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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창 전 중국 총리, 시진핑 경쟁자에서 쓸쓸한 죽음까지

[파이낸셜뉴스]
리커창 전 중국 총리, 시진핑 경쟁자에서 쓸쓸한 죽음까지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심장병으로 27일 향년 68세로 사망했다. 사진은 2017년 3월 1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식 후 기자회견장에 도착한 리커창 전 총리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베이징=정지우 특파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경쟁자였던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지난 27일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리 전 총리는 2013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국무원 총리로 결정되며 올해 초까지 10년간 중국 경제를 이끈 인물이다. 시진핑 국가 주석의 경쟁자였고 중국 서열 2위로 쓴소리와 소신 행보를 보였으나 시 주석이 독보적 지위를 구축하면서 존재감이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1955년 출생, 후진타오와 동향

중국 관영매체인 CCTV에 따르면 리 전 총리는 최근 중국 상하이에서 휴식을 취해왔으며 전날 갑작스러운 심장병이 발생, 이날 0시 10분 6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지난 1955년 중국 안후이성 동부 추저우의 딩위안현에서 태어난 리 전 총리는 안후이성 명문인 허페이 8중학교에서 공부했다. 졸업 후인 1974년에는 19세의 나이로 당시 마오쩌둥의 "지식청년은 농촌으로 가서 배우라"는 '상산하향' 운동에 동참, 펑양현 다먀오공사 다먀오대대 생산대에서 근무한 뒤 1976년 다먀오대대 당지부 서기를 지냈다.

1976년 4월에는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다. 1982년에는 베이징대학교 법학과를 거쳐 1988년 베이징대학교 경제학 석사와 1994년 베이징대학교 경제학 박사를 각각 졸업했다.

정치적으로 급성장한 계기는 중국 공산주의청년단 중앙학교부 부장으로 있을 때인 1983년이다. 리 전 총리는 그해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였던 후진타오를 만났다. 두 사람은 동향의 선후배다.

44세에 허난성의 최연소 성장이 된 리 전 총리는 이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주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을 거쳐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시기인 2008년부터 국무원 부총리를 맡는 등 출세 가도를 달렸다.

공청당 대표, 그러나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밀려

리커창 전 중국 총리, 시진핑 경쟁자에서 쓸쓸한 죽음까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리커창 중국 전 총리의 모습. 로이터뉴스1

공청단을 대표하는 인물인 리 전 총리는 비슷한 연배 중 가장 먼저 두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태자당(혁명 원로 자제 그룹)계와 장쩌민계인 상하이방이 연합해 밀어준 시 주석에게 1인자 자리를 빼앗기고 2인자인 총리 자리를 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총리 임명 직후 실세 총리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집단지도체제가 약화하고 시진핑 1인 권력이 강화되면서 리 전 총리의 영향력도 함께 약화했다.

그는 총리 재직 10년간 절대 권력에 여러 차례 쓴소리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2020년 5월 전인대 기자회견 발언이 대표적이다. 리 전 총리는 당시 중국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며 "6억명의 월수입은 겨우 1000위안(약 17만원)밖에 안 되며, 집세를 내기조차 힘들다"고 말해 중국은 물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시 주석이 강조한 '샤오캉'(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건설에 대한 노골적인 반박으로 읽힐 수 있어서다.

지난해에는 방역 지상주의가 경제를 망쳐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전국 화상회의를 열어 10만 명이 넘는 공직자들 앞에서 중국의 경제 상황이 2020년 우한 사태 때보다 심각하다는 발언을 한 것이다.

국제사회에서는 리 전 총리가 '제로 코로나'를 주장하는 시 주석에 맞서며 중국 정가의 권력 암투 가능성을 예상하기도 했으나 이변은 발생하지 않았다.

지난 3월 퇴임, 쓸쓸한 죽음
리커창 전 중국 총리, 시진핑 경쟁자에서 쓸쓸한 죽음까지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뒷줄 왼쪽)이 지난해 20차 중국 당 대회 폐막식에서 갑자기 퇴장하면서 리 전 총리(앞줄 왼쪽)의 어깨를 토닥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퇴임 직전에는 국무원 판공청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하며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人在做 天在看)"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삼국지연의'의 제갈량이 유비 사후 8번째 북벌에 나서면서 남긴 것으로 알려진 이 문구를 놓고 전문가들은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장악한 중국 최고 지도부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해석을 하기도 했다.

당시 그의 발언은 중국 당국의 인터넷 검열 시스템인 '만리방화벽'에 막혀 중국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차단됐지만, 유튜브나 트위터 등 해외 SNS를 통해 널리 확산했다.

지난해 20차 당 대회 폐막식에서 후진타오 전 주석이 갑자기 퇴장하면서 리 전 총리의 어깨를 토닥이던 장면도 유명하다.

당시 후 전 주석은 시 주석 및 리잔수 전 전인대 상무위원장과 대화한 뒤 수행원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를 떠나면서 리 전 총리의 어깨를 토닥이며 무언가 짧은 말을 건넸다. 일각에서는 공청단을 대표하는 그가 리커창 등 핵심 세력이 최고지도부에서 탈락한 것에 불만을 품고 벌인 행동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중국 누리꾼 애도

제로 코로나 폐지 이후에도 중국 경제가 부진한 데다 부동산발 경제 위기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최고 권력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민생을 챙긴 리 전 총리에 대한 향수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이터통신은 “중국의 자유주의 시장경제 개혁에 조종이 울렸다”며 중국 누리꾼들이 애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일부 중국 지식인과 자유주의 엘리트들은 “리 전 총리는 중국의 자유주의 시장 경제 개혁의 등대였다”며 "갑자기 등대가 꺼짐에 따라 자유주의 시장 경제 개혁이 끝났다"고 애도했다.

한편 일본 정부도 애도를 표했다.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27일 각의(국무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리 전 총리는 2018년 5월 일·중·한 정상회담 때 일본을 공식 방문하는 등 일·중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삼가 명복을 빌며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리 전 총리와 친분이 있었던 오자와 이치로 입헌민주당 중의원(하원) 의원은 "갑작스러운 부고를 접하고 매우 놀랍고 깊은 슬픔을 느낀다"면서 "아직 젊은 그가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은 중국의 국가적 손실이며 향후 일·중 양국의 우호 발전을 위해서도 아쉬워해야 한다. 지금은 그저 명복을 빌 뿐이다"고 전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