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서울광장 못 떠나는 유족
"슬픔 나눌 수 있는 사람들 있어
괴로움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
시민들도 참사 잊지 않았으면…"
25일 본지가 만난 희생자 고 송지은씨의 아버지 송후봉씨. 송씨는 "주변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분향소에서만 자식 잃은 슬픔을 얘기한다"고 말했다. 사진=김동규 기자
얇은 보라색 폴리우레탄 폼을 길게 자르고 한번 비튼다. 비틀어 생긴 교점에 접착제를 붙이면 하나의 리본이 완성된다. 리본 1개를 만드는데 5초가 걸린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하다. 분향소를 찾는 시민들에게 나눠줄 물량을 맞추려면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야 한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1~2시간씩 앉아서 부지런히 리본을 만들어야 한다.
25일 서울광장에서 만난 이숙자씨도 작업에 손을 보태고 있었다. 이씨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이태원 참사 분향소를 찾는다. 대전에서 생업을 이어오고 있는 터라 매주 상경이 녹록치 않다. 그래도 그는 분향소를 찾는다. 이곳에 오면 적어도 '자식을 잃은 부모'라는 슬픔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분향소 오면 그나마 숨통이 트여"
이씨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故) 강가희씨의 어머니다. 지난해 10월 29일부터 그는 주변사람들과의 연락을 끊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입 밖에 꺼내는 것이 두려워서다. 심지어 친청어머니에게조차 고인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 유일하게 이곳, 분향소에서만 말 못 한 사실을 주변에 털어놓는다. 이씨는 "같은 슬픔을 공유하다 보니 유가족들끼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한다"면서 "이곳에 오면 숨통이 트인다"라고 말했다.
희생자 고(故) 송지은씨의 아버지 송후봉씨 역시 이태원 참사 이후 주변 사람들과의 왕래를 끊었다. 자식 잃은 슬픔을 나누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마음에 비수를 꽂은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송씨 스스로가 자신으로 인해 주변의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것을 경계해 내린 결정이다.
송씨에게 있어서 서울광장 분향소는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들과 상처를 공유하는 유일한 장소다. 송씨는 서울 은평구에서 견과류 가게를 운영하지만, 일주일에 2~3번씩은 꼭 분향소를 찾는다. 누군가 강요한 것은 아니다. 단지 세상과 창구를 만들고 싶을 뿐이다. 송씨는 "지은이를 떠나보내고 죄책감에 여러 사람과 화목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한 삶이 되었다"면서 "그나마 이곳에 오면 같은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 괴로움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분향소는 유일한 기억의 공간
고(故) 임종원씨의 아버지 임익철씨가 이태원 분향소 한쪽에 마련된 작은 쉼터에서 믹스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는 참사 직후 억울했다고 털어놓았다. 아들 사인도 모르는 상황에서 장례식장에 찾아온 정부 측 인사들이 비용 지원 등 절차적 문제만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대기업 건설사에서 평생 몸담았던 그였지만, 이같은 사고처리 방식은 처음 봤다고 언급했다.
임씨는 "보통 산재가 발생하면 기업들은 유족 관점에서 억울함이 없도록 최대한 설명한다"며 "하지만 정부는 공무원 몇 명만 보내고 유족들 요구사항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임씨는 "유족들이 공무원들에게 다른 유족들의 연락처를 공유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개인정보 보호라는 명목으로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임씨는 직접 유족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여당, 시민단체 할 것 없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 행사를 주최하는 곳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유족들의 연락처를 하나둘씩 공유할 수 있었다. 누군가 불러서 간 것도 아니었다. 그저 관련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면 그냥 쫓아갔다.
이태원 참사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임씨는 이곳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시민들이 이태원 참사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임씨는 "이태원 참사는 하루아침에 159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사회적 재난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1주년이 되는 지금, 이 재난을 기억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둔 25일 서울 광진구 건대 맛의거리에서 '다중운집(구름 인파)' 대응훈련이 실시되고 있다. 이날 오세훈 서울시장은 새로 도입한 인파감지시스템을 활용한 유관기관 합동훈련을 점검했다. /사진=뉴시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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