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

100달러 지폐가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는 이유? [이환주의 생생유통]

[파이낸셜뉴스]
100달러 지폐가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는 이유? [이환주의 생생유통]
산책하는 빌 게이츠. 연합뉴스

빌 게이츠는 길에 100달러 짜리 지폐가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는 게 합리적 선택이라는 말이 있다.

빌 게이츠의 연봉을 계산해 1초당 받는 금액을 구하고, 돈을 줍느라 허리를 굽혔다 펴는데 2.5초가 걸린다고 가정했을 때 2.5초 동안 가던 길을 가는 편이 100달러보다 더 비싸기 때문이다. 이 농담은 지난 2014년 2월 빌 게이츠가 네티즌과의 대화에서 같은 질문을 받고는 "100달러를 주워서 (자신이 운영하는) 재단에 줄 것 같다"고 말하면서 일단락이 되긴 했지만, '돈'과 '사람의 노동'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자본주의 하에서 사람의 노동에는 가격 표가 붙는다. 같은 양과 같은 질의 노동일지라도 그 나라의 발전 정도에 따라 다른 가격이 붙기도 한다.

또 같은 나라 안 에서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과 같은 고용 형태에 따라 동일 노동에 다른 임금이 지급되기도 한다. 심지어 죄를 짓고 교도소에서 강제 노역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부자들은 노역을 하는 대신 하루 일당을 수백, 수천만원으로 계산해 이를 피하기도 한다. 이른바 황제 노역이다. 이 밖에도 성별, 인종, 환경, 계절, 수요와 공급, 경제상황 등 다양한 변수가 노동의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같은 원론적인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완전하게 동일한 생수 1병의 가격도 그 생수가 판매되는 곳이 대형마트인지, 온라인인지, 비행기 내부인지, 파인 다이닝인지에 따라 모두 다르다. 특정 가격에 특정 노동이 성립하는 것은 (불법과 외력을 제외한다면) 양자가 동의해 교환된 것이기 때문이다.

100달러 지폐가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는 이유? [이환주의 생생유통]
배달의 민족 캐릭터

배달의 민족? 배달의 역사

지금부터 한 30년쯤 전에 부모님은 부천에서 과일 장사를 시작 하셨다.

오며가며 들리는 손님도 있었지만 매출의 많은 부분은 부천 먹자골목 인근에 위치한 호프집과 유흥주점 등에서 발생했다. 눈이 내리는 겨울이면 아버지의 배달을 따라 갔던 적도 있었다. 아버지의 오토바이 짐칸에 줄넘기와 비료 포대를 사용해 임시 눈썰매 같은 걸 만들고 눈 쌓인 아스팔트 도로를 미끄러져 갔던 것이다. 대부분의 가게는 바로 과일 값을 지급하는 대신 외상 전표 같은 걸 만들고 매월 혹은 일정 주기로 대금을 치렀다. 별도의 배달료는 없었다.

20년쯤 전에도 비슷했다.

대학의 동아리방 같은 곳에서 선배들은 중국 음식을 자주 시켜먹었는데 학생회를 오래 했던 어떤 여자 선배는 종종 자장면 1그릇을 배달로 시켜 먹곤 했다. 보통은 단체로 시켜먹는게 일반적이었지만 어쨌든 그 선배는 자장면 1그릇을 별도의 배달료 없이 사 먹었다. 10년쯤 전에도 배달료는 없었다. 회사에 막 입사해서 여의나루역 근처 한강변에서 날씨가 좋으면 치킨과 떡볶이 등을 시켜먹었었다. 주소가 있는 것도 아닌데 배달 기사분들은 정확한 위치에 시킨 음식을 가져다 줬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배달앱이 생기고, 전화 주문 대신 스마트폰으로 간단하게 원터치 주문이 가능해지면서 배달에도 가격이 붙기 시작했다. 역사책에서 분명 우리 민족은 백의민족, 한민족 이라고 배웠는데 어느 순간 우리민족은 '배들의 민족'이 돼 있었다.

100달러 지폐가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는 이유? [이환주의 생생유통]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뉴스1

만약에 쿠팡이 없었더라면

기자 초년병 시절 생활경제부를 출입했을 때 쿠팡이란 기업을 알게됐다.

당시만 해도 소비자를 여럿 모아서 단체 구매하면 할인을 해주는 소셜커머스 업체(그루폰, 티켓몬스터)들과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기존 시장에서는 G마켓과 11번가와 같은 오픈 마켓이 주류였다. 쿠팡은 기존 경쟁자들 사이에서 매년 적자를 거듭하며 기업의 존속마저 위태로워 보였다. 손 대는 족족 엄청난 성공을 거두던 미다스의 손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의 이례적인 실패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매출은 커졌지만 동시에 적자 규모도 커지던 쿠팡은 매년 "계획된 적자이며 더 큰 수익을 위한 준비기간"이라고 설명했지만 시장의 의심은 커져갔다.

변화의 조짐은 '쿠팡맨'에서 읽혔다. 거대한 자본을 들여 물류 센터를 늘려나가던 쿠팡은 배송기사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며 '쿠팡맨'을 채용했다. 쿠팡맨 서비스 초기 당시 훤칠한 배송기사가 배송 후 인증숏까지 남겨주는 친절한 서비스로 기존의 다른 쇼핑몰과는 한 차원 높은 서비스라르 평가가 나왔다. 신도시 사모님들이 쿠팡맨이 오기 전에 화장을 고친다는 농담도 나왔다.

하지만 쿠팡의 규모가 커질 수록 쿠팡맨의 처우 문제는 조금씩 열악해졌다. 쿠팡맨의 정규직 전환 비율과 관련된 논란이 있었고, 업무의 지나친 과중과, 작업 환경 등에 대한 논란이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쿠팡의 편리한 서비스에 서서히 스며들어 갔다. 아이의 이유식이 떨어진 엄마는 전날 저녁 쿠팡으로 주문하고, 다음날 새벽 바로 아이의 이유식을 배송 받을 수 있게 됐다. 면접에 입고갈 셔츠에 얼룩이 묻었어도 하루 전에만 주문하면 바로 받아 볼 수 있었다. 냉장고에 케첩이 떨어지면 전처럼 마트를 가거나, 2~3일 전에 미리 시키는 대신 이제는 10시간 전에만 주문하면 바로 받을 수 있다.

100달러 지폐가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는 이유? [이환주의 생생유통]
거리 위의 배달라이더. 연합뉴스

가격은 정직하다

자본주의 하에서 가격은 귀신만큼 빠르고 정확하다.

받는 월급보다 일을 더 많이 하고 잘 하는 직원은 곧 자신의 몸값을 올려 회사를 떠난다. 월급 만큼만 일하는 직원은 자리를 지키고, 월급 보다 적게 일하는 직원은 징계를 받게 된다. 현재 온라인 쇼핑몰에서 일반적인 상품을 주문하고 이를 배달로 받는데는 보통 3000원 정도가 든다. 음식을 시킬 때도 비슷하다. 다만 수요가 몰리는 비가 오는 날씨거나, 대한민국 대표팀의 축구가 있는 날에는 배달료가 더 올라 2배, 3배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지불할 가치가 있는 만큼 돈을 지불하고 물건과 서비스를 산다. 쿠팡은 현재 월 4990원만 내면 새벽 배송 서비스, 무료 반품, 쿠팡 이츠 할인, 쿠팡 플레이(OTT)를 볼 수 있는 멤버십을 운영 중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이 정도면 남는 장사라고 해도 될 정도로 괜찮은 가격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편의 뒤에는 또 다른 누군가의 희생이 있을 수 있다. 과거 한 피자 브랜드가 정시 배송을 하기 위해 일정 시간을 넘기면 배송기사에게 배달료를 지불하지 않았던 사건이 있다. 이로 인해 배달을 서두르던 배달기사가 사망하는 일이 있기도 했다. 아마 그 배송기사는 근로 계약을 맺을 때 시간당 노동의 가격표에는 동의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역시 이런 불의의 사고에 대한 동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빠른 배송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에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라고도 할 수는 없다.
)
예전에 누군가에 들은 말이 있다. 한 커플이 1년을 넘게 사귀었는데 어느 한쪽이 불만이 전혀 없이 너무 완벽한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아마도 상대편은 그만큼 속으로 썩고 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