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여성 역무원이 직장 내 스토킹을 겪다 자신의 일터에서 참변을 당한 '신당역 스토킹 살해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다. 피의자 전주환(32)은 1심에서 보복살인 등 혐의로 징역 40년, 스토킹 혐의로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이어 2심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전주환은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따라서 전주환에 대한 엄벌은 이제 대법원의 판단만이 남았다.
이처럼 피의자 처벌은 이뤄지고 있지만 현장과 시민들은 여전히 "변한 게 없다"는 지적이 하고 있다. 사건 이후 역무원 2인 1조 근무확립, 스토킹처벌법(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강화 등 재발 방지 대책이 정부와 관계 기관, 정치권에서 나왔지만 지난 1년 동안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11일 오후 서울 중구 지하철 6호선 신당역 10번 출구에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1주기 추모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2023.9.11/뉴스1 /사진=뉴스1화상
유명무실한 '2인 1조 원칙'
14일 서울교통공사노조가 지난달 20~28일 지하철노동자 105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신당역 참사 1주기 역무현장 안전 진단 설문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9명(93.55%)꼴로 ‘공사의 대책 시행 이후 2인1조 문제가 해소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사건 당시 피해자가 홀로 순찰을 나섰다가 사망에 이르렀다. 때문에 근무수칙에 있음에도 지켜지지 않은 '2인 1조 원칙'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았다. 이에 오세훈 서울시장도 국정감사에서 "인력 충원 계획을 세워 2인 1조 순찰이 가능하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한 바 있다.
관련해 서울교통공사노조는 "지난해 12월 19일부터 '역 직원 2인 1조 순찰 강화 계획'을 통해 2인 1조 업무 기준 확립을 지시했지만 설문 응답은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가 절반에 달한다"며 "현장에서 적용할 수 없는 대책을 지시와 매뉴얼로 내놓고 사건 사고 발생 시 책임을 직원에게 전가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으면서 지하철 노동자들의 불안감은 큰 상황이다.
설문에서 10명 중 7명(72.13%) 꼴로 역에서 안전을 충분히 보호받고 있지 못하다고 답이 나왔다. 안전을 보호받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4.74%에 불과했다.
[연합뉴스TV 제공]
부족한 스토킹 범죄 대처
사건이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줬던 것은 스토킹이 살인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스토킹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범죄를 줄여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었다. 이는 스토킹처벌법 강화로 이어졌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집계된 올해 스토킹 피의자는 7545명에 이른다.
문제는 미흡한 피해자 보호조치나 낮은 처벌 수위에 있다.
실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조치인 '긴급응급조치'와 '잠정조치' 위반율이 높다. 경찰 직권으로 주거지 100m 내 접근금지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을 금지할 수 있는 '긴급응급조치'의 경우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래 약 2년간 11.0%다. 올해 7월까지는 189건의 긴급응급조치 위반이 발생했다.
법원이 경찰의 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내릴 수 있는 '잠정조치' 위반은 같은 기간 8.0%에 달했다. 잠정조치의 경우 서면 경고, 100m 이내 및 전기통신 이용 접근금지에 더해 유치장, 구치소 구금까지 가능하다. 올해 7월까지 잠정조치 위반은 364건이었다.
특히 스토킹처벌법 위반 판결 상당수가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쳐 처벌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익인권재단 공감 강은희 변호사는 "스토킹 범죄의 반의사불벌 조항 폐지를 포함했던 법 개정은 고무적인 일이었지만 이런 변화들이 실질적으로 스토킹 피해자들에게 와 닿을지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법에만 있는 형량, 법에만 있는 보호조치는 사실 그 자체로는 현장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법을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지난해 10월21일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는 전주환(사진 왼쪽)과 같은 달 19일 피의자 신상공개 결정으로 공개된 전주환 증명사진(사진 오른쪽). (사진=뉴시스, 경찰청) 2022.10.03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뉴시스
머그샷 공개, 1년 만에 '성과'
피의자 전주환의 신상이 공개되는 과정에서도 사회적 논란은 컸다. 공개된 전주환의 증명사진과 실제 모습 간의 괴리감이 커서다. 이후 신상공개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머그샷(범인을 식별하기 위해 구금 과정에서 촬영하는 사진)'을 공개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졌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여론을 받아 피의자 신상 공개 시 과거가 아닌 현재의 인상착의를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긴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정강력범죄법)’ 개정안이 여러 건 발의됐다. 이어 지난 12일에야 흉악범죄자의 머그샷 공개를 의무화하는 이른바 '머그샷 공개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의 문턱을 넘었다.
법안 통과가 늦어지면서 신상공개가 결정될 때마다 실효성 논란은 반복됐다. 전주한 이후 10명의 신상공개가 이뤄졌지만 머그샷이 공개된 것은 '등산로 성폭행 살인 사건' 피의자 최윤종(30)이 유일했다. 최윤종의 경우 머그샷 촬영과 공개에 동의해 가능했다.
coddy@fnnews.com 예병정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