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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자영업 연체 위기 넘기려면 대출 부담 퇴로 터줘야

고금리·고물가·고환율 삼중고
민생 살리기 관점서 검토 필요

우리 경제의 허리 격인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빚더미에 올라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대출원리금 상환에 허덕이고 있다. 장사를 잘해서 갚으면 될 일이지만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이라는 삼중고에 휘둘려 갚을 여력이 바닥난 게 문제다.

장사는 안되는데 대출은 갈수록 늘고 대출연체율은 높아지는 구조가 역력하다. 15일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분기별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 자료에 따르면 올해 2·4분기 말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기관 대출잔액은 1043조2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 12월 말보다 358조원 불어난 수치다.

대출잔액도 1·4분기(1033조7000억원)보다 무려 9조5000억원 불었다. 연체액도 역대 가장 많은 7조3000억원에 달했다. 연체율도 상향곡선이다. 2·4분기 기준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기관 연체율은 1.15%로, 1·4분기(1.00%)보다 0.15%p 높다. 2014년 3·4분기(1.31%) 이후 8년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자영업의 위기를 바라보는 인식은 다양하다. 이 가운데 지나치게 난립한 자영업과 이자도 내지 못할 만큼 경쟁력 없는 자영업은 자연도태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대표적으로 코로나19 기간 늘려준 대출을 더 이상 연장해 줄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런 원칙론적 관점이 우리가 처한 경제환경에 적합한지 묻고 싶다. 현재 경제위기는 정부도 어찌하지 못할 지경이다. 기준금리를 낮추면 자동적으로 해소될 일이다. 그런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도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없는 제한된 선택지에 갇혀 있다. 외부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번엔 이스라엘·하마스 충돌이 빅 리스크로 부상하고 있다. 자구책을 구사할 카드가 없는 마당에 경쟁력 없는 자영업자의 퇴출이라는 논리를 밀어붙이는 건 과도하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의 위기에 대한 냉철한 상황인식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최근 '9월 금융위기설'이 대두된 바 있다. 진앙지는 자영업자·소상공인 코로나19 대출 상환유예 지원 종료와 부동산 PF대출 부실 가능성이었다. 다행히 9월 위기설은 넘어갔으나 뇌관은 여전히 살아 있다. 관련 지표만 따져봐도 대출 압박으로 벼랑 끝에 몰렸다는 신호를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한 공적 공제제도인 '노란우산'에서 이런 이상기류가 감지된다. 올해 1∼8월 노란우산의 폐업사유 공제금 지급액이 8948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40.2% 증가했다. 더구나 올해 2·4분기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 가구의 실질 처분가능소득이 월평균 537만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19.5% 줄었다고 한다. 자영업자가 이자와 세금 등을 제외하고 실제 쓸 수 있는 돈이 확 줄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소상공인·자영업 위기를 시장 경쟁력 관점에서만 보는 건 뜬구름 잡기에 불과하다. 지금은 민생의 관점에서도 들여다봐야 할 때다. 대출을 갚을 수 있는 정상차주와 지급불능 상태인 취약차주를 구분해 맞춤형 대응이 요구된다.
취약차주에 대해선 필요하다면 채무재조정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 이참에 중장기적 관점에서 대출관행을 뜯어보는 작업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단기 일시상환 구조를 장기 분할상환하는 방식으로 유도하는 방안이 대표적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