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본초강목>에 그려진 호도(胡桃, 호두)(왼쪽)와 율(栗, 밤). 호두와 밤을 기침에 사용할 때는 속껍질을 제거하면 안된다.
중국 송나라 고종(高宗) 때 파양(鄱陽, 지금의 강서성 지역)에는 홍매(洪邁)라는 사람이 있었다. 홍매는 사대부 집안에서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이들 3형제는 아버지 홍호(洪皓)의 뒤를 이어 모두 학문적으로 상당한 성취를 이루고 있었다. 주위에서는 홍매와 두 형인 홍괄(洪适)과 홍준(洪遵)을 함께 일컬어 삼홍(三洪)이라 부를 정도였다.
홍매는 자연스럽게 관직에 들게 되었다. 홍매는 20대에는 지방관을 두루 지내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나이가 들어서는 궁에서 사관(史官) 등의 관직생활을 했다.
그런데 홍매가 궁에서 일을 하는 도중 어느 날 담병(痰病)에 걸렸다. 열은 없었지만 기침가래가 심했다. 아마도 얼마 전 찬 바닥에서 글을 쓰느라 한사(寒邪)에 폐가 상했을 것이다. 홍매는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밤새도록 기침을 하다가 새벽녘에 잠이 들어 늦잠을 자게 되었다.
그날따라 왕이 홍매를 찾았다. “홍매를 들라 하라.” 그러자 신하들이 “홍매는 지금 며칠째 심한 기침가래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직까지 입궐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증세가 사뭇 심해진 듯하옵니다.”라고 고했다.
홍매는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왕은 당대 명의들에게 급히 수소문을 했다. 홍매를 위해 쉽게 구할 수 있고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기침약을 구해오라는 것이다. 하루 새 많은 처방들이 도착했다. 그 중에 한 처방이 눈에 띄었다. 왕은 사신을 통해서 처방의 약재를 구해서 서찰과 함께 홍매에게 급히 보냈다.
홍매는 왕이 보낸 약재 꾸러미를 보고서는 왕의 신하를 아끼는 마음에 감복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면서 꾸러미를 풀어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냥 호두와 생강뿐이었다. 금은보화가 들어있을 것처럼 기대를 했기에 실망이 컸다.
홍매는 실망하는 기색으로 왕의 서찰을 읽었다. “이것은 명의가 말하길 기침의 명방(名方)이라고 한다. 호두와 생강을 보내니 잠들기 전에 호두 3개와 생강 3쪽씩을 씹어 먹고 나서 미음을 두세 모금 마시도록 하라. 이 방법대로 몇 차례 복용하고서는 곧바로 조용히 잠들면 반드시 나을 것이라고 한다.”라는 내용이었다.
명의의 처방이라니 그런가 보다 했고, 무엇보다 왕이 친히 내린 하사품이니 무시할 수 없었다. 홍매는 그날 입궐을 하지 못해서 일이 밀려 있었다. 그래서 연신 기침을 해대면서도 왕의 하사품 꾸러미를 들고 궁의 옥당(玉堂)에 도착했다. 옥당은 경서나 사적을 관리하고 왕의 자문에 응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이다. 그런데 옥당에는 일을 보는 관직들은 밤늦도록 문서를 정리할 일이 많아서 침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
느지막하게 옥당에 도착한 홍매는 왕의 말대로 호도육과 생강을 천천히 씹어먹었다. 호두는 고소하고 맛있었다. 생강은 맛이 매웠지만 호두 때문에 견딜 만 했다. 그러고나서 미음을 한두번 마셨다. 이렇게 몇 차례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벌써 저녁이 되었다. 중간중간 미음을 먹었더니 저녁을 안 먹어도 배고픔이 없어 취침할 시간이 되어 자리에 누웠다.
홍매의 기침은 원래 밤이 되면 심했다. 그런데 호도육과 생강을 먹고 난 그날은 저녁부터 기침이 점차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가래는 간혹 올라왔지만 한두번 만에 올라오니 뱉어내기도 수월했다. 기침 때문에 잠을 설쳤는데, 그날은 잠을 깰 정도의 기침이 없었다. 다음 날 해가 뜨자 가래가 사그라지고 기침은 멎어 있었다.
홍매는 단지 호두와 생강만으로 오랫동안 고생을 했던 기침이 하루 만에 진정됨에 놀랐다. 사실 당시까지의 의서에 호두가 기침에 효과가 있다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홍매가 하는 일은 사관으로서 기록이 전문이기에 이런 내용을 책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혹시 호두로 기침을 치료했던 사례들이 있는지 수소문했다. 역시 비슷한 치험례가 바로 들려왔다.
인근 지역의 율양(溧陽, 지금의 강소성 지역)에 사는 홍집(洪輯)에게는 3세 된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담천(痰喘)에 의해서 가래가 그르렁거리고 숨이 찬 증상이 연일 계속되었다. 담천(痰喘)이란 기관지에 가래가 심하고 뱉어내지 못해서 숨이 찬 것을 말한다. 일종의 급성기관지염이다.
어린 아들의 목에서 나는 그르렁거리는 가래소리는 집 밖까지 들릴 정도였고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더 심해지고 숨참이 올라왔다. 증상은 5일 밤낮으로 나타났고 심지어 젖도 빨지 못했다. 치료를 맡았던 의원들이 가래를 제거하는 도담(導痰)하는 약들을 처방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심지어 아이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위독하고 가망이 없다고까지 했다.
홍집의 처는 날이면 날마다 부처에게 아들을 낫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꿈속에서 관음이 나타나서 “아들에게 인삼호도탕(人蔘胡桃湯)을 복용시키도록 하거라.”라고 하는 것이다. 깜짝 놀란 부인은 꿈 이야기를 곧바로 홍집에게 전했다.
홍집은 어렵게 구한 신라인삼 1촌(寸) 마디와 호도육 1알을 함께 물에 달였다. 급한 마음에 호두의 속껍질은 제거할 겨를도 없이 그냥 넣었다. 이렇게 다린 것을 조개껍질 양만큼을 아이에게 먹이자 기침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곧바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홍집은 다음 날 다시 한번 먹이고자 인삼과 호도육을 다시 물에 넣고 달였다. 이때는 마음의 여유가 생겨 호도육의 속껍질은 깨끗하게 제거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침이 다시 발작했다. 홍집은 ‘호도육의 잔껍질이 특효한 것인가?’라고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다음에는 껍질째로 달여서 먹었다. 그랬더니 확실하게 기침이 잦아들었다. 이렇게 이틀 밤을 먹이자 기침과 가래는 모두 사라졌다.
홍매는 홍집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는 당시 출간되어 있었던 <외대비요>나 <태평성혜방>, <태평혜민화제국방> 등의 의서를 뒤져보았다. 그러나 어느 의서에도 인삼호도탕은 나와 있지 않았고, 기침에 호두의 잔껍질을 꼭 써야 한다는 내용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호두를 기침에 쓴다는 내용도 없었다. 홍집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아낼 수 없는 것이 분명했다.
홍매는 홍집의 이야기도 기록에 남기고자 했다. 홍매는 자신의 경험과 함께 홍집의 치험례까지 <이견지(夷堅志)>에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인삼호도탕(人蔘胡桃湯)은 이후 의서에도 등장하면서 줄여서 삼도탕(蔘桃湯)이라고도 하고, 꿈속에서 관음보살이 알려줬다고 해서 관음인삼호도탕(觀音人蔘胡桃湯)이라고 불리고 있다. 대체로 인삼은 기를 보충해서 숨참을 멎게 하고 속껍질이 있는 호두는 폐를 수렴하는 효과가 있다.
호두가 양쪽으로 나뉘어 쭈그러진 모양은 폐장을 닮았다. 그래서 그런지 호도육은 기관지 점막을 촉촉하게 해서 가래배출에 좋고 속껍질은 기침을 잡는다. 특히 호두의 속껍질은 삽미(澁味)가 있는데, 삽미는 타닌 성분으로 수렴작용이 강하다. 그래서 만약 호두의 속껍질을 제거하고 사용하면 기침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노인성 만성기침에 좋다는 오과다(五果茶)에도 호두가 들어가는데, 이때도 반드시 속껍질 채 사용해야 한다. 오과다는 호도(胡桃, 속껍질을 벗기지 않은 것) 10개, 은행 15개, 붉은 대추 7개, 생률(生栗, 생밤 속껍질을 벗기지 않은 것) 7개, 생강 1덩이를 잘게 썰어서 달여 먹는 처방이다. 흥미롭게도 생밤의 속껍질에도 타닌 성분이 많아 호두의 속껍질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밤을 기침에 사용할 때에도 속껍질을 제거하지 않는다.
음식으로 치료할 수 없는 병은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잘 낫지 않는 기침에 호두를 속껍질째 즐겨볼 만하다.
* 제목의 〇〇〇은 ‘속껍질’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본초강목(本草綱目)> 洪氏夷堅志, 只言胡桃治痰嗽能斂肺, 蓋不知其爲命門三焦之藥也. 油胡桃有毒, 傷人咽肺, 而瘡科取之, 用其毒也. 胡桃制銅, 此又物理之不可曉者. 洪邁云, 邁有痰疾, 因晩對, 上遣使諭令以胡桃肉三顆, 生薑三片, 臥時嚼服, 卽飮湯兩三呷, 又再嚼桃, 薑如前數, 卽靜臥, 必愈. 邁還玉堂, 如旨服之, 及旦而痰消嗽止. 又溧陽洪輯幼子, 病痰喘, 凡五晝夜不乳食. 醫以危告. 其妻夜夢觀音授方, 令服人參胡桃湯. 輯急取新羅人參寸許, 胡桃肉一枚, 煎湯一蜆殼許, 灌之, 喘卽定. 明日以湯剝去胡桃皮用之, 喘復作. 仍連皮用, 信宿而瘳. 此方不載書冊, 蓋人參定喘, 胡桃連皮能斂肺故也.(홍씨는 이견지에서는 ‘호도는 담으로 인한 기침을 치료하여 폐를 수렴할 수 있다’라고 말하였는데, 대체로 호도가 명문과 삼초의 약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유호도는 독이 있어 사람의 목구멍과 폐를 상하게 하지만, 창양 같은 증상을 치료할 때는 그 독을 이용하는 것이다. 호도가 구리를 제어한다는 것은 이 또한 사물의 이해할 수 없는 이치이다. 홍매가 말하기를 ‘내가 담병에 걸려 늦게 입대하자, 임금께서 사신을 보내 전유하기를 호도육 3개, 생강 3쪽을 잠잘 적에 씹어 먹고 미음을 두세 모금 마신 다음 다시 호도와 생강을 앞에서와 같이 몇 차례 먹고 즉시 조용히 자면 반드시 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내가 옥당으로 돌아와 임금의 말씀대로 복용하였는데, 다음 날 해가 뜨자 담이 사그라지고 기침이 멎었다. 또 율양에 사는 홍집의 어린 자식이 담으로 기침하는 병을 앓아서 5일 낮밤으로 젖을 먹지 못하자 의원이 위독하다고 말하였다. 그의 처가 꿈에서 관음보살의 처방을 받았는데, 인삼호도탕을 복용하도록 하였다. 홍집이 급히 신라 인삼 1치 정도를 가지고 호도육 1알과 함께 물에 달여서 조개껍질만큼만 아이에게 먹이자 기침이 즉시 진정되었다. 다음 날 탕약에 호도껍질을 제거하고 쓰자 기침이 다시 발작하였다. 이에 껍질 채로 사용하자 이틀 밤이 지나 낫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이 처방은 책에 실려 있지 않지만 대체로 인삼은 기침을 멎게 하고 껍질이 있는 호도는 폐를 수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향약집성방> 百一選方. 觀音人參胡桃湯, 治痰喘. 人參 一寸許, 胡桃肉 一箇 去殼不剝皮. 右煎湯服, 盖人參, 定喘, 帶皮胡桃, 斂肺故也. (백일선방. 관음인삼호도탕은 담으로 인한 천식을 치료한다. 인삼 1촌 쯤, 호도육 1개. 딱딱한 껍질은 버리되 속껍질은 벗기지 않음. 이상을 달여 복용하니 대개 인삼은 천식을 그치게 하고 속껍질이 있는 호도는 폐기를 수렴하기 때문이다.)
<동의보감> 〇 人參胡桃湯, 參桃湯. 治氣虛喘, 人參 一寸, 胡桃 二箇(去殼不去皮). 右剉, 入薑五, 水煎服. 名人參胡桃湯. 一名參桃湯. 盖人參定喘, 帶皮胡桃斂肺也. (인삼호도탕, 삼도탕. 기가 허하여 숨이 찬 것을 치료한다. 인삼 1촌, 호두 2개. 단단한 껍질은 벗기되, 속껍질은 벗기지 않는다. 이 약들을 썰어서 생강 5쪽을 넣어 물에 달여 먹는다. 이것을 인삼호도탕이라 하는데, 삼도탕이라고도 한다. 대개 인삼은 숨이 찬 것을 멈추게 하고, 속껍질이 있는 호두는 폐를 수렴한다.)
〇 胡桃. 性平一云熱, 味甘, 無毒. 胡桃瓤縮, 資其形以斂肺, 故能治肺氣喘促. 治痰喘, 能斂肺. 取胡桃 三箇(去殼不去皮), 與生薑 三片, 臨臥細嚼, 以溫湯呷下. (호도. 성질이 평하거나 뜨겁다고도 한다. 맛은 달며 독이 없다. 호두 속살은 쭈그러든 모양이 그러하듯 폐를 수렴하는데, 폐기로 숨이 가쁜 것을 치료할 수 있다.
늘 복용한다. 담천을 치료하고 폐를 수렴한다. 겉껍질만 벗기고 속껍질은 남겨 둔 호두 3개와 생강 3쪽을 잠들기 전에 꼭꼭 씹어 따뜻한 물로 먹는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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