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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옛 신문광고] 최초 고급 승용차 '코로나'

[기업과 옛 신문광고] 최초 고급 승용차 '코로나'
우리나라 땅에 처음 선보인 자동차는 고종 황제의 의전용 차량으로 1900년대 초 미국에서 들여왔다. 서울역사박물관에 같은 차량이 전시돼 있다. 1913년에는 순종 황제용으로 1912년식 캐딜락 리무진을 수입한 것으로 돼 있다. 자동차는 조금씩 늘어났다. 1918년 212대에 불과했지만 1932년엔 4800대, 1940년 무렵에는 1만대까지 증가했다.

1920년대까지 일본은 자동차를 생산하지 못했다. 일본 최초의 자동차 제조회사인 도요타가 독립해 설립된 때는 1937년 8월이었다. 이 무렵 국내에도 '조선국산자동차회사'라는 자동차 제조회사가 세워졌다. 일본의 자동차회사인 동경와사전공계(東京瓦斯電工系)가 설립한 회사다. 현재의 인천 부평구 산곡동 미산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20만평(약 66만㎡) 규모의 공장에서 자동차를 생산할 계획이었으나 재정상 문제로 도쿄자동차회사에 1939년에 합병됐고, 규모도 4만평(약 13만㎡)으로 축소됐다고 한다. 부평에 대우자동차 공장이 자리를 잡은 연유가 거기에 있다.

광복 후 미군들이 남기고 간 지프의 엔진과 차축을 이용하고 드럼통을 펴서 차체를 만든 '시발자동차가 등장, 한국 자동차산업의 태동을 알렸다. 같은 해 대우자동차의 전신 신진공업사와 쌍용자동차의 전신 하동환자동차가 설립돼 자동차산업은 점차 영역을 넓혀 갔다.

1962년부터 우리 정부의 자동차산업 진흥정책으로 최초의 근대시설을 갖춘 자동차공장이 만들어졌다. 새나라자동차가 그것이다. 새나라자동차는 일본 닛산의 1200㏄ 승용차 400대분의 부품을 들여와 조립해 생산하기 시작했다. 1965년이 되어서 새나라자동차는 신진을 합병하고 일본 도요타와 기술제휴로 더 품질 좋은 자동차를 생산했는데 바로 '코로나'다(경향신문 1967년 4월 19일자 광고·사진).

코로나는 당시로서는 드문 히터와 라디오 등 편의장치를 갖춘 현대식 승용차였다. 섬유의 '혼방'과 자동차의 '코로나'는 당시 어린이들 사이에서 좋은 것의 대명사처럼 쓰였다. 품질 좋은 코로나는 197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고 흔한 승용차였다. 길 위를 달리는 승용차의 십중팔구는 코로나였다고 보면 된다. 그 코로나가 지금 바이러스 이름으로 인간을 괴롭히는 존재가 된 것은 아이러니다.

세계적 자동차가 된 현대가 본격적으로 차량을 제조하기 시작한 것은 1967년이다. 설립 시기는 1946년이다. 현대는 미국 포드와 손잡고 첫 작품인 코로나와 이름이 비슷한 '코티나'를 생산했다.
현대와 같은 그룹이 된 기아는 광복 직후 경성정공으로 출발했다가 자전거 등을 만들며 기술을 축적, 자동차 제조에 뛰어들었다. 후륜구동 승용차 '브리사'가 첫 제품으로 영화 '택시운전사'에도 등장했던 그 차다. 1975년 포드와 결별한 현대는 '포니'를 내놓고 세계 16번째의 독자개발 차량으로 이름을 올렸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