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길주 고려대학교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연구교수
-합의 당시부터 전투준비태세에 문제 발생 우려 제기
-북한 GP 한국에 2.5배 많아도 동일 개수 철거 등
-지해공 걸쳐 비례성 부합하지 않은 독소조항 심각
-안보·군사대비태세 약화, 복원은 오랜 시간 걸려
-한국, 선제 일방 파기는 북한 도발 명분에 역이용
-북한 사실상 합의 무력화하면서 선파기 나서지 않아
-北 도발 시, 사문화 의지 천명 ‘조건부 존속’ 카드 제시해야
-유효성 담보하는 명확하고 구체적인 조건 제시 담겨야
[파이낸셜뉴스]
반길주 고려대학교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연구교수
2018년 9월 19일 남북 군사당국은 우발적이든 혹은 의도적이든 간에 군사적 충돌을 막는 가드레일을 구축하는 차원에서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 서명했다. 소위 신뢰구축조치의 일환으로 소통과 신뢰 조성에 기반한 운용적 군비통제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합의 당시부터 한국의 안보이익 침해 우려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소위 접경지역에서 대규모 야외기동훈련, 사격훈련 등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전투준비태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남북이 각각 11개씩 철거한 GP(최전방 감시초소) 합의가 상황적 비례성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었고 작전적으로 꼭 필요한 곳도 철수된다는 우려도 있었다.
비례성에 대한 문제인식은 철거 후 DMZ(비무장지대) 내 북한군의 GP 150개소로 60여개소인 한국군 GP보다 2.5배 많다는 사실에 기인했다. 해상 적대행위 중지 구역 설정은 더 심각한 독소조항이었다. 135km의 서해 완충구역이 서해 NLL 서측 끝단 기준 북측해역 50km, 남측해역 85km로 설정되면서 NLL(북방한계선)이 기준선으로 작용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북한이 한국도 NLL을 실질적 해상분계선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공세를 펼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 위험성이 심각한 것이었다.
이러한 독소조항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평화를 달성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한국의 군사대비태세는 약화되는 가운데 북한은 17차례나 합의를 위반하는 등 도발을 이어갔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9·19 군사합의를 자신이 레드라인을 넘지 않으면서 한국의 안보이익을 잠식하기 위해 회색지대전략 차원에서 이용한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9·19 군사합의 5년을 맞아 숙고해 보면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나? 우선 잃은 것은 안보태세다. 접경지대를 평화지대로 인식하면서 안보관과 군사대비태세가 약화되고 말았다. 태세 약화는 하루아침이지만 태세 복원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를 염두에 두고 잃은 것을 복원하는 과정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숙제가 주어졌다. 얻은 것은 교훈이다. ‘평화’는 말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지켜야 한다는 반성과 교훈을 얻었다. 물론 대북 외교와 협상도 필요하지만 오직 소통을 위해서 안보태세 완화를 허용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평화라는 사실은 교훈으로 잘 새겨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문제는 앞으로 9·19 군사합의를 어떻게 하야하는지에 대한 숙제다. 크게 존속, 조건부 존속, 파기라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을 것이다. ‘존속’ 옵션은 지금의 안보이익 침해를 방치하는 것이기에 위중한 안보 상황을 고려하면 적실한 선택이 아니다. 그렇다고 일방적 ‘파기’도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한국이 무조건 파기하면 북한의 도발 명분에 역이용될 수 있다.
북한도 9·19 군사합의를 위반하는 도발을 이어가도 먼저 나서서 파기하겠다고 나서지 않는 것은 이러한 빈틈을 이용하겠다는 셈법이 있는 것이기에 함정에 말려들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조건부 존속’ 카드가 가장 유효할 것이다. 당장은 존속시키되 북한이 도발하면 사실상 사문화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겠다는 방식이다.
이러한 카드가 채택되어 시행에 돌입하게 되면 대표적인 후속조치로 적대행위 중지구역에 군사대비태세를 복원·강화하는 수순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조건부 존속’ 옵션의 유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조건이 구체화되지 않으면 북한이 도발을 지속해도 적절한 파기 타이밍을 놓쳐 시간만 지연시키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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