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엔 살림살이가 좀 나아질까요?" "내년엔 세상이 좀 편안해지겠죠?" "내년엔 과연 어떤 트렌드가 유행할까요?" 매년 이맘때쯤이면 사람들은 올해가 아니라, 내년에 관심을 더 쏟는다. 정치·경제·사회 등 전방위적인 불확실성은 이런 궁금증(사실은 불안)을 더욱 증폭시킨다. 다가오는 미래를 미리 전망해보는 예측서가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다.
지금 서점에 가면 대략 20여권의 이런 예측서들이 서가를 점령하고 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쓴 '트렌드 코리아 2024'를 비롯해 '2024 트렌드 모니터' '라이프 트렌드 2024'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4' 같은 책들이다. 이 중 가장 잘 팔리는 책은 벌써 16년째 출간되고 있는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다. 지난달 서점에 깔린 '트렌드 코리아 2024'는 나오자마자 교보문고, 예스24, 인터파크 등 대형 온라인 서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있다.
'트렌드 코리아 2024'가 내년 트렌드 중 맨 앞자리에 내세운 키워드는 '분초사회'다. 1분 1초가 아까운 세상, 시간의 가성비가 중요해진 사회적 경향을 짚은 말이다. 요즘 사람들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보면서도 한 손으로는 끊임없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시간이 아까워 정상 속도가 아니라 1.5배속이나 2배속으로 콘텐츠를 소비한다. 또 유튜브 요약 영상을 찾아본 후 드라마나 영화를 다 본 걸로 치부한다. 시간이 돈만큼, 혹은 돈보다 더 중요한 자원이 됐다는 얘기다. 당근마켓에서 유명 맛집 줄서기, 자녀 등하교 라이딩, 강아지 산책시켜주기 등 시간을 아껴주는 대행업무가 거래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주 오래된 격언처럼, '시간이 돈'인 세상이 된 셈이다.
이른바 '디토 소비'는 이런 경향을 배경으로 생겨난 트렌드다. 디토(Ditto)는 '나도' 혹은 '이하동문'이라는 뜻이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2배속, 3배속의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디토는 매우 쓸모 있는 소비방식이다. 구매 의사결정에 따르는 복잡한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실패 없는' 선택을 할 수 있어서다. 디토 소비는 과거 스타나 인플루언서에 대한 맹목적 따라 하기와는 살짝 구분된다. 과거 소비자들이 유명 스타를 찾아 몰려다녔다면, 요즘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뾰족한 취향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요는 실패의 두려움을 최대한 줄이고, 이를 통해 '금쪽같은' 내 시간을 아끼겠다는 얘기다.
'트렌드 코리아 2024'는 이 밖에도 주요 트렌드로 '육각형 인간'과 '도파밍'을 꼽는다.
육각형 인간은 모든 면에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의 강박적 경향을, 도파밍은 재미를 좇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을 짚은 키워드다. 또 '호모 프롬프트'는 인공지능(AI)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화룡점정은 결국 사색과 분석력을 겸비한 인간의 몫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시계 제로의 시대에 나침반 역할을 하는 예측서 한 권쯤 읽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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