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은 '알파고의 아버지' 딥마인드를 인수하면서 글로벌 인공지능(AI) 기술의 최고봉이 됐다.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창업자는 마이크로소프트(MS), 페이스북, 구글로부터 각각 인수제안을 받았었다고 한다. 허사비스가 매각 상대로 구글을 선택한 이유는 "딥마인드와 별도로 'AI윤리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는 제안을 구글만 수용했기 때문이라는 후일담이 있었다.
생성형 AI가 시장에 나온 올해 데미스 허사비스를 비롯해 샘 알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같은 세계 AI시장을 주도하는 기업가, 기술자, 과학자 350여명이 미국 AI안전센터와 함께 "AI로 인한 멸종 위험을 완화하는 것은, 전염병이나 핵전쟁 위험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우선순위로 다뤄져야 할 문제다"라는 한 문장의 짧고 강력한 성명서를 냈다.
AI 기술이 한 단계 도약할 때마다 새로운 규범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 나온다. 그것도 AI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킨 당사자가 직접 신신당부한다. AI기술 전문가일수록 기존의 규범체계로는 AI와 함께하는 디지털 세상을 정의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뉴욕 유엔총회에서 "디지털 심화 시대의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는 뉴욕구상을 발표한 뒤, 우리 정부가 지난달 '디지털 권리장전'을 발표했다. AI뿐 아니라 디지털로 정의되는 새로운 사회에서 전 세계가 공동으로 번영해야 하는 기본원칙을 담았다. 디지털 환경에서 자유와 권리, 공정한 접근과 기회균등,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사회를 규정하고 디지털시민의 권리는 물론 기업의 의무까지 정의한 그야말로 권리장전이다. 기존 국경은 이미 의미가 없어진 디지털사회의 권리와 책임을 모두 담아 법률들의 기본이 되는 법을 만든 것으로 전 세계 AI 전문가들이 바라던 새 규범의 틀을 잡은 것이니, 굉장한 일을 해냈다.
그런데 울림이 작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새로운 질서를 규정했는데, 아직 한국의 디지털 권리장전을 연구하고 있다는 연구소나 기업을 못 봤다. 유럽연합(EU)이 DSA(디지털 서비스법)나 GDPR(일반 데이터 보호규정) 같은 개별법 초안만 발표해도 전 세계가 술렁이던 것을 생각하면 디지털 권리장전이 진짜 권리장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걱정도 된다.
당장 국내에서조차 디지털 권리장전을 만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외에 어떤 부처가 손과 머리를 보태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외국 여러 나라들과 권리장전을 공유하기 위한 글로벌 회의는 어떻게 계획되는지도 알 길이 없다. 권리장전 이후에 교육, 의료, 노동, 저작권 분야의 개별법들은 어떻게 바꿀 것인지 마스터플랜은 연구되고 있다는 소식이 없다.
괜한 걱정이면 좋겠다. 이미 지난해 대통령의 '뉴욕구상' 발표 이후부터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계획이 다 세워졌다는 반박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다. 전 세계가 공유할 디지털 신질서가 독백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디지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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