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장
"조현병보다 2~3배 인력 필요... 수가는 동일해 근무여건 열악
마약은 당뇨병처럼 완치 안돼, 치료 이후 꾸준한 재활 필수"
한때 간간이 화제가 됐던 '마약사범' 기사가 연일 쏟아져 나온다. 연예인뿐 아니라 일반인 주변에서도 마약사건이 흔히 발생할 정도다. '마약청정국'으로 불리던 한국은 지난 2016년 이후 청정국 지위를 잃었다. 마약사범은 급증 추세에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마약 수사·탐지·조사·치료·법률 분야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생생한 실태를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해 본다.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병원장은 2일 마약중독증을 '정신당뇨병'에 비유하며 당뇨병처럼 완치가 안 되는 병이므로 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진=서동일 기자
"죄송합니다. 방금 전까지 진료 보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2일 인천 서구에 있는 인천참사랑병원에서 만난 천영훈 병원장은 보라색 진료용 가운을 입은 채로 나타났다. 그의 눈은 반쯤 충혈된 상태였다. 손으로는 얼굴을 연신 쓸어내렸다. 대화 중간중간에는 목운동을 하며 피로와 사투를 벌였다. 그는 이 병원을 지키는 2명의 마약투사 중 한 명이다. 인천참사랑병원은 한국 민간 의료기관 중에서는 마약중독증 치료의 본산으로 불린다. 대검찰청의 '마약류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류 사범으로서 중독증 치료를 받은 이들 421명 중 65.6%에 해당하는 276명이 이곳을 거쳐갔다. 이쯤 되면 대형 마약치료시설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현실은 열악하다. 마약중독증 치료를 담당할 수 있는 정신과 전문의는 2명에 불과하다. 한 명은 천 병원장 자신이다. 나머지 한 명은 천 원장을 사형으로 섬기며 마약중독증 치료의 노하우를 배우고 있다.
■"마약치료 전문의는 기피 1순위"
마약중독증 치료는 정신과 전문의들이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정신과 전문의가 마약중독증 치료를 할 수는 없다. 중독증 치료는 의사와 환자가 공감대를 형성해야 가장 좋은 효과를 얻는다. 이 때문에 중독증 치료 분야에서 오랜 노하우를 쌓아오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정신과 전문의만이 치료에 나설 수 있다.
천 원장은 "일반 의사도 근무시간 이외에는 술을 마시거나, 극도로 슬픔을 느끼기도 해 알코올중독증 환자나 우울증 환자와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며 "하지만 의사가 마약을 하지는 않기 때문에 마약중독증 환자와는 공감대를 이루기 상당히 어렵다"고 말했다. 마약중독증 치료 전문의를 양성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양성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의사들 사이에서 마약중독 치료 전문의는 기피대상 1순위다. '돈 안 되는 진료과목'이기 때문이다.
■"인력부담 상당하지만 수가 낮아"
마약중독증 환자 1명을 1개월 동안 치료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최소 500여만원이라고 한다. 간호사, 치료재활사뿐 아니라 환자를 상시 지켜볼 추가 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의료수가는 조현병 등 다른 정신질환과 동일하다고 한다. 일반 정신질환의 2~3배 인력을 투입하고도 조현병과 같은 수가만 받으니 민간 의료기관이 선뜻 나서기 어려운 분야다.
그는 "마약중독증 환자들이 병동이란 하나의 공간에 같이 입원을 하면 자신들끼리 마약거래 정보를 주고받는 등 범죄를 확대재생산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 때문에 마약치료 병동의 의료진은 단순 의학적 조치뿐만 아니라 환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감독하는 일까지 병행해야 한다"며 "이 모든 것을 사람이 직접 관리해야 하니 다른 질병 환자를 치료하는 것보다 숙련된 의료인력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인천참사랑병원 역시 만성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지난 3~5월은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었다고 한다. 올해 초부터는 1020세대를 포함해 입원환자 수가 급증하면서 직원들이 '번아웃'됐다. 임계점을 버티지 못한 간호사 등 의료진의 퇴사 러시가 이어졌다. 병원은 기본 근무체계인 3교대 근무조차 운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천 원장은 "환자로부터 욕 먹고, 협박당하고 심지어 맞기까지 하지만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의료수가는 조현병 등 다른 질병의 그것과 동일하다. 이는 직원들 월급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더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일해야 하는 것에 회의를 느껴 떠나는 직원들을 차마 붙잡을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천 병원장이 정신과 전문의로서 마약중독증 치료환자를 돌보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그는 중독증 치료 환자용 병상이 많기로 소문난 원광대 의대를 졸업했다. 모교에서 수련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중독증 환자를 치료하는 전문의로 성장했다. '돈도 되지 않는' 마약중독증 치료에 손을 놓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말에 천 병원장은 "다른 정신질환증 환자와 달리 마약중독증 환자가 치유되는 과정이 드라마틱하다"며 "불가항력적인 수많은 유혹 등을 이겨내고 하나의 사회구성원으로서 인격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이 멋있다"고 밝혔다.
■"마약은 '정신당뇨병'"
천 원장은 마약중독증을 '정신당뇨병'에 비유했다. 당뇨병처럼 완치가 안 되는 병이므로 관리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천 원장은 "우리는 마약중독증을 일탈과 의지 부족으로 치부하지만, 사실은 뇌의 신경계통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엄연한 질병"이라며 "사람의 뇌를 갈아 끼우지 않는 이상 마약중독증은 완치가 어려워 치료 이후 병원 밖에서 하는 재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마약중독자에게 '너는 의지가 부족해 마약을 못 끊는 것'이라는 식으로 멸시하거나 손가락질을 하면 자포자기한 이들은 다시 마약에 손을 댈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 사회가 이들을 암덩어리로 취급하지 말고 포용적으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 원장은 최근 마약중독증 환자가 급격하게 늘고 있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2020년부터 내원하는 환자 수가 급격히 늘더니 올해는 상반기에만 400여명의 환자가 내원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인천참사랑병원을 내원한 마약중독증 환자가 500여명인 것을 감안하면 올해 내원환자는 2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천 원장은 "이제는 정부에서 부처를 아우르는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상황에 맞게 치료와 재활·예방 사업을 전개해야 하는 동시에 그에 맞는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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