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재무부, 카타르 정부와 합의 통해 이란 석유 자금 동결 확인
韓에서 4년 동결 끝에 지난 8월에 카타르로 이체된 이란 자금
이달 이스라엘 사태 책임론 커지면서 이란 제재 강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1980년대 이라크와 전쟁 기념일을 맞아 이란 혁명수비대 장비들이 거리에 전시된 가운데 시민들이 이를 구경하고 있다.AP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지난 8월 이란이 한국에서 약 4년 동안 보관 중이던 돈을 되찾도록 허용했던 미국 정부가 이란의 은행 계좌를 다시 동결했다. 이는 이달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배후가 이란이라는 정치권 비난을 의식한 결과로 추정된다.
미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월리 아데예모 미 재무부 부장관은 12일(이하 현지시간) 민주당 하원의원들과 만나 카타르 정부와 계좌 동결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카타르 정부는 합의에 따라 이란 정부가 현지 은행에 예치된 60억달러(약 8조원)를 인출하지 못하게 막기로 했다.
아데예모는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 돈은 한동안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같은날 미 백악관의 존 커비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브리핑에서 WP의 보도에 대해 "그 돈 전액이 여전히 카타르 은행에 있고, 단 10센트도 사용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그 돈을 매우 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한국과 이란은 2010년 미국 정부의 승인 아래 원화결제계좌로 상계 방식의 교역을 진행했다. 이란에서 원유와 초경질유(가스콘덴세이트)를 수입한 한국 정유·석유화학 회사가 국내 은행 2곳에 개설된 이란 중앙은행 계좌에 수입 대금을 입금하면, 이란에 물건을 수출하는 한국 기업들이 해당 계좌에서 대금을 받아 가는 형식이었다.
미국 등 6개국과 이란은 2015년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체결하고 이란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경제 제재를 풀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은 지난 2018년에 핵합의를 탈퇴하고 경제 제재를 복원했다.
미국은 2019년 9월에 이란 중앙은행에 대한 제재 수준을 특별지정제재대상(SDN)에서 국제테러지원조직(SDGT)으로 강화했고 한국의 은행들은 이란 중앙은행 계좌 운용을 중단했다. 해당 계좌들에 남은 돈은 해외에 동결된 이란 자산 가운데 가장 많았다. 이란은 2021년에 페르시아만을 지나던 한국 화물선 '한국케미'호를 나포한 뒤 한국 정부를 상대로 묶인 돈을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미국은 그동안 이란의 항의를 무시했으나 지난 8월 10일 이란에 억류된 미국인 5명을 풀어주는 대가로 이란이 한국을 포함한 해외의 자산을 가져갈 수 있도록 허가했다. 한국에 있던 이란의 돈은 카타르의 은행 계좌로 이체됐다. 미국은 이란이 식량과 의약품 구매 등 인도주의 용도로만 해당 자금을 사용할 수 있으며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미 정치권에서는 이달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후 공격의 배후가 이란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하마스 관계자는 이란이 자금과 훈련을 지원했다고 밝혔으며 이란 역시 이번 공격 직후 이스라엘이 자초한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미 정부는 이란의 개입 여부를 공식 조사하기 시작했고 미 여야 양쪽 모두 이란에 대한 제재 강화를 요구했다.
한편 유엔 주재 이란대표부는 WP에 보낸 성명에서 해당 자금에 대해 "이란 정부가 이란 국민을 위해 제재 대상이 아닌 모든 필수품을 구매하는 데 사용하도록 지정된 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해당 자금이 "이란 국민의 정당한 소유"라고 주장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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