. 그런데 검찰에 다녀온 이 대표가 드러누운 모습이 공개됐다. 그 전까지는 행사에 다니거나, 앉아서 손님을 맞거나, 기자회견을 하면서 발언하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젠 힘든 모양이다. 그도 사람이다.
이 대표의 단식 행태는 일반적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얼굴을 비치느라 농성장을 자주 비웠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만 농성하고, 밤에는 경호상 이유를 내세워 국회 당대표실에 머물렀다. 말로만 '단식투쟁'일 뿐 '출퇴근 단식' '웰빙 단식'이라는 비아냥마저 나왔다.
단식 돌입 시기와 목적을 놓고도 논란이 일었다. 명분도, 실리도, 공감도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야당 지도자로서 정국을 돌파하고 전환하기 위한 결단이라기보다는 자신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를 회피하고, 지지자를 결집시키겠다는 의도가 다분하게 엿보였기 때문이다. 검찰에 핍박받는 모습을 통해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단식에 여론은 대체로 냉랭했다.
'방탄 단식'이라는 비판이 '사즉생' 단식의 진정성을 가린 게 뼈아팠을 것이다. 피의자인 그는 검찰 소환을 며칠 앞둔 8월 31일 단식에 돌입하면서 소환 자체를 무산시켰다. 단식 10일째인 9일엔 출석요구에 응했지만 피의자 신문조서 서명을 거부했다. 피의자가 서명하지 않은 신문조서는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조사 자체가 무효가 된 셈이다.
12일 재소환도 하나마나 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구속영장 청구를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언제 병원에 실려갈지 모르는 야당 대표를 추궁하긴 어렵다. 검찰이 영장을 청구한다면 민주당은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킬 게 뻔하다. 이 대표는 자신에 대한 불체포권리를 포기한다고 선언했지만, 민주당은 '정당한 영장 청구에 대해서'라는 조건을 달아놓았다. 검찰의 '부당한 영장'을 부결할 명분을 챙겨 놓은 것이다.
단식과 소환조사, 구속영장 청구와 체포동의안 표결 등 고차방정식이 복잡하게 얽힌 가운데 59세 이 대표의 기력은 쇠할 대로 쇠한 상태다. 건강이상은 시간문제다. 이 대표가 내건 민생 파괴·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대통령의 대국민 사죄, 일본 핵 오염수 방류에 반대입장 천명, 내각 총사퇴 같은 요구사항은 여당이 수용할 여지가 거의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 이야기도 나왔지만 반응이 시원찮다. 30%대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바탕으로 각자도생 중인 여야가 자기 지지층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지 않은가.
이 대표의 2016년 첫 단식을 중단시킨 사람은 김종인 당시 민주당 대표였다. 그런데 지금은 말려줄 사람이 없다.
김 전 대표조차 "시대가 바뀌었고, 국민은 관심이 없다"고 단식투쟁의 의미를 깎아내렸다. 결국 탈진해서 쓰러지고 병원에 실려가야 끝이 난다는 얘기다. 상대방이 수용할 여지조차 주지 않는 극단적인 단식정국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joo@fnnews.com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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