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동 상생지식산업센터 출범
서울시·LH, 소상공인 재정착 도와
세운지구 소규모 공장 대거 이주
재개발 철거지역과 상생 보여줘
서울 중구 산림동 상생지식산업센터 내부의 깔끔한 모습.
센터 인근 낙후된 영세 상인 골목길. 사진=이설영 기자
골목 구석구석 빼곡히 자리한 낡은 건물 사이 우뚝 솟은 6층 건물이 주변 풍경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6층 건물은 청계천 인근 세운지구에서 최근 본격 운영을 시작한 '산림동 상생지식산업센터'다.
17일 방문한 산림동 지식산업센터 주변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가늠조차 안되는 소규모 공장들이 즐비해 있다. 금속을 갈거나 자르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들이 골목을 가득 채운다. 이곳에서 수십년째 작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기술자들은 그야말로 도시의 장인들이다. 산업은 물론 예술용품 등의 각종 시제품 등 다품종 소량생산 등이 가능해 도시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 공간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세운지구에는 30년이 넘는 노후 건축물 비율이 94%에 달하고, 화재에 취약한 목조 건축물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세운지구의 소규모 공장들이 시간이 멈춘 듯 수십 년째 그 모습 그대로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동안 도심 곳곳은 재개발을 반복하며 환골탈태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근 청계천이다. 청계천은 1978년 복개 완료 후 공구상, 조명가게, 제조업공장, 신발상회, 의류상가, 헌책방, 벼룩시장 등 상가들이 밀집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고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약 30~40년이 지나면서 청계천 위 청계고가의 안전문제가 불거졌고, 주변 건축물들이 노후하면서 보수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개발의 상징이었던 청계천 일대는 도심의 대표적인 낙후지역으로 전락했다. 그로 인해 2003년부터 추진한 것이 청계천 복원이다. 청계고가를 철거하고 청계천을 복원한 후 이곳은 시민의 휴식터로 자리 잡았다.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루면서 젊은이들이 수시로 찾는 상권으로 재탄생했다.
■"여인숙에서 5성급 호텔 온 기분"
세운지구에는 전기·전자·금속·인쇄 등 제조업체와 유통업체가 즐비하다. 수십 년째 같은 곳에 자리를 지키며 명실상부 도심 최대 제조업 골목을 형성했다. 그런 세운지구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상생지식산업센터는 그 대표 사례다. 세운지구 재개발로 오래된 건물들을 철거하면서 세입자들의 재정착을 돕고 도심 산업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서울시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함께 만든 곳이다. 기존 세운지구에 있던 소규모 공장들 58호가 지난 7월 입주를 완료했다. 내부엔 작업자들을 위한 중앙냉방시스템, 샤워실 등을 갖췄다. 입주업체 간 활발한 소통이 이뤄지도록 각 층에 회의 공간도 뒀다.
일반적인 창업센터나 업무용 오피스텔들은 내부는 대부분 컴퓨터와 책상 등으로 꾸며져 있는 데다가 분위기도 차분하지만 상생지식산업센터는 각종 복잡한 기계들과 그 기계들이 뿜어내는 금속음이 사방에 울려 퍼진다. 다양한 물품을 수레에 싣고 이리저리 이동하는 작업자들 덕분에 공간 자체가 살아 숨 쉬는 느낌을 준다.
센터의 입주자 대표 역할을 하고 있는 황동금속 김희명 대표는 "입주한 지 5개월 정도가 됐는데 쉽게 말해 여인숙에서 5성급 호텔로 온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다"며 "운영상 개선했으면 하는 부분도 있지만 센터에 입주한 것만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개발주체와 세입자 상생 모델
약 40년간 금속제조일을 하고 있는 김 대표는 세운지구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2018년 말부터 세입자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세운지구 3구역 일부가 철거되는 걸 본 뒤 동료들과 수년간 세입자 이주대책을 요구한 결과 기존 사업장 철거와 동시에 센터에 입주할 수 있었다. 세운지구 3구역은 유명한 노포 을지면옥과 양미옥이 있던 곳이다.
김 대표는 "우리의 마지막 요구는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었다"면서 "결과적으로 LH가 갖고 있던 이 부지에 서울시가 건축비를 부담하는 조건으로 센터를 만들어 입주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상생지식산업센터는 기존 상가들의 새로운 일터라는 점 외에 개발주체와 철거지역 상가 세입자들이 상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가 됐다.
김 대표는 "전국적으로 재개발을 하면서 세입자 대책으로 상가를 만들어 준 유일한 사례로 알고 있다"며 "아직 이 주변에 철거를 앞둔 상가가 많고,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을 하는 동료들도 많은데 우리 센터를 모범사례로 참고해 다른 구역의 세입자들도 우리처럼 더 좋은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해 4월 높이 규제 등을 완화해 서울도심을 '녹지생태도심'으로 재창조하겠다고 밝혔다.
세운상가군이 녹지생태도심의 핵심구간이 될 전망이다. 세운상가군을 철거한 뒤 북악산에서 종묘, 남산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녹지축을 조성하고, 대규모 업무공간도 들어설 전망이다. 재개발 완료 후 이 곳엔 경의선 숲길의 약 4배에 달하는 13만㎡의 녹지가 조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ronia@fnnews.com 이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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