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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수장 없는 대법원, 국회가 사법부 올스톱시켜서야

대법원장 후보자 동의 난망
사법부 볼모 국회 직권남용

[fn사설] 수장 없는 대법원, 국회가 사법부 올스톱시켜서야
30년 만에 대법원장 공백이 현실화되면서 대법관들이 25일 긴급 회의를 열고 대법원장 대행 권한의 범위, 전원합의체 일정 등에 대해 논의했다. 사진=뉴시스
사법부 수장 공백이 현실화됐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기가 24일 만료되면서 25일 0시부터 대법원장 공백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김덕주 전 대법원장이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퇴한 1993년 9월 이후 30년 만의 일이다.

대법관 13명은 25일 긴급회동을 갖고 선임 대법관인 안철상 대법관에게 대법원장 권한대행을 맡겼다. 대법관들은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 처리가 계속 지연되거나 부결될 경우 전원합의체 사건 선고를 연기할 것인지 여부를 논의했다. 안 대법원장 직무대행과 민유숙 대법관은 내년 1월 1일로 임기가 끝나는 만큼 공백 장기화 시 대책도 검토했다.

상당 기간 사법부 파행 운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로 정기국회 의사일정을 협의할 야당 원내대표가 전격 사퇴함에 따라 벌어졌다. 이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도 난망이다. 임명동의에 필요한 과반 의석을 점유하고 있는 민주당은 부적격 의견과 함께 부결 의사를 밝힌 바 있다. 1988년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부결 이후 35년 만의 사법 공백이 예상된다.

민주당 원내지도부가 26일 새로 구성되더라도 10월 11일부터 국정감사가 예정돼 있어서 다음 본회의가 11월에야 열릴 전망이다. 추석 연휴 직후인 10월 4일부터 6일 사이 본회의 개최에 여야가 합의하는 게 대법원장 공석을 최소화하는 최선의 방안이다. 만약 이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부결되면 정부·여당은 대법원장이 없는 상태에서 새 인물을 찾아야 하는데 길게는 수개월이 걸려 해를 넘길 수 있다.

대법원장 공백 사태가 장기화되면 사회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나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 열리는 전원합의체 선고가 올스톱된다. 상고심 심리 역시 차질이 불가피하다. 대법원에서는 매년 5만건 가까운 사건을 처리한다. 지난해 대법관 1명이 처리한 사건은 4036건꼴이었다. 대법원 규칙 제정·개정 등 대법원장 승인이 필요한 일부 업무는 물론 내년 2월 법원 정기인사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대법관 후보자 제청권은 헌법이 정한 대법원장 권한인 만큼 대법관 후임 인선 작업도 여의치 않을 가능성이 높다.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다. 야당이 대정부 투쟁 수단으로 사법부를 볼모로 삼는 행태는 대의민주주의를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민주당 내부 문제로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격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을 위해 여야가 합의했던 25일 국회 본회의 표결을 일방적으로 무산시킨 것은 국회의 직권남용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회에 사법 수장 임명동의권을 준 것은 선출직 의원들이 국민의 뜻을 반영하라는 것인데 표결을 미룸으로서 민의를 외면했다는 말을 듣게 된 셈이다. 입법부가 사법부를 마비시킨 결과에 대해 국민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