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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도시도 감당 못해... 한자·가타카나·알파벳 가득한 간판들

울산시 한글 관련 정책과 노력 무색
대기업, 공공기관도 외국 문자 자주 사용
북카페 '止觀書架', 한자 상호 유지키로
외국 문자 간판 못달게 강제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아
한글 간판 문제, 개인의 가치관에 맡겨야 하는 상황

한글도시도 감당 못해... 한자·가타카나·알파벳 가득한 간판들
울산대공원 지관서가의 한자 상호. 위는 2021년 4월 개관 직후 촬영된 울산시 자료 사진. '止觀'(지관)이라는 한자 상호가 붙어 있다. 아래 사진은 ’止觀書架‘로 상호가 바뀐 모습으로, 지관서가 홈페이지 화면을 캡처했다.

【파이낸셜뉴스 울산=최수상 기자】 일제강점기 한글과 우리말을 지키는 데 앞장섰던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의 고향이자 스스로를 한글도시라고 자부하는 울산은 한글 사랑이 남다르다.

외솔 선생의 생가가 위치하고 있는 울산 중구는 외솔기념관을 통해 선생을 기리고 '한글사랑 지원 조례'까지 만들어 한글 사용과 표기를 장려해오고 있다.

울산시도 다양한 한글 정책 시행과 함께 매년 10월이면 한글날을 기념해 ’외솔한글한마당‘ 행사를 지원하고 있다. 올해도 제577돌 한글날을 맞아 지난 7일~9일 사흘간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울산시는 앞서 5월에 행안부 주관 지방자치단체 합동평가에서 최우수(1위) 평가를 받았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한글도시 울산'을 앞세운 공공언어 개선 행정 서비스였다.

하지만 한글도시 울산도 알파벳, 한자, 일본의 가타카나와 히라가나 등 외국 문자로 쓴 간판과 상호 문제는 어찌할 방도가 없다.

개인 상점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조차도 알파벳으로 쓴 기관명을 홍보하거나 간판을 내걸다 보니 한글 애용 정책이 무색할 뿐이다. 울산시의 브랜드슬로건은 우리말이 아닌 아예 ‘ULSAN, THE RISING CITY’이다. 알파벳으로 쓴 영어다.

대기업인 에스케이(SK)가스가 지역사회 기부 일환으로 울산 곳곳에 설치한 '止觀書架'(지관서가)는 아쉬움이 남는 사례다.

한글도시도 감당 못해... 한자·가타카나·알파벳 가득한 간판들
울산시립미술관에 입점해 있는 지관서가의 상호. 한자 아래에 작은 크기로 한글이 병기가 돼 있다. 사진=최수상 기자

이곳은 커피와 차를 마시며 비치된 서적을 볼 수 있는 북카페이다. 에스케이가스가 내부를 꾸며주고 한자로 쓴 '止觀書架'라는 이름을 붙여 운영 기관에 기부하고 있다. 현재 울산대공원, 울산시립미술관, 장생포 문화창고, 유니스트, 선암호수공원 등 5곳에 들어서 있다. 앞으로 20여 곳이 더 생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1년 4월 울산대공원에 1호점이 문을 열었을 때부터 한자로 된 상호가 논란이 됐다. 한글 관련 단체 등에서는 사회공헌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한글로 변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에스케이가스 측은 한자 사용을 유지하기로 입장을 굳혔다.

문제는 단순히 한자 사용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 국어교사는 “대기업과 울산시 등 공공기관이 외국 문자 사용에 문제없음을 인정하는 것처럼 인상을 주어 일반 상점에서도 알파벳이나 한자, 일본 글자의 사용이 확산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글도시도 감당 못해... 한자·가타카나·알파벳 가득한 간판들
한글도시를 자처하는 울산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상호와 간판들. 한글로 쓴 예쁜 입간판도 보이지만 알파벳과 일본 문자로 꾸민 간판들도 혼히 볼 수 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어떤 곳은 일렬로 늘어선 외국 문자 간판으로 인해 이국적인 느낌까지 준다. 사진=최수상 기자

국문학을 전공한다는 한 대학생은 “생계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외국 문자로 만든 간판과 홍보물을 무조건 비난한다는 것은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다”라면서도 “한글 애용과 보호를 국가가 아닌 국민 개개인의 가치관에 맡겨야 한다는 현실은 조금 씁쓸하다"라고 말했다.

ulsan@fnnews.com 최수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