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장관이 24일 '한국형 제시카법' 등 입법 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법원에서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절차에 따라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기본권 침해 등을 두고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에 찬성하는 측은 사형을 대신해 흉악범을 사회로부터 격리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반대 측은 사형제도 폐지 없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추진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전날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을 신설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법원이 가석방이 허용되는 무기형과 허용되지 않는 무기형을 구분해 선고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무기형 선고 대상자 가운데 엄벌 할 필요가 있는 경우 '가석방 불가' 조건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무기징역 또는 무기 금고형을 선고받은 경우에도 20년이 지나면 가석방이 가능하다.
■ 흉악범죄 유족 측·일부 재판부 '가석방 없는 무기형' 호소
'가석방 없는 무기형'에 대한 논의는 흉악범죄 피해자 유족들의 호소와 함께 이뤄져왔다.
가장 최근에는 스토킹하던 여성을 보복살인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의 피해자 유족들이 가해자의 가석방을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사례가 있다. 이달 12일 보복살인 등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된 전주환(32)에 대해 유가족 측 대리인인 민고은 변호사는 "오늘 확정된 무기징역형에 가석방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가 판결문을 통해 직접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요청한 사례도 있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된 김태현(27)의 항소심 재판부는 "사형제도의 범죄 예방 효과가 크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 이래 집행이 이뤄지지 않아 사형 선고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할 필요성이 상당하다고 생각되지만 여러 사정을 고려해 원심이 선고한 무기징역형을 유지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선고형은 가석방 없는 절대적인 종신형으로 집행돼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다"며 "법원에서 이렇게라도 가석방 관련 의견을 명시적으로 낼 필요가 있고, 세 모녀의 원혼을 달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이날 "흉악범죄로 인생 전부를 잃은 피해자들과 평생을 고통 받아야 하는 유족분들의 아픔을 생각하고, 앞으로 흉악범죄로부터 선량한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한다"며 "법률 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인간 존엄성 침해·교화 가능성 박탈 등 비판도
일각에서는 가석방 없는 무기형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칠 우려가 있으며 교화 가능성을 박탈하는 제도라고 비판한다. 신체의 자유를 다시 누릴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것은 위헌적이며 범죄 억제 효과에 대한 뚜렷한 근거도 없다는 지적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올해 8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헌법상 인간 존엄의 가치를 침해하고 형사정책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형벌 제도"라고 논평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사형제에 비해 기본권 침해가 덜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견해가 있고, 선진국에서는 위헌성이 있다는 판단하에 폐지하는 추세"라며 "범죄 예방적 효과를 단정할 수 없고 교도행정에 큰 부담이 되는 측면이 있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어 "가석방 없는 종신형 제도에 관한 기존 논의는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그에 대한 대체 수단으로 절대적 종신형을 도입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사형제도를 존치한 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는 것은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koreanbae@fnnews.com 배한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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