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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못 떠나는 서방 기업들, 사업 분리해 위험 격리

중국 내 서방 기업들, 해외 사업 이전 검토 '디리스킹' 하고 싶지만 구체적인 실행 방법 모호 일단 글로벌 영업에서 중국 부문 분리 중국과 관련된 위험 요소가 글로벌로 번지지 않게 차단

中 못 떠나는 서방 기업들, 사업 분리해 위험 격리
지난 2020년 4월 8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동펑혼다 자동차 공장에서 직원들이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AP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중국에서 활동하는 서방 기업들이 최근 지정학적 갈등과 침체 위기 때문에 현지 투자를 줄이면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디리스킹(De-risking·위험 경감)'을 고민하고 있다. 이들은 우선 중국 사업부를 잘라내어 중국에서 생긴 문제가 글로벌 영업 전체에 전염되지 않도록 격리하는 데 집중하는 모양새다.

'디리스킹' 어떻게?
파이낸셜타임스(FT)는 24일(이하 현지시간) 유럽과 미국 업계 관계자들을 인용해 서방 기업들의 중국 투자 및 지출이 줄어들고 있지만 중국을 떠나지는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주재 유럽상공회의소가 올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을 상대로 설문조사 결과 응답 기업 중 11%는 현재 중국 사업을 해외로 이전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전을 검토중이라고 밝힌 비율은 7%였으며 13%는 일단 이전에 대한 결정을 미루는 중이라고 답했다. 나머지 69%는 중국 사업을 옮길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FT는 올해 중국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답한 비율이 2016년 이후 처음으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중국 주재 미국상공회의소도 올해 비슷한 보고서에서 중국 내 미 기업의 12%가 중국 밖에서 자재 및 인력 등을 조달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12% 역시 해외 조달을 검토중이라고 알려졌다. 중국에서 미국인들이 진행한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는 지난 2020년 기준으로 16년 만에 최저치로 내려갔다.

앞서 외신들은 중국이 2018년부터 미국과 본격적인 무역 전쟁을 시작하면서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이는 미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처음 사용한 단어로 한 나라 경제가 특정국가 혹은 세계 전체의 경기 흐름과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현상을 뜻한다. 외신 및 경제계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 경제가 디커플링으로 완전히 분리되어 따로 움직이는 상황을 우려했다. 이후 2021년 취임한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의 무역 관행과 안보 위협 등을 비난하면서도 디커플링 수준으로 결별할 생각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국과 유럽의 정부 인사들은 특히 올해부터 디커플링 대신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여 향후 발생할 경제 위기를 방지하자는 디리스킹 전략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선에 있는 기업들은 디리스킹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실행할 지 몰라 막막한 상황이다. 독일 싱크탱크인 유럽외교협의회(ECFR)의 애거시 데마라이스 선임 연구원은 "유럽은 디리스킹이 무엇인지, 어떻게 실제로 수행할 수 있는 지 여전히 생각 중이다"고 말했다. 중국 컨설팅업체 트리비엄차이나의 트레이 맥아버 공동창업자는 "대부분 기업들이 중국 외에 대안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외국 기업들이 앞으로 "훨씬 위험한 환경에서 사업할 전략을 찾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中 못 떠나는 서방 기업들, 사업 분리해 위험 격리
<중국 내 유럽 기업들의 사업 이전 희망 지역 설문 조사> *(위에서 아래로) 동남아시아, 유럽, 기타 아시아·태평양 지역, 인도, 북미, 남미, 대만, 중동, 일본, 한국, 기타 *단위: 응답비율(%) *자료: 중국 주재 유럽상공회의소·파이낸셜타임스(FT)

中 시장 격리, 위험 전염 차단
일단 애플과 인텔같은 다국적 대기업들은 기존의 중국 영업을 유지하면서 인도나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에 추가로 생산 거점을 마련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FT는 다른 대부분의 기업들은 생산 기지를 늘리는 것보다 중국 시장을 격리하여 중국에서 만든 제품을 중국에서 소비하는 전략을 선호한다고 전했다. 이러한 전략을 쓰면 중국에서 서방제 제품을 팔지 못하거나 서방 국가에서 중국산 제품을 거부하는 상황에서도 글로벌 영업 전반적으로는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글로벌 이익의 약 절반을 중국에서 거두는 독일 폭스바겐 그룹은 지난해 중국에 40억유로(약 5조7248억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폭스바겐 중국 법인의 랄프 브란트슈테터 이사는 해당 투자 덕분에 "중국 법인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독자적인 의사 결정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2명의 관계자에 따르면 프랑스 및 이탈리아계 반도체 기업인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2021년 중국 영업·마케팅 기능을 아시아·태평양 사업부와 분리했다. 동시에 급여와 직원 관리 및 보고 구조도 따로 구축했다. 영국 및 스웨덴계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는 중국 정부의 외국 기업 규제에 대처하기 위해 중국 사업부를 분사하여 홍콩에 상장할 계획이다.

지정학적 갈등에 대비해 공급망을 분리하는 방안도 주목받고 있다. 독일 제약사 머크는 지난 5월 발표에서 중국의 제재 대상에 오를 수 있는 미국산 원료 대신 다른 곳에서 공급망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독일기계공업협회(VDMA)는 회원사의 3분의 1 이상이 미국 또는 중국 부품이 없는 '중립' 제품을 만들어 양국에 동시에 공급하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설명했다.
미 금융 컨설팅업체인 매킨지와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중국 정부의 까다로운 정보 검열에 대처하기 위해 중국에서 쓰는 전산망을 아예 본사에서 분리해버렸다.

미 예일대 법학전문대학원 폴차이중국센터의 샘 삭스 국제 사이버 정책 연구원은 "위험은 모든 곳에서 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 정부의 불확실한 정보 안보 정책, 미중 갈등 심화, 대만 침공 사태 등을 위험 요소로 꼽으며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