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연출 김지훈)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영화가 있다. 학교폭력과 거기에 연루된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설경구·천우희 주연의 사회고발 영화다. 지난해 4월 개봉한 이 영화는 그러나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소재의 흡인력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인물과 이야기가 다소 도식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한 영화평론가는 '오직 관객에게 분노를 안기기 위해 온통 나쁜 인간들의 나쁜 짓만 담았다'며 별 두 개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의 관람을 적극 권유하는 쪽이다. 특히 당신이 (학)부모라면 이 영화를 꼭 찾아서 보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는 미학적 판단의 대상인 동시에 사회를 들여다보는 창의 역할도 하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상당하다. 무엇보다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교사들의 연이은 죽음과 그들을 사지로 내몬 원인의 밑바닥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이른바 '내 새끼 지상주의'를 이 영화만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경우는 많지 않아서다.
김훈 작가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교권붕괴 사태의 원인으로 '내 새끼 지상주의'를 지목한 글을 한 일간지에 보냈다. 거기서 그는 "(학부모들의) '악성민원'의 본질은 한마디로 한국인들의 DNA 속에 유전되고 있는 내 새끼 지상주의"라고 짚으면서 "(그것은) '내 새끼'를 철통 보호하고 결사옹위해서 남의 자식을 제치고 내 자식을 이 세상의 안락한 자리, 유익한 자리, 끗발 높은 자리로 밀어올리려는 육아의 원리이며 철학"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무력한 관념의 신음처럼 들리지만 뉘우침의 진정성이 없다면 문제를 헤쳐나갈 추동력은 발생하지 않는다"며 우리 사회 전체의 통렬한 반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당신들이 애들보다 더해요. 애들 앞에서 부끄러운 줄 아세요." 영화 속 여교사 송정욱(천우희 분)은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다"며 내 새끼의 안위와 안녕을 위해 갑질을 넘어 불의와 불법도 불사하는 학부모들에게 이렇게 외친다. 하지만 그의 외마디는 그저 허공의 메아리로 흩어질 뿐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학교와 학교장도 그가 그저 잠자코 있기만을, 문제가 더 이상 커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지난 7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부임한 지 2년밖에 안 된 젊은 여교사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 후 벌써 5명 넘는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정경희 의원실에 따르면 그동안 상세한 내용이 보도되지 않았을 뿐 지난 2018년부터 올 6월 말까지 전국에서 100명 넘는 공립 초·중·고 교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학부모들의 악성민원과 그에 따른 교권붕괴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영화 속 이야기처럼 단순한 민원자가 아니라 이미 괴물이 되어버린 그들을 여교사 한 명이 감당하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다. 전국의 교사들이 벌써 아홉 차례 검은색 옷을 입고 국회 앞에 모여 관련 법 개정을 촉구하고 나선 이유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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