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길주 고려대학교 일민국제관계연구원 화, 연구교수
-김정은,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쟁 '성스러운 싸움' 규정
-북러 두 외톨이 독재자, 국제질서 변경 의지 천명...
-북러 10월 외무장관 회담, 협력 정례·제도화 주목
-유엔 안보리 결의, 유명무실화 다자적 제재 나서야
[파이낸셜뉴스]
반길주 고려대학교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연구교수
국제 외교무대에서는 초청도 받지 못하는 외톨이 김정은과 푸틴이 2023년 9월 13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전격적으로 북러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푸틴에게는 수일 만에 끝날 것으로 기대했던 전쟁이 1년6개월 이상 진행되고 이제는 우크라이나의 반격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내린 궁여지책으로 보인다. 김정은에게는 ICBM 실전배치, 제2격 능력 완성, 정찰위성 확보 등 핵심 프로그램에서 기술적 한계를 느끼고 궁지에 처한 러시아의 전략적 지위 약화라는 틈새를 노린 계산된 행보라고 볼 수 있다. 주목할 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성격 규정이다. 김정은은 이 전쟁을 미 제국주의와 벌이는 “성스러운 싸움”이라며 푸틴을 한껏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김정은 자신도 이 싸움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한편으로는 김정은이 “성스러운 싸움”을 이야기한 것은 자신도 한미 혹은 한미일을 대상으로 이러한 싸움을 해오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핵 프로그램을 명분화한 것이라 평가된다.
두 독재자는 이번 회담을 통해 국제질서를 제국주의자에 대한 투쟁으로 규정하며 규칙과 규범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북러 정상회담이 있기 바로 전에 북한은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절차 문제가 의제로 다루어질 수 있다고 언급한 것도 규칙 변경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그리고 현상변경을 위해 당당히 북러 간 거래를 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 거래는 무기-노동자 거래, 무기-식량 거래, 무기-기술 거래, 전략 거래 등 크게 4가지 차원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중 특히 무기-기술 거래는 핵 안보 차원에서 심대한 위협이다. 북한이 핵 고도화 완성 목표를 제2격 능력(Second Strike Capability)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수중에서 은밀하게 핵무기를 발사하는 능력의 확보에 러시아의 기술이 절실한 상황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수중 핵무기 역량 강화 차원에서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및 핵어뢰 관련 기술이, 수중 플랫폼인 핵추진잠수함 관련해서는 소형원자로 기술 등이 협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제1격 능력에서는 최종 단계에 있는 ICBM 개발에 있어서 탄두 재진입 기술도 협력의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물론 러시아가 상기와 같은 고가 기술을 북한에 한 번에 일사천리로 넘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전쟁 교착상태로 궁지에 처한 러시아 상황상 북한의 레버리지가 올라갔다는 사실만의 부인할 수 없다. 이를 방증하듯 푸틴은 위성개발도 돕고 군사기술 협력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종신형 절대권력을 누리는 푸틴의 언급이라는 점에서 어떤 형태로든 정책화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푸틴의 발언을 실천하려는 과정에서 북한이 러시아에게 얼마나 제공하는 지가 변수가 될 것이다. 일사천리로 기술 이전은 하지 않더라도 북한이 줄 것이 많으면 기술협력의 고강도 모드로 전환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서는 절차적 과정이 필요하다. 따라서 북러 협력이 정례화, 제도화될지가 주목된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마저 이미 조금씩 포착되고 있다. 10월 초에 북러 외무장관 회담을 열기로 합의했고, 푸틴은 김정은의 북한 초청에 수락한 것으로 전해진 것이다.
따라서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조성된 새로운 차원의 안보 도전에 새로운 로드맵으로 체계적으로 단호하게 대응할 필요성이 있다. 우선 한국은 이러한 분위기를 예리하게 읽어내기라도 한 듯 AP4 자격으로 작년부터 나토 정상회의에 참가하여 유럽과 아시아가 안보 차원에서 협력하는 모멘텀을 형성했는데 이제는 이러한 협력체를 잘 활용하여 북러가 조성하려는 새로운 안보질서 도전을 상쇄해야 한다. 나아가 한미일 협력체도 북러의 위험한 시도에 제동을 거는 유효한 툴로 진화시켜야 한다. 나아가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새로운 도전에 맞서는 새로운 형태의 제재 설계에 나서야 한다.
기능이 정지한 유엔 안보리 결의로는 제재가 어렵겠지만 유사입장국을 중심으로 한 다자적 제재는 가능할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고강도 제재 부과를 고려할 때 실효성 여부부터 따지는 것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제제 부과 그 자체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지키는 의지를 매섭게 전달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