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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한 新냉전 현실을 확인시킨 G20 그리고 외교과제 [fn기고]

 -반길주 고려대학교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연구교수
 -G20 공동성명에 러시아 침공 규탄 문구 빠져 
 -일관된 메시지 못 내는 이유, 신냉전이 그 배경 
 -개점휴업 수준으로 역할 저하된 유엔 안보리 
 -안보리와 G20 정상회의, 신냉전의 한계 드러내 
 -한국 소다자 외교 펼쳐, 규칙기반 질서 수호해야 

[파이낸셜뉴스]
냉혹한 新냉전 현실을 확인시킨 G20 그리고 외교과제 [fn기고]
반길주 고려대학교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연구교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지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인 2023년 9월 세계 주요 정상이 인도에 모였다. G20 정상회의를 위해서였다. 1999년 출범한 G20은 G7, EU 의장국 그리고 신흥 12개국이 참여하는 국제기구로, 2008년 정상급 회의로 거듭나면서 경제를 넘어 국제정치까지 다루는 대표적 국제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이번 G20 공동성명에 러시아를 특정해 침공을 규탄하는 문구가 빠졌다. 단지 무력사용 자제라는 일반적 문구만 포함되면서 G20의 한계가 드러났고 우크라이나도 이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한 국가의 주권과 자유를 힘으로 강탈하는 규칙 파괴 행위에도 일관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에는 국제체제가 신냉전으로 전환되었다는 구조적 배경이 있다. 신냉전은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극명하게 다른 견해가 충돌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다. 러시아의 공격으로 시작된 싸움이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입장에서는 ‘전쟁’이지만 러시아는 이를 ‘특별 군사작전’으로 정당화한다. 전자의 경우는 규탄의 대상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러시아의 안보를 위한 것이기에 규탄이 될 수 없다는 논리다. 북한의 핵 도발도 유사한 논리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단호한 추가 대북 제재도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미국 등 민주주의 진영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비확산체제를 와해시키고 전 세계에 핵 공포를 조성하는 도발이라 규정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대북 적대시 정책’이 문제라는 북한의 입장을 두둔한다.

이전 G20 공동성명에서 러시아 침공을 규탄하지 못하면서 '하나의 지구, 하나의 가족, 하나의 미래'라는 슬로건이 자칫 보편적 가치를 유린하는 행위를 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인류 모두는 하나'라는 접근이 중요하다는 이상주의적 사고를 조성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물론 유사입장국으로만 구성된 G7과 달리 G20은 보편적 가치에 대한 입장을 달리하는 국가도 있다. 이번 G20에는 중국과 러시아도 회원국으로 참가했고, ‘전략적 자율성’인지 아니면 ‘전략적 모호성’인지 성격 규정이 애매하지만 암튼 민주주의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간 가교역할을 하려는 인도도 주최국으로 회의를 주도했다.

개점휴업 수준으로 그 역할이 저하된 유엔 안보리, 그리고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 G20 정상회의는 신냉전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그렇다면 이러한 숙제를 푸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두 개의 진영으로 양분화된 구도를 완화하기 위해서 적당히 타협하며 상대진영이 불쾌할 수 있는 것들은 외면하고 가벼운 사안들 위주로 합의하면서 살아가는 공존의 절충점을 찾는 것이다. 둘째, 보편적 가치와 규칙을 파괴하는 행동에는 엄격하게 대응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 동맹과 보편적 가치를 따르는 유사입장국이 나서서 국제사회가 일관된 원칙에 기반한 목소리를 내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전자는 쉬운 방식이지만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지켜내지 못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후자는 어려운 방식이지만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수호에는 유리하다.
그렇다면 한국의 외교에는 방향성이 정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후자를 위해 한미동맹, 한미일 협력체와 같은 소다자 외교를 적극적으로 펼침으로써 규칙기반 질서 수호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신냉전 구도 완화도 견인하기 위해서 소다자 협력체를 다층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