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10월 27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올해 3월 퇴임한 지 7개월 만에 들려온 부고다. 중국 당국이 수시간이 지나서야 부고를 발표할 정도로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관영 매체도 부고 대신 짧은 사망소식을 먼저 알렸다.
그는 한때 시진핑 국가주석의 경쟁자로 인식됐다. 재임 시절 '시진핑 1인 체제'가 공고화된 이후에도 민생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독자적 목소리를 내며 중국 국민의 호응을 얻었다. "양쯔강과 황허는 거꾸로 흐를 수 없다" "6억명의 월수입은 1000위안(약 17만원)"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 등은 서슬 퍼런 절대권력을 사실상 비판하는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직전 총리였음에도 중국 당국의 검열과 통제는 사망이 급작스러웠던 것과 반대로 즉각 이뤄졌다.
관영 매체는 자세한 내용은 보도하지 않았다. 포털사이트나 SNS에도 검열을 거친 듯 당국의 부고문이나 정부기관·관영 매체의 추모글만 노출됐다.
사망 다음 날인 10월 28일부터 11월 3일까지 중국에서 공개활동을 금지하고 대학 모임을 모두 취소시켰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이른바 '광장무'(주로 여성 중노년층이 공터나 공원에 모여 춤을 추는 문화)를 불허했다고 대만 매체는 전하기도 했다.
중국 지도부의 두려움은 짐작 가능하다. 중국을 뒤흔든 두 차례의 톈안먼 사건은 모두 지도자급 사망 후 추모식을 계기로 촉발됐다.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비판이 쏟아진 1976년 4·5운동은 그해 저우언라이 총리 사망 후 본격화됐다. 민주화를 요구했던 1989년 6·4시위는 이보다 2개월 전 후야오방 총서기 별세가 불을 지폈다.
공교롭게 두 번의 톈안먼 사건과 공통점은 여러 개다. 지도자급 사망 외에 주자파(중국 공산당 내 자본주의 노선 실권파) 비판운동, 공산당 관리들의 부패, 대량실업, 인플레이션, 소련(러시아)의 방중 등이 유사하다.
현재 중국은 기존 시장경제 체제보다는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강조하고, 부정부패 척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 청년실업률은 사상 최고치를 매월 경신했으며, 디플레이션 우려는 남아 있다. 10월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방중했다. 추모를 막겠다며 통제를 강화하는 것조차 동일하다.
물론 리 전 총리의 사후 영향력이 저우언라이나 후야오방만큼 크다고 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중국에 미칠 파급도 극히 작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런데도 중국 당국은 리 전 총리 사망 후폭풍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그때와 분명하게 다르다. 그 세월 동안 대국으로 성장한 만큼 중국인들도 변했다.
직접적인 행동에 제약을 줘도 백지시위, 노래, 기호, 사진, 그림 등으로 현실과 마주하는 것이 중국인들이다. 차단한다고 의견 표출을 막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의미다. 다양한 애도와 추모 방법으로 해야 할 말은 기어코 전달하고 있다.
jjw@fnnews.com 정지우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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