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식 "권고 이행 않으면 시정명령 즉각 발동"
"국가정체성에 배치돼" 행안부·교육부 후속조치"
[파이낸셜뉴스]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이 11일 용산 서울지방보훈청에서 '정율성 기념사업 중단 권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가보훈부는 11일 광주시 등에 중국 혁명음악가 '정율성(鄭律成·정뤼청) 기념사업'을 즉각 중단하고, 이미 설치된 정율성 관련 기념시설도 철거할 것을 권고했다. 보훈부가 지자체 사무와 관련해 시정을 권고한 것은 지난 6월 '부(部) 승격'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정율성 기념사업 헌법 부인, 대한민국의 영예 훼손...기념시설 등 철거 권고
이번 권고 대상엔 광주광역시와 광주광역시 남구·동구, 전남 화순군과 전남교육청·전남 화순교육지원청이 포함됐다.
이날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서울보훈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시 등의 정율성 기념사업 부당성에 대해 "정율성은 6·25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과 중공군의 사기를 북돋운 팔로군 행진곡과 조선인민군 행진곡 등 군가(軍歌)를 작곡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적군으로 남침에 참여해 대한민국 체제를 위협하는데 앞장선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율성 기념사업은 헌법 제1조, 국가보훈 기본법 제5조,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3조 등에 따른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과 그 유가족의 영예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광주시에는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정율성로(도로명)'와 '정율성 거리 전시관'이 조성돼 있다. 전시관 내엔 정율성 흉상과 동판 조각상도 설치돼 있다. 광주시는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사업'과 '정율성 전시관 조성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광주 남구 정율성 거리 전시관. 사진=뉴스1
■정율성 기념사업, 대한민국 정체성 부인... 호국영령과 유가족의 영예 훼손
또 전라남도 화순군에는 정율성 고향집 전시관이 있고, 화순군 능주초등학교에는 정율성 흉상과 벽화 등 기념시설이 설치돼 있다.
보훈부는 "지방자치법 제184조를 근거로 광주시 등에 이를 즉각 중단하고 기존 사업에 대해서도 시정할 것을 권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방자치법 184조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지자체의 사무에 대해 조언 또는 권고나 지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어 박 장관은 "지자체의 자율성은 존중하지만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배치되는 인물에 대한 기념사업의 설치, 존치에 대해 용납할 수 없다"며 "권고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지방자치법 제188조에 따른 시정 명령을 즉각 발동할 것"이라며 "시정 권고 뒤 (이행가지) 몇 달을 기다릴 생각은 전혀 없다. 적절한 시점까지 (이행)되지 않으면 명령을 바로 발동하겠다"고 밝혔다.
지방자치법 188조에 따르면 지자체장(시·도지사)의 명령·처분이 법령에 위반되거나 현저히 부당해 공익을 해친다고 인정되면 주무장관이 서면으로 시정을 명령하고 그 기간에 이행하지 않으면 취소·정지할 수 있다.
특히 화순의 정율성 고향집 내 전시물엔 '정율성이 항미원조(抗美援朝) 시절 남긴 소중한 사진'이란 설명이 기재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항미원조란 중국 측이 6·25전쟁 시기 '미국의 침략에 맞서 북한을 도왔다'는 의미로 쓰는 표현이다.
이와 관련 보훈부는 문재인 정부 시기였던 2018년 정율성에 대한 독립유공자 공적을 심사하기도 했으나 독립운동 활동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가 확인되지 않은데다 북한 정권을 지지한 행적이 명확하다는 등의 이유로 독립유공자 서훈을 하지 않았다.
박 장관은 "정율성 기념사업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와 '국가보훈 기본법' 제5조,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 제3조 등에 따른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과 그 유가족의 영예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광주 남구 양림동 정율성거리에 설치돼 있던 정율성 흉상이 훼손돼 지난 2일 '수리 중' 표지가 붙어있다.사진=뉴스1
■정율성 적군의 사기를 북돋은 나팔수, 사용 예산 117억원... 광주시 중단할 수 없다.
박 장관은 특히 "광주시와 화순군 등에서 정율성 기념시설·사업을 위해 그간 사용한 예산이 최소 117억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광주·화순 일대에 있는 '정율성 생가'만 3곳이다.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박 장관은 '지방자치법 소관 부서는 행정안전부'란 지적엔 "국가유공자 예우나 유공자 폄훼에 관한 건 보훈부 장관 소관"이라며 "(정율성 기념사업도) 보훈부 장관이 나서야 할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지방자치를 주관하는 행안부, 초등학교와 관련된 교육부 등에서도 후속 조치가 있으리라고 기대한다"며 "전국 방방곡곡에서 한 번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광주시나 화순군이 끝내 보훈부의 시정 권고 등 조치에 응하지 않을 경우 그에 대한 법적 다툼까지 벌어질 수 있단 관측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박 장관은 "지자체의 자율성이 헌법과 배치될 때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법률적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은 "국가의 품격은 누굴 기억하고 기념하는가에 달려 있다. 자유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호국영령과 참전 영웅들이 아닌, 적군의 사기를 북돋웠던 나팔수이자 응원 대장을 기리는 건 우리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율성 관련 사업계획 철회를 거듭 촉구했다.
박 장관은 지난 8월부터 광주시의 정율성 기념공원 조성 중단을 요구하며 이 문제를 공론화해왔다.
이런 가운데 최근 화순에선 지역 방송사 주관 '정율성 동요제'가 취소됐고, 능주초교에선 기념 교실이 폐쇄됐다. 또 교내에 설치돼 있던 정율성 흉상·벽화에 대해서도 학부모 등이 주축이 돼 화순군 측에 철거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광주시는 정율성 기념사업이 오래전부터 추진됐고 이미 많은 예산이 투입됐기 때문에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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