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대법, 강제추행죄 처벌범위 확대...상대방에 공포심 일으키면 성립

기존 ‘항거 곤란’ 판례 폐기

10대인 사촌동생을 끌어안고 침대에 쓰러뜨려 몸을 만졌음에도 강제추행죄를 물을 수 없다던 법원 판단이 대법원에서 파기됐다. 당시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됐던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이 있어야 한다'는 기존 판례를 깨고,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는 새로운 대법 판례가 나왔다. '항거곤란'을 요구했던 강제추행죄의 판단 기준을 대법원이 완화하면서 향후 강제추행죄 처벌 범위가 넓어지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1일 성폭력처벌법 위반(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 상고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 사건은 친족관계에서 발생한 강제추행 사건이다. A씨는 2014년 8월 자신의 집에서 당시 10대였던 사촌 동생을 "한 번만 안아줄 수 있느냐"며 끌어안아 침대에 쓰러뜨리고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 강제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이러면 안된다"며 나가려는 피해자를 붙잡고 끌어안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A씨 강제추행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3년을 선고했지만 2심은 강제추행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무죄로 뒤집었다. "A씨 물리적인 힘의 행사 정도가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였다고 볼 수 없어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2심 판단이었다.

A씨의 "만져달라", "안아봐도 되냐"는 등의 말은 객관적으로 피해자에게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말이라고 보기 어렵고, 피해자를 끌어안은 행위 등을 할 때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던 점이 근거가 됐다.

다만 폭행·협박이 없더라도 위력을 행사한 사실이 있으면 인정되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상 위계등추행 혐의만 적용해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항거불능'은 문자 그대로 어떤 행위에 대한 저항이 불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자의적으로 항거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물리적이거나 심리적 이유로 항거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을 의미하며, 성범죄 전반에 걸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개념이다.

강제추행죄는 성립 요건으로 '폭행 또는 협박'을 규정하면서, 이 '폭행 또는 협박'을 따질 때 판단 기준을 피해자의 '항거곤란' 여부로 설정했다. 이 기준은 1983년부터 유지된 것으로 약 40년 만의 판례 변경이다.

전합의 판례 변경은 이같은 기준이 시대 흐름에 맞지 않다는 것이 이유다.
강제추행 판단 기준이 피해자의 저항에 있다는 것은 '정조에 관한 죄'로 강제추행을 분류하던 옛 관념에 뿌리가 있다는 것이다.

전합은 "피해자의 항거 곤란을 요구하는 것은 여전히 피해자에게 정조를 수호하는 태도를 요구하는 입장을 전제하고 있다"며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현행법 해석으로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이에 따라일반 형법에서 폭행·협박죄가 인정되는 수준의 행위만 있다면 강제추행죄에서도 폭행 또는 협박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게 맞다는 것으로 판례를 변경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