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다 이어 비구이위안 디폴트 위기.. 잇단 악재에 中부동산 신뢰 추락
주택 판매 줄며 개발업체 자금난.. 中 정부, 첫구매 대출금리 인하
유주택자 대상 부동산세도 연기.. 부동산 심리 회복에는 미지수
중국의 한 공사 현장. 사진=정지우 특파원
【파이낸셜뉴스 베이징=정지우 특파원】 중국 경제에서 '만병의 근원'으로 취급된다. 물가, 소비, 생산, 수출, 투자가 모두 회복되지만 '이것'만큼은 유독 약발이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올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의 발목을 잡는 최대 걸림돌이다. 일부에선 제대로 된 처방도 하지 않으면서 상처가 아물길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중국 당국 나름의 이유는 있다. 너무 강력한 약을 쓰면 미국과 금리 격차는 더 벌어지고 이는 위안화 약세, 자본 이탈을 부채질할 수 있다. 자칫 기껏 분위기를 잡아가는 부채가 다시 증폭될 가능성도 있다.
'백약이 무효'라는 중국 부동산 얘기다.
■'백약이 무효' 부동산 부채
중국의 부동산 관련 부채규모는 말 그대로 천문학적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2008년 기준 부동산 부문의 부채가 중국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3%였다. 하지만 2020년 말에는 54.5%까지 폭증했다. 금액으로 따지면 8조4000억달러(1경1323조원)에 달한다.
중국 정부가 2020년 말 △순부채비율 100% 이하 △유동부채 대비 현금성자산 1배 이상 △선수금 제외 자산부채율 70% 이하 등 '3대 레드라인'을 부동산 개발업체 적용하며 대출에 제한을 둔 것은 꺼내든 것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이 덕분에 부동산 부문의 총 부채는 2년 만인 2022년 GDP의 48%까지 감소했다.
그러나 이미 문어발식 확장이 장기화된 상태에서 갑자기 돈 줄이 끊긴 부동산 개발업체는 줄줄이 파산하기 시작했다. 23년 불패 신화를 자랑하던 중국 부동산의 무너지는 순간이다.
중국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에버그란데) 그룹을 시작으로 롱촹, 스마오, 쉬후이, 진커, 양광청, 중량지주, 롱신그룹, 푸리부동산, 쟈자오예 등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거나 자금난에 봉착했다. 중국 전체로 따지면 주택 판매의 40%를 책임지던 부동산 기업들이 휘청거렸다.
곳곳에서 주택 건설이 중단됐고 '유령 도시'들도 생겨났다. 공급망은 와해됐으며 투자했던 기관들 또한 유동성이 막혔다. 중국 정부가 1년여 만에 백기를 들었다. 제로코로나 후유증에 부동산마저 냉각되면서 당해낼 방도가 없었다.
중국 당국은 부랴부랴 부동산 개발업체의 대출 규제를 완화하고, 부동산 금융 지원책을 잇따라 내놨다.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의 책정 기준이 되는 5년 만기 대출우대 금리를 2022년 1월과 5월, 8월에 이어 2023년 6월까지 4차례에 걸쳐 4.65%에서 4.2%까지 내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올해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 디폴트 위기가 또 터졌다. 한 때 중국 최대 매출을 자랑했던 민간 부동산 개발업체다.
비구이위안의 총 부채는 1조4000억위안으로 헝다그룹의 약 60% 규모이지만 주택 프로젝트 규모는 4배에 달해 건설이 중단될 경우 사회 불안이 야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비구이위안은 올해 안에 70만채를 완성해 인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상반기 동안 절반도 완성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용 평가 기관인 S&P 글로벌 레이팅은 중국 상위 100대 부동산의 7월 신규 주택 판매가 2022년 대비 33% 감소했으며 이 가운데 비구이위안은 60% 줄었다고 전했다. 부동산 부문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면서 주택 판매가 급감하고 이로 인해 개발업자들이 자금난에 봉착, 공사 완료와 이자 지불이 어려워는 상항이다.
■호재성 정책 내놓으며 시장 '유도'
'호재'라고 판단할 수 있는 정책들이 잇따라 등장하는 것은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이다.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선전, 창사, 쑤저우, 충칭, 우시, 동관, 청두 등 1선 도시는 물론 신(新) 1선 도시로 불리는 지역도 줄줄이 런팡부런다이(?房不??) 제도를 도입했다. 2선과 3~4선 도시도 움직임이 일고 있다.
런팡부런다이는 문자 그대로 주택만 인정하고, 대출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풀이하면 과거 대출 이력과 관계없이 본인 혹은 가족 명의의 부동산이 없으면 생애 첫 주택 구매자로 간주해 초기 납입금(서우푸) 비율과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를 낮춰주는 것을 말한다.
중국은 주택을 구매할 때 초기에 일시불로 개인이 먼저 내야하는 서우푸 제도를 운용한다. 서우푸 비율은 지역과 주택 보유 여부에 따라 차등 적용된다. 이 비율을 낮추면 개인 부담금이 줄어들고 은행으로부터 더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선 서우푸 비율이 높아 주택 구매의 장애물이 됐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과 국가금융관리감독총국은 올해 8월 31일 공동 성명을 통해 이를 각각 20%, 30%로 제한했다. 부동산에 묶일 돈을 줄여 부담을 낮추고, 시중에 자금이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꺼내는 조치다.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도 인하했다. 중국 부동산 전문 연구 플랫폼인 베이커연구원의 통계를 보면 7월 기준 100대 도시의 모기지 금리는 첫 구매자의 경우 평균 3.90%, 두 번째 구매자는 4.81%다. 이 가운데 1선 도시는 각각 4.50%, 5.03%, 2선 도시는 3.88%, 4.81%로 집계됐다.
■때가 아니다, 쏙 들어간 '부동산세'
주택 보유자에게 물리는 세금인 '부동산세' 도입을 올해도 사실상 추진하지 않는 것 역시 당국의 의지가 반영됐다. 제14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지난달 7일 입법 계획을 발표하면서 재정 및 조세 분야에 증치세법(부가가치세법), 소비세법, 관세법 등에 대한 심의를 이번 임기 내에 부칠 것이라고 명시했다. 그러나 주목받는 부동산세법과 개인소득세법은 입법 계획에 포함되지 않았다.
시장에선 이를 '유예'라고 보고 있다.
중국 인민대학교의 리융 재정금융대학 교수는 "부동산은 국민의 부(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민감하다"며 "최근 몇 년 동안 부동산 시장의 수요와 공급 관계는 과열 방지에서 과냉각 방지로 큰 변화를 겪었는데, 이때 부동산세를 성급하게 시행할 경우 부동산 시장은 물론 경제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은 한국의 재산세나 종합부동산세와 비슷한 보유세가 없다. 상속세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주택을 사고팔 때 물리는 거래세인 토지증치세(양도소득세), 계세(취득세) 등의 세목만 있다.
따라서 고가주택 소유자나 다주택자에게 유리하다. 이로 인해 중국에서 부동산은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오랫동안 인식돼 왔다. 중국 GDP에서 부동산과 관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달한다.
다만 수년간 지속된 부동산 시장의 불황은 수시로 변하는 정부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과 신뢰도 하락에 보다 방점이 강하게 찍힌 만큼, 심리를 회복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실제 1~7월(누적) 부동산 개발 투자 증가율은 -8.5%로 5개월째 하락세를 기록했다. 또 전년동기대비 부동산 개발업체 주택 건설면적은 6.8%, 분양주택 판매 면적은 6.5% 각각 감소했다. 분양주택 판매액은 1.5% 줄었다.
■중국 경제 놓고 전문가 의견 엇갈려
부동산을 포함한 중국 경제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판단은 엇갈린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5.2%로 전망했으나, 곧바로 크리스티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지난달 외신과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구조 개혁이 없다면 중기적으로 4%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에서도 인구 고령화와 생산성 하락이 성장률을 억제하고 중국 부동산 부문의 문제가 소비자들의 지출을 억제한다고 봤다.
미·중 관계 전문 컨설팅업체 로듐그룹은 아예 2%대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경제 부진은 수십 년 동안 국가 성장을 주도하는 동시에 과도한 부채를 남긴 부동산 개발업체의 손실과 파산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중국 정부가 모기지 금리 인하와 계약금 인하 등 다양한 부동산 거래 부양책을 도입했다면서도 중국 부동산업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수정했다.
세계은행(WB)은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4월 발표 당시와 같은 5.1%로 유지했지만 내년 성장률 전망은 같은 기간 4.8%에서 0.4%p 하향조정했다. S&P글로벌 역시 기존 5.2%에서 0.4%p 낮춘 4.8%로 예상했다. 부동산 시장 냉각을 가장 큰 걸림돌로 지목했다.
중국 내에서도 자조적인 목소리가 들린다. 중국 국가통계국 부국장을 지낸 허컹(81)은 지난달 말 부동산 관련 포럼에서 "중국 인구가 30억명은 돼야 빈집을 채울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고 푸념했다.
이미 중국 땅에 지어진 주택이 너무 많아 14억 인구를 수용하고도 남아돈다는 뜻이다.
반면 세계적 투자은행 씨티그룹은 지난 4일 "중국 경기가 바닥을 쳤다"면서 성장률 전망치를 4.7%에서 5.0%로 0.3%p 올렸다. 제조업 지수가 6개월 만에 확장 국면에 접어드는 등 산업생산과 소매판매가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점, 중국 정부가 위기를 겪고 있는 부동산 부분에 적극적인 부양책을 펼치고 있는 점을 상향 조정의 근거로 들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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