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대와 박석의 미학 부정
황토포장은 품격 떨어져
검이불루 화이불치 해쳐
지난 주말 우여곡절 끝에 100년 만에 복원한 광화문 월대를 다녀왔다. 월대를 복원하면서 전통 바닥돌인 박석을 깔지 않고, 황토를 발라놓은 게 마음에 걸렸다. 월대 안팎이 황토 일색이다.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황토는 주로 공원에 시공하는 범용 바닥재가 아닌가. 황토 포장의 품격과 격조가 문제다.
박석은 얇고 편평한 화강암 재질의 돌판이다. 두께는 보통 12㎝이고, 넓이는 구들장이나 빨래판의 두 배 정도다. 박석은 5대 궁의 월대와 안뜰, 종묘의 진입로와 정전의 월대 등에 쓰였다. 박석은 삐뚤빼뚤하고 울퉁불퉁하지만 불규칙적인 아름다움과 기능성이 뛰어난 우리 고유의 바닥돌이다. 강화도산이 유명하다.
우리는 광화문광장의 조성과 재구조화를 놓고 극심한 국론 분열을 겪었다. 반대론자들도 광장은 수용하되 월대 복원의 필요성은 의심했다. 월대 복원은 그만큼 논쟁적 사안이었다. 이제 찬반을 떠나 복원의 가치와 완전성에 의문이 생길 판이다.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한 월대의 권위와 전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도심의 중추 교통로인 세종대로와 율곡로~사직로를 틀어막은 뒤 월대 놓을 자리를 마련하느라 그 난리를 친 지금까지의 사회적 비용과 공사 과정의 불편이 심사를 뒤틀리게 한다.
경복궁과 광화문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맛집' 대한민국역사박물관 8층 옥상에 올라갔다. 역시나 주변 아스팔트 도로와 황토 콘크리트 속에서 월대의 존재감은 드러나지 않았다. 무엇을 위해 20년 가까이 수천억원을 쏟아부어 '난리 블루스'를 쳤는가 싶을 정도다.
세계적인 건축가와 한국의 대표적인 미술사가가 인정한 월대와 박석의 미학은 이번 광화문 월대 복원 과정에서 철저하게 거부됐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어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거장이다.
세계문화유산 종묘를 찾은 그는 "이같이 장엄한 공간은 세계 어디서도 찾기 힘들다.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곳을 굳이 말하라면 파르테논 신전 정도?"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가 우주의 기운과 영감을 느낀 곳은 정전과 박석이 촘촘하게 깔린 월대였다. 파르테논 신전과 비견된 종묘의 장엄함이 바로 월대와 박석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박석에 대한 찬사를 읊었다. 일찍이 유 전 청장은 "그동안 박석 자체가 갖고 있는 고유한 기능과 미학을 폄하해왔는데, 이것을 복권시키고 싶었어요. 수소문한 결과 강화에 박석광산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걸 채취해 2010년 8월 15일 경복궁 광화문 월대 복원에 사용하게 됐답니다. 박석의 부활이었지요"라고 말했었다. 박석이 다시 사망한 꼴이다.
15세기 세종실록에도 "돌을 채취하여 쌓고, 양쪽 곁에 난간석을 둘러야 하며, 강화도산 전돌로 바닥을 포장해야 한다"고 광화문 앞 월대 조성과 박석 사용을 요청하는 상소문이 등장한다. 광화문 월대를 복원한다기에 박석이 바닥돌로 쓰일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우리가 월대와 박석에서 전통미를 느끼듯 경복궁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도 한국미를 느낄 것이다.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 아름다운 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한국인들은 이런 건축물이 있다는 걸 감사해야 한다"고 프랭크 게리가 말했듯.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한양도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려고 서울시 조직에 한양도성도감과를 만들 정도로 열성적이었지만 서두르다가 등재에 실패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광화문광장의 화룡점정인 광화문 월대를 제대로 복원할 기회를 잡았지만 조악한 불량품을 만드는 데 그쳤다.
우리나라 고유 전통미를 나타내는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란 여덟 글자가 있다.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유감스럽지만 현재의 광화문 월대는 누추하고, 광화문광장은 미완성이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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