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토크라시에 빠진 거야
북한인권법 7년째 뭉개
서독, 동독인권 한목소리
올 정기국회도 불협화음만 요란하다. 얼마 전 대정부질문이 그랬다. 상대 당 의원을 조롱하거나, 국무위원과 저열한 말다툼을 벌인 게 다였다. 탈북민인 태영호 의원이 북한 인권에 대해 질문하자 한 야당 의원은 "북한 쓰레기"라고 야유했다. 이른바 '비토크라시(Vetocracy·상대 정파의 모든 정책을 거부하는 파당정치)'가 극에 이른 꼴이다.
불과 0.73%p 표차로 끝난 대선 이후 비토크라시는 갈수록 태산이다. 거대야당은 예산이나 정부·여당이 낸 법안을 무조건 비토(veto)하고,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이 일방 처리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게 상례화할 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북한인권법도 7년째 사문화 상태다. 거야가 이 법안에 따른 북한인권재단 출범에 어깃장을 놓으면서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통일부의 재단 이사 추천 요청에 대해 "내부논의 중"이라며 다시 거부했다. 2016년 여야 합의로 만든 법안을 민주당이 계속 깔아뭉개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비토크라시를 어느 한쪽 탓으론 돌리기 어렵다. 여권의 협치 노력 부족에 거야의 국정 발목잡기가 맞물린 결과여서다. 다만 북한인권법 공회전에 관한 한 100% 민주당에 책임이 있다. 초당적 합의를 일방적으로 저버린 채 최악의 비토크라시를 시전 중인 셈이어서다. 문재인 정부의 여당으로서 북한 노동당 김여정 부부장의 '하명'을 받들 듯 대북전단금지법을 6개월 만에 단독 입법한 민주당이었으니 말이다.
민주당 측은 북한인권재단 가동을 미뤄 온 배경을 이렇게 해명한다. 즉 "대북 인도적 지원, 북한 민주화라는 성격이 다른 업무가 한 재단에 묶여 있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낱 핑계다. 분단 이후 북의 세습독재 체제는 줄곧 강화됐지만, 역대 우리 정부가 이를 빌미로 대북 인도적 지원마저 거부를 선언한 적은 없었다. 결국 민주당은 북 세습정권이 싫어하는 북한 민주화란 어젠다를 다루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북한 주민 아닌 '최고 존엄'만 바라보는 행태는 문 정부 시절 극대화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방미 당시 "53년 전 미국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으면 저는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지지층의 반발에도, 북한 주민 인권 문제에 눈감진 않았던 셈이다. 반면 문 전 대통령은 평양 방문 때 능라도 경기장 연설에서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걷고 있는 지도자"라며 김정은의 리더십을 상찬했다. 하지만 북한 주민의 고통엔 일말의 측은지심도 표현하지 않았다.
요즘 김정은 정권은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민들이 굶주리든 말든 체제 유지가 최우선순위란 얘기다. 지난 9일 북한 정권수립 75주년 열병식에서 김정은은 4대째 세습독재 체제를 이어가려는 의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5성 장군인 박정천 군정지도부장이 한쪽 무릎을 꿇고 김정은의 10대 딸 김주애에게 귓속말로 뭔가를 보고하는 장면을 연출하면서다.
북 정권의 이런 비정상성이 우리 쪽에서 눈치를 본다고 달라질 리 만무하다. 되레 북한 주민이 최대 피해자가 될 게 뻔하다. 정보당국에 따르면 북한 내 아사자 발생건수는 올해 1~7월 240여건에 이르렀다. 미국 의회 내 초당기구는 최근 북·중 국경개방으로 사지인 북으로 강제송환되는 탈북민이 급증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런 비극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민주당이 각성해야 한다. 선진 민주국가에서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이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외면한 사례는 없다.
동서독 분단 시절 서독의 보수적 기민당과 진보적 사회당이 동독 인권 문제에는 한목소리를 냈다. 내독성(통일부 격) 산하 전독연구소는 동독의 인권유린 사례를 낱낱이 수집해 기록했다. 압도적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절대 약자인 북한 보통사람들의 인권을 외면해 사이비 진보란 오해를 자초해선 곤란하다.
kby777@fnnews.com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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