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파스타' 오인태 사장
결식 아동에게 무상급식 지원
'선한영향력가게' 만들어 4000곳 동참
'진짜 파스타' 오인태 사장(38) /사진=조유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교도소에서 편지가 날아왔다. 자신을 보호종료아동이라고 소개한 A군의 편지였다. A군은 언론을 통해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어른을 보고 무작정 펜을 집어 들었다며 삶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편지 곳곳에는 A군이 눌러 담은 간절한 마음이 묻어났다.
무작정 연락하고 싶은 TV 속의 어른, 오인태씨(38). 그는 누구인가.
“밥 한 번 편하게 먹자. 음식값 안 받을란다“
홍대 ‘줄 서는 맛집’으로 소문난 ‘진짜 파스타’ 사장 오씨는 자신을 ‘동네 아저씨’라고 소개했다. “어렸을 때 동네 아저씨들이 아이들 많이 도와주던데요. 그런 동네 아저씨 하고 싶어요.”
2016년에 진짜 파스타를 열고 성공궤도를 달리던 2019년 어느 날, 오씨는 구청에 방문했다가 우연히 결식아동 꿈나무카드를 보게 됐다. 결식아동들에 식사비를 지원하는 서울시 카드인데, 문제는 한 끼에 5000원만 지원한다는 것이다. 오씨는 순간 화가 났다. ‘5000원으로 무슨 밥을 먹냐.’
실제로 결식아동들의 급식카드 사용처 현황을 보면 편의점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현재는 아동 복지 카드에 대한 보건복지부 지원 권고 단가가 8000원으로 상향됐다. 하지만 한 끼 식사가 1만원이 넘는 고물가 시대에 8000원도 턱 없이 적은 상황이다.
오씨는 이 같은 급식카드 지원 실태를 알게 된 이후 매장에서 결식아동들에게 무료로 밥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아동 급식 카드를 소지하고 있는 아이라면 매장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해 먹을 수 있게 했다.
“아이들이 음식값은 신경 쓰지 말고 밥 한 끼라도 마음껏 먹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얘들아. 밥 한 번 편하게 먹자. 그냥 돈 안 받을란다.”
오씨가 이 같은 결정을 하게 된 것은 그가 유년시절에 겪었던 배고픔의 기억 때문이다. 그는 어렸을 적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5년 동안 매 끼니를 삼각 김밥과 컵라면으로 때워야 했다. 자신과 같은 유년시절을 보내며 괴로워하는 아이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를 움직였다.
2시간 걸려 찾아온 아이들..전국 선한영향력가게 모집
오씨에 따르면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매주 최소 서너팀의 결식아동들이 가게를 찾아온다. 무상급식을 시작한 직후인 2019년 7월에는 초등학교 3학년쯤 되어 보이는 한 아이가 오후 8시께 동생과 함께 가게에 찾아왔다. 이들은 경기권에서 2시간이 걸려 왔다고 했다. 오씨는 이 때 처음으로 무상급식을 지원하는 매장이 전국적으로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곧바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동참할 수 있는 가게를 모집했다. 그렇게 ‘선한영향력가게’가 시작됐다.
동참하겠다는 점주들의 연락이 쇄도하면서 4년이 된 현재, 4000여 가게가 선한영향력가게 이름으로 함께하고 있다. 다들 ‘이모, 삼촌처럼 밥 한 끼 차려주고 싶다’는 사장님들이다.
올해만 해도 500여 매장이 추가로 동행 신청을 했다. 음식점 뿐만 아니라 카페와 극장, 그리고 아이들 수업을 무료로 시켜주겠다는 학원도 있다.
덕분에 아이들은 거주 지역 근처 곳곳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무상교육을 받는 등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기사 보고 먼저 연락해오는 아이들도
오씨의 선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어려운 형편에 처한 아이들의 사연을 접하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개인적으로 용돈을 보내주기도 한다. 대부분 언론에 노출된 오씨를 보고 먼저 연락해온 이들로, 주변에 도움 줄 어른이 없는 결식아동이나 보호종료아동이다.
오씨는 ‘밥 한 끼 먹이자’라며 가볍게 시작했지만, 이제는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 사이에서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있었다.
오씨는 소방공무원들에게도 ‘착한 사장님’이다. 진짜 파스타는 재난현장에 몸을 던지는 소방공무원들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또 혈액암 환자를 위한 헌혈증 기부 운동도 하고 있다. 가게에 오는 손님들이 헌혈증을 기부하면 가장 비싼 메뉴 하나와 교환을 해주는 방식으로 헌혈증을 모아 한국혈액암협회에 기부한다.
진짜 파스타 외관 / 진자파스타 제공
“비행기 타고 가면 밥 먹을 수 있어요?”..‘돈쭐’ 내러 오는 고객들
오씨의 선행이 언론과 SNS 등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하자 진짜 파스타에는 한때 일명 ‘돈쭐’을 내러 오는 손님들의 행렬이 줄을 잇기도 했다. 돈쭐은 돈과 혼쭐을 합친 말이다. 정의로운 일을 하는 가게의 물건을 팔아주자는 의미로 사용된다.
무상급식을 시작한 초창기 어느 날에는 아직 가게 문을 열기도 전인 오전 9시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광주인데 지금 비행기 타고 가면 밥 먹을 수 있나요?”
오씨는 “평생 그 전화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라고 회상했다.
이외에도 일부러 가게를 찾아온 고객들이 ‘돈쭐 내러 다녀왔다’, ‘착한 가게 무조건 가야 한다’, ‘맛도 있는데 착하기까지 하다’ 등의 후기를 적은 글들이 온라인상에 수두룩하다.
“빈 그릇 볼 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4년여를 달려오는 동안 오씨에게 힘든 점이 없었던 건 결코 아니다. 재정 부족으로 사비를 털어야했고 때로 도 넘은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그를 다시 웃게 만든 건 여전히 아이들이다. 식당에 찾아온 아이들의 “잘 먹었습니다”라는 한 마디, 그리고 아이들이 먹고 간 자리에 놓인 빈 그릇을 볼 때면 다시 일어나야 할 힘을 얻는다. 또 오씨가 출연하는 유튜브 등에 “눈치 안 보고 잘 먹었습니다”, “1년동안 잘 먹고 잘 성장해서 벌써 성인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등의 댓글이 달리면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다시금 의미를 찾게 된다.
오씨는 선한영향력가게를 운영하면서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라는 시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옛날엔 세상 모든 걸 회색으로 보고 부정적이었어요. 그런데 선한영향력가게를 시작하고 나서는 아직 대한민국의 미래가 생각보다 더 밝다는 희망이 생겼어요. 돕겠다고 연락해오는 분들의 진심을 마주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올해는 온통 일만 한 것 같다는 오씨. 돈 많이 벌어서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 그의 최종 목표다. 그는 “고아원도 운영하고 싶고 아이들을 더 많이 돕고 싶은데 재단법인 설립하면 다 할 수 있다”라며 “20억원 필요하다고 한다. 누구 도움 없이 제가 번 돈으로 설립하고 싶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선한영향력가게 위치는 모바일 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동참·후원 방법은 단체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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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hyun12@fnnews.com 조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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